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주 가는 길 - 사진가 김홍희의 다시 찾은 암자
김홍희 지음 / 불광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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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김홍희의 포토에세이다. 2년에 걸쳐 모토사이클을 타고 다니면서 암자 26곳을 찍고 기록했다. 사찰 이름을 보면 낯익고 가본 절도 상당히 있다. 하지만 암자로 한정하면 가본 곳이 없다. 어쩌면 한두 곳 정도 둘러봤을지 모르지만 기억에 남는 암자가 없다. 그리고 최근 내 마음 속에 가장 가보고 싶은 암자 한 곳이 나와 눈길이 갔다. 여수 향일암이다.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가 손에 꼽은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좋은 곳이었던 남해 보리암보다 좋은 평가를 내렸다. 그 평가라고 해봐야 한번 가볼만 한 곳 정도였지만.

 

기독교 신자인 그가 불교 사찰 등을 찍게 된 인연을 설명한 부분은 재밌다. 일 때문이지만 시간과 관계가 쌓이면서 불교와 예수에 대한 이해의 폭은 오히려 넓어졌다. 단순히 이 책만 보면 그가 크리스천이란 사실이 믿기질 않을 것이다. 오다가다 만나고, 여기저기에서 들은 몇 가지 지식이라고 해도 그 깊이가 예상을 넘는 곳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물론 이 깊이가 너무나도 낮은 나의 관점에서 본 것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색이 빛이고, 공이 그늘이란 대목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가 나에게 다시금 다가왔다.

 

스물여섯 암자를 찍었는데 모두 흑백사진이다. 컬러 사진만 보다 이런 흑백사진을 보면 느낌이 조금 색다르다. 전문사진가가 아닌 내가 구도를 잘 알지도 못하니 얼마나 잘 찍었는지 알 수 없다. 흔히 보는 반듯한 사진은 아니다. 이 사진에 대한 그의 철학을 이야기 속에 잠시 녹여내었는데 시간의 흐름 속에 생각의 흔들림이 조금씩 보인다. 예술로서의 사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는데 이것은 단순히 기술을 넘어선 부분이다. 시간과 공간을 한순간 포착해 셔터를 누르는 그 작업은 감안해야 하는 것도 많다. 거기에 자신의 철학도 담아야 한다. 아직 그 단계를 알 정도의 수준까지 내가 나아간 것은 아니다.

 

많은 사진들 속에서 나의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향일암에서 찍은 바다 사진이다. 빛과 그림자, 바다와 햇살, 그 눈부심을 흑백이란 색대비로 포착했을 때 단순히 눈부신 바다가 아닌 색다른 바다로 내게 다가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는 다양한 문양을 보여주고, 높고 낮은 파도는 질감을 드러내었다. 무심코 보다 그 강한 인상에 계속 들여다보게 되었다. 다른 사진들도 빛을 통해 사물의 다른 모습을 포착하고, 원근법으로 사물의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흔히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잘 놓치는 모습들이다. 절에 갈 때 일반 관광객들이나 참배객들이 눈여겨보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순간들이다.

 

많은 암자를 다니다보니 많은 스님들과 주변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다시 찾아오다보니 옛 스님이 선종하신 경우도 있다. 이런 만남과 기억들은 그의 글 속에서 하나의 추억이 되고, 그 암자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비교하게 만든다. 최근 절 입구에서 생기는 주차 문제도 잠시 다룬다. 욕망을 벗어던져야 하는 절 아랫마을은 그 욕망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커피 좋아하는 스님이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다방에 가서 일곱 잔을 순식간에 들이켰다는 에피소드에서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얼마나 질기고 강한지 살짝 엿본다. 더불어 나의 욕심도 같이 잠시 돌아봤다.

 

사실 김홍희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한 팟캐스트 때문이다. 그곳에 나온 그의 입담과 이 책을 생각하면 잠시 괴리감이 생긴다. 그 당시 그의 이름을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하고 대부분 절판인 것을 봤고, 중고가가 상당히 높은 것에 깜짝 놀랐다. 이 사진가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하고. 그리고 그가 팟캐스트에서 한 말 때문에 착각하기도 했다. 우매한 중생이 자신이 듣고자 하는 말만 들은 것이다. 이렇게 쌓인 기억들 속에서 사진과 글로 다시 만난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잘 아우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가 암자를 다시 찾은 것처럼 나도 언젠가 절에 가면 암자로 발걸음이 옮겨질지 모르겠다. 그때 다시 읽게 되면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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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8-10-24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팟 캐스트 들었는데 재밌는 분이신 것 같더라구요. 책은 어떨지 궁금.. 향일암은 제가 갔다 온 2-3년 정도 후에 불에 타서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거의 울 정도로 아쉬웠던, 그만큼 좋았던 곳이네요. 다시 복구한 듯 하니 시간 되시면 꼭 다녀오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