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
이어령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이어령 선생님의 글에는 늘 신선함과 예리한 분석 그리고 영적 세계의 깊이가 전해진다.

 

가위바위보 문명론은 일본에서 먼저 출판이 되고난 후 역으로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이 책이 일본에서 출판되었을 때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을 바로 손에 잡고 읽기 시작했다. 역시 빠른 호흡으로 글을 읽도록 만드는 선생님의 문체는 현학적이지 않지만 문학적이면서도 학문적 적합성을 견지하며 전개된다. 그래서 예리한 비판과 분석이 전개되는 곳에서 우와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쓴단 말인가 하며 감탄하며 글의 내용을 음미하기도 했다.

음미한 글의 내용을 간략하게.

 

우선 한국어판의 이어령 선생님 글과 서문이 이 책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부분만 읽게 되어도 가위바위보 문명론을 100% 소화할 수 있다.

 

1. 일반적 사고 비틀기

 

표 파는 곳, 학교, 교과서, 엘리베이터, 낮, 인류와 남자 등등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케 한다.

표 파는 곳은 일본의 고속철 신칸센의 표를 파는 곳을 말한다.

사람들은 왜 표 파는 곳에 가서 표를 사는가?

표 사는 곳에 가서 사야하지 않을까?

파는 사람 입장이라는거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라는 현대적 정의는

교사가 주체가 되어 교실에서 교과서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리키는 곳이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거다.

근대까지만 해도 학당, 학원이라 하여

학생들이 배우는 곳이 학교였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런 예는 이 책에 수없이 많다.

 

이어령은 무지개색을 부르는 것도 나라마다 다르다고 한다.

어느 나라는 무지개색이 일곱 가지라고, 여섯 가지라고, 두 가지라고.

 

가장 중요한 대조가 있는데

동전 던지기와 가위바위보다.

동전 던지기는 앞과 뒤의 실체면 끝.

하지만 가위바위보는 다르다는 것.

가위바위보는 상대가 있어야 하고

가위바위보에서는 이긴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이길 수 있다는 원칙이 없는 그래서 순환하과 관계적인 코드라는 것.

동전 던지기는 명백한 이항대립의 관계를 설명하고,

가위바위보는 순환하고 포괄하는 아시아의 가치를 의미한다.

이것을 이어령 선생은 아주 중요한 한중일의 공통분모 및 차이 그리고 가치라고 한다. 이러한 한중일 각 나라의 가치와 가위바위보가 내포하는 상징성을 잘 풀면 한중일의 평화는 물론이거니와 아시아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 놀라운 주장. 학문적 근거가 절실히 필요한 부분이다.

 

2. 가위바위보가 대변하는 한중일의 모습

 

이어령은 한국을 가위

중국은 보

일본을 주먹이라고

그래서 한중일의 가위바위보는 이기기만 하는 게 아니고

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고. 서로 순환하는 구조라고.

 

여기서 잠깐 이어령 선생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통해

중국은 보, 일본은 주먹, 한국은 가위라고 추론을 한다.

그러나 그 추론이 과연 타당한지는 더 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어령 선생의 분석은

언어적 상관관계와 고대 역사 기록을 통한 추론으로 한중일을 연결시키기에 현대적 상징 코드로서

가위바위보를 한국과 중국과 일본으로 매칭시킨다는 것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 적합성에 부분에서는 다시 한 번 차분히 검토해 봐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언어적 상관관계에 따른 분석은 206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아시아는 '해가 뜨다'라는 의미의 '아수'에서 나온 것이고 유럽은 '해가 지다'라는 의미의 '에레브'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것이다."

 

다시 위로 올라가서 ...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결과를 먼저 이야기하고 그러고 보니까 한국은 이렇고 중국은 저렇다는 식의 이야기다.

 

책에서 예를 들어 보이면 다음과 같다.

240쪽

"지금의 한중일의 무역 구조도 정확히 삼국권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한국은 중국에 흑자를 내고, 중국은 일본에 흑자를 내고, 또 일본은 한국에 흑자를 내고 있다."

241쪽

"동아시아의 함삼위일은 종교의 영역만은 아니다. 세미오시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언어 문자에 있어서도 한중일 삼국은 이상적인 가위바위보 코드를 보이고 있다. 한글 한자 가나라는 세 언어가 가위, 바위, 보와 같은 관계로 맺어져 있다."

이런 예는 곳곳에 있다.

이런 결과론적인 자료로부터 출발하여

그러고보니 가위바위보 코드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더라는 식의 논리는 어찌하든 맞는 경우는 가하다 할 수 있지만, 틀린 부분이 있거나 예외적인 상황이 있게 될 경우 어떻게 될까?

 

3. 유독 일본에서 가위바위보 코드가 잘 보이는 이유는?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한국은 가위바위보 코드를 많이 잃어버린 것 같고

일본은 사회 곳곳에서 아직도 가위바위보 코드가 많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정, 관, 업의 아이언 트라이앵글의 일본사회, 164쪽을 참조하세요. 그리고 근로, 분도, 추양이라는 보덕 방법, 175쪽을 참조하세요. 나쓰메 소세키의 <명암>과 삼체문제도 가위바위보 코드의 예이지요, 179쪽부터 참조하세요.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는 왜 이런 코드가 사라졌을까?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우리나라 민족문화의 말살과 산업화로 인한 한국사회의 몰락, 진짜 한국사회의 토대를 쌓아올리지 못하고 식민지배를 받았기에 그렇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사대주의. ... 통과 ...

 

4. 무시무시 재미있는 내용이 나오는데 바로 한국 역할론

 

가위바위보 문명론을 일본 독자들이 읽고 어떤 반응이었을까 사뭇 궁금한 부분이 바로 여기였다.

책 쪽수로 말하면 203쪽부터인데, 집중적으로는 220쪽의 대륙의 보 이야기, 225쪽의 일본의 주먹 바위 문을 여는 힘, 마지막으로 230쪽부터 시작되는 한국의 가위-반도의 밸런서.

특히나 한국의 가위-반도의 밸런서 부분은

내가 읽기에도 심했다 싶은 내용이 있다.

뭐...한국 찬양론이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그런지 감동도 받았고 기쁘기도 했지만...결국 왜 이리 슬픈지...

나라의 힘이 중국과 일본에 밀린 상태라

더더욱 이어령 선생의 한국의 가위 역할은

참으로 장밋빛 희망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233쪽을 읽어보시면 반도성을 회복하라고 하는데

반도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이 사는 길이며 더 나아가 한중일 세 나라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고 이리 될 때에야 세계 평화에 이바지 한다는 것.

참 너무 낙관적이 아닐 수 없다.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이어령은 상보적 상관적 순환적인 새로운 동북아의 미래의 그림을 그려보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힘없는 자에게는 달콤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그러나 힘센 강대국은 그럴 필요가 더 없지 않겠는가?

가뜩이나 일본은 호시탐탐 전쟁하는 나라로 바꾸기에 정신이 없고

중국은 이미 세계 제2의 경제국과 국방력으로 세계 패권을 바꾸어 가고 있다. 이런 때에 가위바위보 문명론을 통하겠는가? 

 

어쨌든 이어령은 마지막에 장렬하게 외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오라고.

왜?

그것은 배타적이고 이항대립적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문화와 가치는 늘 그래왔기 때문에.

전쟁으로 밖에 해결할 수 없고, 승자의 원칙으로 세계를 움직이기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와 승강기의 가치를 가지라고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는 것이 진짜 엘리베이터라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승강기의 눈을 가지라고.

질때가 있으면 이길 때가 있고,

내가 이긴 상대에게 내가 언제고 질 수 있음을,

나를 이긴 자가 다른 상대에게 언제고 질 수 있음을,

나를 이긴 자보다 더 강한 자를 내가 이길 수 있다고.

그러므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라고.

동전 던지기 게임은 하지 말라고.

가위바위보로 살아가길.

 

5. 끝으로 아쉬웠던 부분.

 

후반부에 일본 소설이 나오는데, 일본 사람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한국인인 내가 읽고 공감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100년 이상 번영을 이어온 미국 기업을 조사 분석한 결과 얻어낸 것은 놀랍게도 우리나라 국기에 그려진 태극 도형이었다고 하는데, 저서의 각 장에 태극 도형을 상징적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부분은 조금 더 친절하게 한국 독자를 위해서 미주로 빼지 말고 설명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7쪽

가위바위보의 기원을 찾아 서구 문명과 다른 한중일 공유가치를 밝히는 작업은 지금껏 누구도 시도해본 일이 없었다. 일본 학자조차 가위바위보 놀이를 문명 문화의 구조로 분석하고 논문이나 저서로 발표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9쪽

무언가를 결정할 때, 서양 아이들은 동전을 던지지만 아시아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한다. 앞이냐 뒤냐 그 단면만으로 결정하는 동전은 `실체`이며 `독백`이다. 하지만 상대의 손과 만났을 때 의미가 생기는 가위바위보는 `관계`이며 `대화`이다.

10쪽

상호 의존하는 네트워크 시대에는 `가위 바위 보`가 공작처럼 문명의 독을 정화하고 아름다운 꼬리를 펼친다. 21세기는 가위바위보의 세기이다.

...

가위바위보는 강한 것보다 약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 준다. 거대한 중국과 강력한 일본이 힘자랑만 한다면 가위바위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먹 아니면 보자기의 뻔한 싸움에는 양자택일의 대립밖에는 생기지 않는다.




부드러운 보가 딱딱한 바위를 이기는 가위바위보의 덕이 동아시아 평화의 엔진이다. 하지만 가위바위보는 바위와 보만으로는 성립될 수 없다. 대륙인 중국과 섬나라인 일본 사이에 한반도라는 가위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끊임없이 경쟁하면서도 절대 승자 없는 아시아의 다이내믹한 둥근 원이 만들어진다.

111쪽

경쟁 상대와 호흡을 맞추고 구령으로 박자와 장단을 조절하는 가위바위보 코드의 하나인 코피티션은 아시아의 음양과 중용, 그리고 둘이면서 하나인 불이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

190쪽

이항대립의 문화 코드가 지배적이었던 서양의 문영사회에서 가장 당혹스럽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이었다. 유럽에서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둘러싼 논의와 항쟁으로 인해 교회가 분열되고, 신자들은 서로 상대를 이단자라고 배척하면서 엄청난 박해와 살상을 저질렀다.

199~200쪽

반대로 2인칭의 가위바위보 코드가 상극관계로 나타나면 알카에와 같은 글로벌한 테러조직이 된다. 그러므로 테러와의 전쟁은 지금까지처럼 국가와 국가가 싸우는 군대조직으로는 결판을 내기 힘든 비대칭 전쟁이 되어 버린다. 역시 여기에서도 대 테러전은 삼자견제의 가위바위보 코드를 적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230쪽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바위와 보만으로는 가위바위보를 할 수 없다. 가위의 존재가 있어야 비로소 다이내믹한 순환운동이 일어난다. ... 만약 한반도가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 사이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동북아시아는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륙도 아니고 바다의 섬도 아닌, 또는 대륙이기도 하고 바다의 섬이기도 한 그레이존이 한국의 반도이다. 그 반도 문화가 있었기에 동북아시아 문화의 독특한 다양성과 통합성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33쪽

반도성의 회복은 한민족만의 일은 아니다.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전체가 삼파의 역학관계를 회복하고 독특한 로컬리즘을 살리는 일이다. 물론 진담 반 농담 반의 이야기이지만 동북아시아의 진짜 중국은 중국이 아니다. 매일 해바라기 위성에서 보내오는 기상도의 지도를 보면 동아시아의 한 가운데 있는 나라는 중국도 일본도 아닌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들이 포진해 있는 234쪽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EU와 같은 연합국가가 만들어진다면 그 수도는 아마 도쿄도 베이징도 아닌 서울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도쿄가 되면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안을 것이고, 베이징이 되면 일본이 묵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21세기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는 2005년 1월 19일 조선일보와의 대담에서 `만약 유럽 연합 모델이 아시아로 수출된다면, 한국이야말로 아시아 연합을 주도할 가장 이상적인 국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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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8-22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어령 선생의 기발하면서도 은유적 표현 저도 재밌어 합니다만, ˝가위-바위-보/한중일˝ 매칭이 저도 적합치 않다고 생각되는 것이 그 모두에 간섭하는 ˝미국˝은 그럼 뭐란 말입니까ㅎ;;
이어령 선생 글은 좋은 점이 더 많지만 맥락을 너무 국한시킨 코드화, antibaal님도 언급하셨다시피 ˝한국찬양˝이 지나치게 논점에 스며있다는 점이 늘 단점으로 미진하게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