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퍼슨
크리스틴 루페니언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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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도발적인 표지가 먼저 시선을 끈다. 제목을 들으면 판타지 소설처럼 다가오지만 말이다. 작가는 이 단편 <캣퍼슨>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왠지 모르지만 거의 끝까지 이 소설에 공감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분위기에 휩쓸려 섹스를 하게 되는 그녀의 모습에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남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가 몇 번 만났지만 잘 모르는 남자와 함께 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도 마찬가지다. 마고가 로버트와 데이트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몇 가지 장면들은 여자와의 관계가 서툰 남자의 모습이 잘 보인다.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로버트가 마고에게 보낸 문자는 결코 낯설지 않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많은 남자들이 내뱉는 폭언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게시판에서 자주 본 장면이다.

 

사실 처음에는 이 책이 단편집이란 사실을 몰랐다. 이 작가가 스티븐 킹의 팬이란 사실도 서문을 통해 알았다. 이것을 알고 기대한 것은 킹의 기이한 이야기들이지만 앞의 작품들은 내가 예상한 전개와 달랐다. 대표적인 것인 <캣퍼슨>이고, 그 다음이 <룩 앳 유어 게임, 걸>이다. 이후 몇 편의 단편에서도 킹의 흔적이 보이지 않지만 몇 편은 킹이 떠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킹의 작품들은 대부분 장편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한 모양이다. 예전에 읽었던 단편들은 사실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킹처럼 쓴 소설이라면 이 또한 불만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다양한 장르가 담겨 있다 보니 개인적 선호도가 나온다. 가장 유쾌하게 읽은 작품은 <무는 여자>고, 읽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숨긴 두 작품 <좋은 남자>와 <풀장의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무는 여자>는 물고 싶은 욕망과 직장 성추행의 절묘한 반전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좋은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속이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그가 여자에게 얼마나 나쁜 남자인지 은연중에 보여준다. <풀장의 소년>은 어릴 때 비디오에서 본 남자를 처녀 파티에 데리고 오고, 그가 만들어내는 작은 이벤트가 마지막에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정어리>를 읽으면서 마지막 장면에 섬뜩함을 느꼈다. 아이들의 생일 파티에 어른들의 비열한 욕망이 끼어들면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알려준다. <룩 앳 유어 게임, 걸>은 한 노숙자와의 만남과 그가 죽인 소녀의 기억을 다루는데 죄의식이 어떻게 시간의 흐름을 타는지 보여준다. <한밤에 달리는 사람>을 읽으면서 자신의 경험담인가 생각했지만 문화충돌과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거울, 양동이, 오래된 넓적다리뼈>는 깊은 자기애에 빠진 공주 이야기다. 동화처럼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전개다. <나쁜 아이>는 자존감이 바닥인 남자를 두고 어떻게 학대 강도가 점점 높아지는지 천천히 보여준다. 인간의 이성은 저강도 감정의 공격에 가끔 너무 무력하다.

 

<겁먹다>는 판타지이지만 확장하지 않고 소품으로 놓아두면서 <나쁜 아이>의 이성 마비를 풀어놓는다. 욕망은 언제나 더 많은 먹이를 요구한다. <죽고 싶어하는 여자>를 읽으면서 한계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한계를 넘어 계속 나아가면 결국 파국에 이르지만 그 선을 넘지 않으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녀가 진짜 원한 건 그 한계 너머일까? <성냥갑 증후군>은 다 읽은 지금도 과연 심리 문제인지, 아니면 진짜 기생충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몸을 긁는 장면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나도 긁고 싶었는데 단순히 기분 탓이겠지. 열두 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적응이 필요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처음과 상당히 다른 기분이었다. 아마 마지막 단편 탓이 아닐까. 이 작가가 장편을 쓴다면 과연 어떤 장르일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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