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다시, 당신에게로
오철만 지음 / 황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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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필름 사진이라는 말에 혹했다. 요즘 저자처럼 필름 사진을 주로 찍는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은 안다. 지금도 집 곳곳에 있는 앨범 등에는 학창 시절 찍은 필름 사진들이 있다. 그 당시는 디카처럼 마구 찍던 시절이 아니다. 필름 하나에 찍을 수 있는 횟수가 지정되어 있고, 보관도 잘 해야 했다. 저자가 배낭의 반을 필름으로 채워 다녔다는 말을 바로 이해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필름 현상 후 그 사진을 스캔해서 보관하고 후보정 작업을 하는 것 같다. 색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디지털 카메라와 필름 사진의 세밀한 차이를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강렬한 색채와 빛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세계테마기행 출연보다 한 장의 사진이 나에게는 더 강렬한 유혹이었다. 한때 세계테마기행을 즐겨보았다고 해도 말이다. 길이란 단어는 여행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가끔 읽게 되는 사진에세이는 대부분 멋진 사진들이 오랫동안 시선을 머물게 하고, 정제된 글들이 생각에 잠기게 한다. 보통의 에세이보다 조금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어떤 이야기는 더 오랜 시간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 장의 사진과 그 위에 간결하게 쓴 글들은 가끔 빛의 반사로 읽기 힘든 순간도 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더 많다. 사진가의 사랑이란 글도 마찬가지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부드럽게 머물며 치밀하게 관찰하는 것,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눈도 깜박이지 않는 것, 그렇게 호흡마저 멈춘 완전한 진공의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한다.

 

마흔여덟 이야기들은 분량도 모두 제각각이다. 짧은 글은 몇 글자 되지도 않는다. 어떤 이야기는 일반 산문처럼 흘러나온다. 물론 이 각각의 이야기에는 다양한 사진이 함께 한다. 그런데 이번 책은 읽으면서 최근 귀찮아 잘 하지 않는 부분 스크랩한 것들이 꽤 많다. 위의 사진가의 사랑이란 글도 그렇다. “나이를 먹을수록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는지, 그 안에서 꽃피는 유연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된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속적인 것이, 규칙적인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더욱 그렇다. 잠깐의 유혹을 수없이 넘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나 자신이 얼마나 많은 잠깐의 유혹에 굴복했던가.

 

단순히 사진만 아름다운 책이 아니다. 가슴 훈훈하고 가족의 애정이 진하게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이야기도 있다. 샤데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잘 보지 못하는 아들에게 자신들의 선물이 도착하길 바라는 부모와 이것을 힘들게 들고 가서 이틀 동안 수소문해서 전달하는 저자 일행의 모습은 눈가에 흘러내린 몇 방울의 밝은 빛으로 강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이 일 이후 그들에게 어렵게 전달된 편지 한 통은 멀리 돌아온 거리만큼 깊은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 편지 한 통이 전달되는 과정을 돌아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선의가 겹겹이 쌓여 있다. 저자는 겨우 몇 개의 짐이라고 하지만 그 ‘겨우’가 누군가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다.

 

“삶이 더해질수록 간직하고 싶은 장면들이 늘어날 것 같았으나 새로운 시간이 그저 과거의 시간을 밀어낸 뿐이었다.” 마음은 더 많은 장면을 간직하고 싶을 것이다. 현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사진가가 돌아다닌 수많은 장소와 시간들은 간직하고 싶은 장소이지만 모두 기억할 수 없다. 그의 기억들 속 장소나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조금씩 잠식된다. 인도에서 색을 배웠다는 그의 말은 강렬한 색 대비가 돋보이는 사진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컬러 사진보다 흑백 사진이 더 강렬한 색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책의 크기가 아닌 더 큰 사진으로 본다면 어떨까 하는 작품도 꽤 있다. 그의 사진을 사려고 하다 가격 때문에 연락이 끊어진 사람 이야기는 내 생각은 어떤지 돌아보고, 사진가의 설명에 조금 더 고개를 끄덕인다. 사진가의 전시회를 둘러싼 현실은 성공한 사진가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필름에 새겨진 시간들은 잠시 내게 머물다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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