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기 싫은 77가지 이유
이만재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1997년 1월
평점 :
품절


서평 『교회가기 싫은 77가지 이유』

-교회가 싫은 두 부류의 젊은이들의 이야기-

 

 

저자 소개

 

저자 이만재는 쉰 가까운 나이에 가수 윤형주 집사(당시)의 손에 이끌려 교회 문턱을 처음 밟았다. 그 사건 후로 하나님 사랑의 기적을 체험한 그는 술 담배를 끊고 크리스천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예수님과 사랑에 빠진 삶을 하루하루 솔직하게 기록한 그의 놀라운 일기는 '막 쪄낸 찐빵'(두란노, 1992년)과 '세상 속의 찐빵'(두란노, 1993년)으로 출간되어 국내외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식탁 기도는 쏘주 집에서도 해야 되는 걸까? 윤 집사에게 물어봐야겠다'라던 '하나님의 막 쪄낸 찐빵' 이만재가 아직도 우리에게는 새롭기만 한 경이의 대상이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내내 어린아이의 초신자 심성 그대로인 영원한 청년이다. '동원참치 살코기 캔', '냄새 잡는 산도깨비',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사나이 대장부가 울긴 왜 울어 농심 신라면', '인심 좋은 안성댁 안성탕면', '맨 마지막에 선택되는 옷 논노', '정직한 세상을 가꾸는 방송 CBS', 그리고 한겨레신문 창간 모금광고 캠페인 등을 만든 유명 카피라이터. 70년대, 카피라이터라는 직능 명칭이 생기기도 전에 이 분야에 뛰어들어 과도기의 7, 80년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개척자로 살아온 이 노장 카피라이터는 40년 동안 광고 카피로 사람을 만나며 여러 매체를 통해 물신주의의 세상을 인간 중심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만재는 서울카피라이터즈클럽 회장과 카피파워 작업실의 대표를 역임했고, 대한민국광고대상 심사위원, 공익광고 심의위원, 조선, 경향, 국민, 한겨레신문 광고대상 심사위원 등을 지내면서 CBS, KBS, MBC에서 방송인으로도 활동했다. 저서로는 '막 쪄낸 찐빵', '세상 속의 찐빵', '인간으로 오신 예수', '실전카피론 1, 2', '카피라이터의 술잔', '카피라이터 입문' 등이 있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70088655)

 

내용 소개

 

저자는 어느 날 세상 때에 찌들대로 찌든 삶을 살다가 교만의 고개를 접고 마음 문을 열어 예수님의 사랑과 역사하시는 힘을 어떻게 맞아들이게 되었는지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막쪄낸 진빵>이 불신자 전도용으로 수십만 권이나 팔리게 되면서 ‘진빵 대소동’으로 인해 졸지에 기독교 방송의 라디오 MC를 맡고 생업과 방송을 겸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한 방송생활을 통해 교계 정보를 많이 알게 되었다. 특히 198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 비롯된 교세 성장의 둔화 현상이 저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교세 성장의 둔화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초신자 신규 영입 증가율의 감소와 신세대 청년층의 잇단 교회 이탈 현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불신자와 초신자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젊은 신세대 계층 선교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었다.

이것이 직접적인 이유가 되어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그러하기에 신세대의 성향, 행동 양태를 알기 위해 애쓴, 젊은이들이 교회를 멀리 하려 하고, 왜 교회를 떠나려 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저자가 담담히 세상의 방식과 논리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그들에게 조언하며 충고하고 설득한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교회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총 서른아홉 가지의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노방전도 모습 보면 만정이 딱”이라는 첫 번째 주제부터 “신체 장애 때문에 안 간다”라는 서른아홉 번째 주제까지이다.

그 다음은 “교회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각종 모임 참석 강요 많다”는 제목으로 마흔 번째 글이 시작되고 “신분차별 때문에 벽 느꼈다”라는 제목의 일흔일곱 번째 글로 마무리 된다.

내용상으로는 이 책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어 구성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공통된 내용이 많다. 그러니까 교회 경험이 없는 젊은이와 교회 경험이 있는 젊은이의 이야기가 상당수 많이 공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공통된 내용을 나중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교회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이후로는 개신교로 국한함)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는 것이다. 술과 담배도 이해 못하는 편협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외래문화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고 부모님들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교회에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광신도들의 모습을 보면 무섭고 거부감이 들고 특히 기도원 풍경과 가정을 파괴하는 광신적 신앙생활,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리가 너무나 해괴하다는 반응이다. 동정녀 마리아와 하나님의 전지전능, 죽은 후 천당에서의 영생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밖에 교회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은, 사회적인 이슈로 세무 조사에 반대하는 교회, 압력 집단으로서의 교회, 헌금의 부정적인 모습, 사회생활에 제약 등을 제기한다.

교회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교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각종 강요되는 많은 모임, 기업화된 교회, 교회에서 정말 존경할 만한 신앙인을 보지 못했다, 이중인격자인 성도, 또 하나의 계급 사회를 만들어가는 교회, 교인이 되면 뭔가 달라야 한다는 부담감, 목사의 질 저하 등등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교회 경험이 없건 있건 젊은이들의 오해와 상처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교회다움을 잃어가는 교회에 대한 실망감이다. 교회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며 오히려 더 깊은 오해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중에 대표적인 예가 바로 헌금과 관련한 교회의 맘모니즘과 세속주의이다. 교회 안에 존재하는 기득권과 계급, 여전히 세상 속과 교회 안에 군림하는 인간 군상들, 교회라고 하지만 신성하지 않은, 세상 속의 조직과 다를 바 없는 운영, 그렇기에 예수만 믿으면 되지 교회에는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서 평

 

대학부 때 이 책을 접했던 것 같다. 군입대를 위해 휴학하며 이 책을 읽었는데,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생각할 겨를 없이, 잘 알고 있는 교회 이야기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어서, 쉽게 공감할 수 있었고, 그래서 술술 읽혔고 읽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맞아 맞아’ 공감하면서 가슴 아파하기도 했고, “왜 우리 교회는, 목사님들은, 교회의 어른이신 장로님과 권사님들은, 왜 그러실까?”하며 속상해 하며 뾰로통해하기도 했다. 다시 이 책을 읽고 느끼는 감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편치 못하다. 왜냐하면 내가 져야할 책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같이 비판하는 자의 자리에 있었지만, 지금은 그 비판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대안을 마련하고 “교회다움과 성도다움”의 바른 삶을 살아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나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더군다나 이 책을 읽으며 함께 읽었던 홍성사에서 출판된 정숙희 기자의 <그들은 왜 교회를 떠났을까>를 통해서,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회복되지 못한 한국교회 이야기를 확인할 때 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에 답답하기도 했고 어떻게 목회를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목회가 되며 세상에 칭찬받고 세상을 이끌어 가고 변혁하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대학부 때는 이 책에 등장하는 젊은이들과 같은 관점과 마음이었다. 그래서 당시 신세대들을 위해 설득하고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애쓰는 저자 이만재의 노력이 너무나 안쓰럽고 이해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교회를 옹호하고 목사 편에 서서 교회의 조직과 체계와 운영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설명이고 이해를 구한다는 대답이기 때문이었다. 겉에서 볼 때에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그럴 만한 상황과 환경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교회 밖에서 비판하지 말고 교회 안으로 들어와 살펴보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때보다 지금, 저자 이만재의 노력에 공감하지만 여전히 긍정적인 반응은 할 수 없었다. 나는 이만재의 젊은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설득하고 이해시키려고 하는 그 노력보다 우리가 아니 내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세상 밖을 향하여 우리의 입을 다물고 묵묵히 수도하며 우리 주님께서 일러주신 복음의 삶을 살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며 우리가 낼 수 있는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에까지 이르자 부족하고 능력 없는 내가, 주님 일러주신 삶을 살지 못하는 가치 없는 무익한 종이라는 생각에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정말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공동체는 무엇이었는지,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아마 지금의 교회를 원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란 생각이 들 때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목회자가 되어야 할지 막막해져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