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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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참 인상적이다. 읽으면서 표지를 볼 때마다 붉은 입술을 내민 턱과 목선이 눈을 사로잡는다. 책을 펼쳐 읽으면 예전 자식들을 줄줄이 낳았던 시절의 기정 풍경이 펼쳐진다.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하지만 딸들만 나왔던 한 집의 이야기다. 작가는 아들을 얻기 위한 노력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간단하게 그 집의 역사를 다룰 뿐이다. 주인공 해금도 마찬가지로 부모 등이 바란 성별이 아니다. 딸들은 모두 자 돌림자를 사용한다. 막내 영미를 제외하고. 이런 가정사는 한 소녀의 삶에 배경이 되고, 힘이 된다. 그리고 해금의 친구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시절 청춘의 빛남을 느낄 수 있었다.

 

805월의 광주를 이 소설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광주민주화 이후 이 청소년들은 각자의 삶으로 나누어져 살아간다. 그날 광주에서 죽은 친구도 있고, 이 친구 때문에 괴로워하면 자살하는 친구도 있다. 민주화를 외치던 운동권 학생 승규는 군대에서 의문사로 죽는다. 마지막에 그의 죽음을 마주하고 치솟는 눈물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읽을 수가 없었다. 그의 시체를 두고 엄마가 외치는 소리에는 과거의 비극도 겹쳐진다. 한 세대를 뛰어넘어 국가가 한 개인에게, 한 가족에게 또 죽음을 내린 것이다. 아들의 기일에 찾아온 친구를 웃으며 반가이 맞이하는 엄마가 홀로 남겨진 후 흘릴 눈물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해금은 승희가 아이를 임신하고 돌아와 낳게 되면서 집에 있는 돈을 훔쳐 전달한다. 승희의 아버지는 엄마가 있는데 낯선 여자를 들였고, 승희는 광주로 나와 자취한다. 그러던 중 엄마가 찾아와 홀로 승희의 자취방에서 뇌출혈로 죽었다. 승희는 이때 집을 떠나 세상을 떠돌다 임신했다. 같이 돌던 남자는 도망쳤고, 나중에 집을 찾아가니 물건 값을 떼먹고 도망 중이다. 승희가 사라졌을 때 해금과 친구들을 죽은 친구와 더불어 승희도 잊으려고 한다. 잊지 않으면 자신들이 죽을 것 같아서. 승희의 귀환과 임신은 큰일이다. 아이를 힘들게 낳은 후 남자들은 아빠와 삼촌 역할을 한다. 그 중에서 만영은 진짜 남편이 되고 싶어 한다.

 

경애의 죽음이 친구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는 그들의 삶에 큰 흔적으로 남아 있다. 진만은 내정된 일자리를 버리고 뒷골목에서 살고, 그 사건 이후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수경은 자살한다. 하지만 삶은 이런 비극 속에서도 굴러가야 한다. 실제 그 당시 광주에서 중학생이었던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피해자를 제외하고 그 충격을 그렇게 많이 받지 않았다고 하는 분도 있다. 물론 조금만 신경 쓰고 주변을 둘러보면 그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을 것이다.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한다고 살아있는 사람들까지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다른 자식들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은 이런 청춘들의 삶을 그려내었다. 가장 빛날 20대 초반의 청춘들을.

 

실제 이 소설의 끝부분에 도달하기 전까지 그렇게 먹먹하지 않았다. 야학과 대학생들의 노동현장 침투 등이 나와도 역사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일 뿐이었다. 사랑 때문에 방황하는 청춘들을 보면서 그 빛나는 아픔이 가슴에 와 닿았지만 아름답고 향기로웠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이 놓여 있었고, 고도성장기라 일을 찾는데 문제없었던 시절이었다. 읽다 보면 아련한 그리움이 생길 때도 있다. 아마 내가 그 시절을 보내는 중이라면 아주 힘들어 했을 텐데 추억의 힘이 과거를 덧칠한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더 먹으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친구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거나 더 방황을 하는 친구가 생긴다. 이것도 청춘의 몫이다. 그리움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집에 있는 공선옥의 다른 소설도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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