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안전가옥 앤솔로지 1
김유리 외 지음 / 안전가옥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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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좋아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주 사먹지 못한다. 내가 좋아한다고 늘 가고 싶을 때 가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내가 반대하고, 아이가 싫어하면 갈 수 없다. 회사 근처에 좋은 냉면집이 있다면 점심시간에 가서 먹을 수도 있는데 불행하게도 없다. 한때는 냉면에 대한 환상을 품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유명한 강북의 냉면집 육수 맛 차이를 이제는 조금 안다. 그것은 어느 비 오는 날 우연히 느끼게 된 것이다. 슴슴한 맛 사이로 강하게 느껴지는 육수의 맛. 처음 평양냉면을 먹고, 가끔 먹을 때도 몰랐던 맛을 우연하게 느끼게 된 후 맛에 각성했다. 이런 내가 냉면에 대한 소설을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는가. 그리고 수상자 한 명과 초대작가 두 명은 관심을 두고 있던 작가들이 아닌가. 그렇게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첫 작품 <A,B,C,A,A,A>는 제목부터 낯설다. 김유리란 작가도 낯설다. <옥탑방고양이>의 작가라고 하는데 드라마도 영화도 본 적이 없다. 아! 연극은 봤다. 진주의 냉면집의 대기 번호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연하의 남자친구와 자신의 외모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뭐지? 이 커플 수상하다. 키 크고 잘 생기고 어린 남자가 나이 많고 이혼 경력 있는 뚱뚱한 여자가 사귄다. 흔히 하는 말로 여자가 재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남친 A에서 시작해 전에 이전 남자들로 넘어가면서 그녀의 연애사가 펼쳐진다. 이 어울리지 않는 커플 이야기가 재밌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글빨 때문이다. 냉면의 추억도 한 자리했다. 수많은 냉면 맛집 중에서 자신들만의 맛집 한 곳을 발견한 이들을 떠올리며 괜히 부럽다.

 

<혼종의 중화냉면>은 중국집 냉면의 기억에서 시작해 자신의 삶으로 이어진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부모의 이혼 후 대만 새아버지를 가졌었다. 이후 엄마는 또 이혼했다. 재밌는 사연 중 하나는 엄마는 아이누 족이고, 새아버지는 대만 내성인이다. 둘 다 일본과 대만의 주류가 아니다. 화자가 기억하는 중화냉면은 새아버지의 딸이자 언니가 만들어준 중국식 냉면이다. 이 냉면의 기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작은 고찰도 나오지만 목적은 정체성이란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중화냉면도 중국에는 없고, 일본에서 유래한 것과 다르듯이 화자도 민족성 혹은 국민성도 일반적 분류로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끔찍한 혼종 대신 좋은 혼종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남극낭만담>은 평범한 남극 조사단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 오마주라고 하는데 솔직히 이 작품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인디 영화감독이 지원금을 받고 남극 조사단의 음식을 영화로 담기 왔는데 뭐 특별한 것이 없다. 그러다 김 박사가 냉면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인공 조미료 이야기가 나오고, 냉면집 맛의 비결도 조금 폭로된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이들이 탄 차가 크레바스에 떨어지고 난 다음이다. 미식의 광기가 어떤 문제까지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작품들의 한 극단이 재현되고, 평범한 듯한 남극의 풍경은 완전히 뒤바뀐다.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dcdc의 작품이기도 하다.

 

전건우의 <목련면옥>은 전통적인 공포 소설의 공식을 따라가다 반전으로 이어진다. 최근에 공포 소설가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시대 설정을 1998년으로 잡았는데 이 시절은 한국 경제의 파탄과 가정의 파괴를 대량으로 불러온 시기다. 성실하게 일만 한다고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시기는 지났다. 당연히 좋은 일자리는, 숙식이 제공되는 일자리는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목련면옥은 손님이 많은 냉면집이다. 화자 김준민이 첫날 먹은 냉면은 정말 맛있었다. 농담처럼 인육이니 그가 자는 방을 기어다니는 여자가 있다는 등이 농담을 건낸다. 이렇게 조금씩 고조되는 긴장감은 호기심과 정의감이 결합하면서 아주 무서운 이야기로 돌변한다. 더불어 마지막에는 반전까지.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이렇게 우리 입맛을 사로 잡았다>의 작가 곽재식은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있다가 얼마 전 첫 단편을 읽었다. 집에 둘러보면 몇 권 더 있다. 이번 작품은 황당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우리가 어떻게 맛집을 만드는지, 맛집의 실체란 것이 얼마나 피상적인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성실한 실패란 놀라운 발상과 이 발상이 만들어낸 허구가 어떻게 스토리텔링으로 변해 성공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면서 말장난의 유쾌한 전개로 이어진다. 정부 투자사업의 성공이 오히려 실패란 설정과 이 일 이후 두 남자의 다른 삶의 방식도 현실과 허구의 모습으로 끝맺는다. 그런데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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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9-05-09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들이 모두 재미있을 것 같아요. 불행히 저는 냉면을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책은 기대가 되네요.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