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달님만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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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승 민담에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했다는 말에 먼저 혹했다. 개인적으로 민담이나 전설 등을 소재로 판타지나 공포물 등이 많이 나오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늘 아쉬워하던 부분이다. 최근 이런 작품들이 눈에 들어와서 반갑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간단하게 요약한 전래 민담은 조금 낯설다. “옛날 옛적 한 소녀가 호랑이 등에 올라타 바다를 건너오니 그 섬에도 그리하여 범의 자식들이 살게 됐도다.”라고 하는데 솔직히 이런 민담을 모르겠다. 아마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데 자신할 수 없다. 나의 무지 탓일 것이다.

 

아버지의 알 수 없는 정치 사건으로 두 딸은 먼 섬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 부분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두 딸 회현과 모현은 외딴 섬에서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 언니 회현은 어린 동생 모현까지 돌봐야 한다. 몰락한 가문의 맏딸이 어깨에 진 무게는 무겁다. 결코 신뢰할 수 없는 남편에 남의 자식과 자신의 아이까지 돌봐야 한다. 그 동안 동생은 철부지로 살았다. 이런 삶에서 한 번 자신의 무게를 동생에 떠넘긴다. 그것은 범의 제물로 뽑힌 자신 대신 동생을 내보낸 것이다. 소설의 시작은 바로 이 범님의 신부로 희생되어질 모현이 산길을 걸어가면서부터다.

 

모현의 형부인 단오는 최악이다. 그는 범님의 신부인 모현을 겁탈하려고 한다. 아내가 제물로 뽑히게 하려고 무당 천이에게 요청한 것도 그다. 그의 욕망은 모현의 강한 반발과 처절한 몸부림과 어딘가에서 나타난 범에 의해 중단된다. 삶의 의지가 결코 사그라들지 않은 모현은 범을 공격한다. 범에게 어깨를 물린 그 순간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 기절한다. 제물이 된 그녀를 산에서 데리고 온 인물은 마을 수령 홍옥이다. 범을 잡기 위해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사악한 인물이었다. 모현과 함께 돌아온 그는 완전히 바뀌었다.

 

사실 홍옥은 무당 천이 무리가 호환 사건을 만든 후 범 사냥을 떠났을 때 죽이려고 했다. 그의 죽음을 확인까지 했다고 한다. 탐욕스러운 홍옥이 선량한 수령이 되었다니 이상하다. 무당 천이가 호환 사건을 만든 것은 단순히 마을의 권력을 쥐기 위해서 아니다. 이것은 이 섬에 자리한 검은 산의 전설과 관계있다. 과거 뛰어난 장수가 하늘로 가는 길을 이 검은 산에서 발견하고 천제가 보낸 군대와 99일간 싸운 곳이다. 그럼 천이가 모시는 장군이 이 장군일까? 그럼 범은 또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깔고 이야기는 천천히 진행된다.

 

모현을 두고 작은 갈등이 일어난다. 언니에게 단오가 한 짓을 말하지만 믿지 않는다. 회현은 천이가 한 거짓을 간파하지만 아픈 자신의 아이를 의원에게 데리고 가기보다 무당에게 맡긴다. 회현은 결코 무지하지 않다. 반면 모현은 철부지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언니 대신 희생물이 되려고 했고, 단오의 진실을 말했지만 회현의 가슴 속 깊이 자리한 미움까지 걷어내지는 못한다. 저주의 주술이 그녀에게 걸리지만 우연한 일로 그 주물을 처리한다. 운이 좋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녀가 가진 선한 마음과 행동이 그녀를 도와준 것이다.

 

전체적으로 잘 읽힌다. 문장력도 좋다. 하지만 중간중간 긴장감을 심어줄 사건들이 너무 약하다. 공포물로 보기엔 그렇게 무섭지 않고, 로맨스라고 하기엔 그 밀당이 너무 없다. 갈등 구조와 인간관계를 더 깊게 연결해서 모호함을 많이 걷어내었으면 좋겠다. 음모의 주체가 갑자기 무너지고, 새로운 악이 등장하는 장면도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마지막 대결에서 강한 액션이 눈에 잡힐 듯 그려지지 않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소재를 엮는 것과 문장이 수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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