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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명확하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뉴라이트 단체들의 정체, 운동 및 그 목적을 알 수 있다. 한국 정치의 지각 변동 속에서 뉴라이트가 어떻게 살아서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뉴라이트가 무엇인지 저자의 글을 인용하여 정리하겠다.
“뉴라이트는 원래 학술 운동이 아니라 정치 운동이다. 한국 정치계에서는 반공독재 시대에 뿌리를 둔 수구파가 큰 힘을 지키고 있었다. 큰 힘에도 불구하고 1987년 이래 수구파가 수세에 몰려 있었던 것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과 냉전 해소의 여파 때문이었다. 그 위에 1997년 경제 위기까지 겹치자 수구파가 분열, 일부가 야당과 연합해 김대중 정권을 낳았다. 고개를 숙여 책임을 피하면서 실력을 지키고 실속을 챙기는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7쪽)
계속해서 자세히 인용하겠다.
“그런데 2002년 대선의 뜻밖의 패배에 이어 2004년 총선에서 의회 다수당 자리까지 빼앗기자 수구파는 벼랑 끝에 몰린 위기감에 빠졌다. 그 위기를 돌파하려는 노력이 뉴라이트 운동으로 나타났다. 이 운동에서는 정책 노선을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까지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대표되던 이른바 ‘진보진영’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아올 필요를 내세워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진영’을 수구파 중심으로 결속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역사를 이렇게 보자는 주장도 내세우게 된 것이다.”(7쪽)
그러니까 한 마디로 뉴라이트 운동은 정권을 되찾기 위한 수구파의 운동인 것이다.
저자는 한 마디로 잘라서 얘기한다. 이 운동을 이루고 있는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학문적으로 매우 부실한 것이다.”(7쪽)라고. 그래서일까 저자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그들과의 학문적인 대화는 차지하고서라도 그들의 틀린 점 그른 점들을 얘기하기에도 버거운 눈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그동안 연구해 왔던 자신의 연구물과 뉴라이트의 역사관에 대해 비교하며 비판하는 것은 비판의 신뢰성에 큰 힘을 실어 준다.
예를 들어 안병직과 이영훈은 그들의 책 어디 어디에서 이렇게 주장했는데, 나는 이런 근거로 그들이 틀렸음을 주장하며 그 논거는 나의 책 어디 어디에 나와 있다는 서술이다. 학문적 성격이 책이 아니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행본에서도 독자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으니, 뉴라이트의 실체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들이 수구진영에 열광하는 팬들이 손에 쥐여 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 뿐이다. 보수는 좋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손에 놓고 말겠다는 그런 꽉 막혀버린 보수는 수구인 것이다.
저자는 뉴라이트의 인간관, 국가관, 식민지 근대화론, 이념, 문명관, 민족관, 대미관, 경제정책, 자본관, 친일파, ‘친미 내셔널리즘’, 대북관, ‘대안 교과서’, 승리주의, 역사 교과서 파동, 보수주의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여러 항목에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저자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있다면 뉴라이트의 인간관이며 문명관일 것이다.
인간관은 이 책 초반부에 20여 쪽 분량으로 서술되어 있으면, 문명관은 대략 10여 쪽 분량으로 정리되어 있다. 뉴라이트의 골격을 이루는 부분이다. 뉴라이트를 급히 알아볼 요량이라면 이 두 파트만 먼저 읽어보아도 될 듯하다. 저자의 뉴라이트에 대한 인간관과 문명관은 뉴라이트의 실체이다.
우선, 저자가 비판하는 뉴라이트 인간관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는 것에 있다. “다른 요인을 일절 돌아보지 않고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면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볼 수밖에 없다.” (10쪽)
그래서 저자는 20~21쪽에서 부시먼족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다음과 같다.
“부시먼족의 먹을거리 중에는 쥐, 뱀, 벌레 등 ‘몬도가네’ 수준이 많다. 그러나 관습의 색안경을 벗고 보며 영양학적으로 훌륭한 먹을거리들이다. 먹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생존을 위한 먹을거리 확보에 큰 노력이 들지 않아서 서로 어울려 노는 등 여가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먹을거리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부시먼족의 사회의 관찰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구성원들의 연대감이다. 식량을 오래 보관할 수 없으니 사유재산의 개념이 약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남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는 길조차도 이 사회에서는 막혀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몇 차례 사냥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듭 올리자 동료들이 슬그머니 왕따를 시키는 모습이 관찰되었는데 그 사람은 사냥에서 빠졌다가 며칠 후 다시 나서자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L.S. Stavrinos, Lifelines from our Past: A New World History, Pantheon Books, 1989, pp.23~30)”(20~21쪽)
저자는 과연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 뿐인가?, 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인간에게서 인간다운 특성을 제거하고 싶어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뉴라이트 진영이 규제 완화, 민영화, 부유층과 고소득층의 감세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구한다는 사실과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정글 자본주의에 방해되는 인간적 사회적 가치를 배척하는 신자유주의, 그에 복무하는 뉴라이트에게서 실제로 인간이 살아오고 겪어온 과정을 추적하고 성찰하는 진지한 역사 담론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겠다.”(25쪽)
인간은 과연 이기적인 존재뿐일까라는 문제에 대해 저자는 위의 결론을 맺는다. 우리는 그러므로 자연스레 뉴라이트의 문명관으로 넘어갈 수 있겠다. 뉴라이트 문명관은 앞서 말한 저자의 결론대로 신자유주의 정책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 신자유주의 정책은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이어야만 하고,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이어야만 한다. 이 자본주의는 바로 문명임을 뉴라이트는 주장한다.
뉴라이트의 문명관에 대해 다루려면, 무엇보다 이영훈의 『대한민국 이야기』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이영훈은 “자유, 인권, 법치, 사유재산, 시장, 자기 책임 등”을 문명의 기초로 정의한다.(61쪽) 저자는 이영훈의 이런 시각이야말로 잘못된 관점이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요소들을 제대로 갖춘 문명사회가 이 지구상에 출현한 것이 언제의 일이었을까?”(61쪽) 이영훈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 시민사회, 곧 자본주의를 곧 문명으로 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62쪽) 그렇기 때문에 뉴라이트는 이승만을 높이 평가한다. 왜냐하면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문명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의 식민지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일본식민 통치를 옹호하는 것도 자본주의 문명의 길을 일본이 열어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곧 문명’이란 황당한 개념 정의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일까.”(33쪽) 뉴라이트는 이승만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는데, 박정희 대통령도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겠는가! 뉴라이트의 문명관에 의하면,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및 일본의 식민 통치는 대한민국을 지금의 길로 인도한 역사적인 인물이면 사건인 것이다.
여러 말 할 필요 없이, 저자의 글로 이 책 전체의 마무리 짓고자 한다.
“‘역사학자 아무개’가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작업을 한다고 나서는 것을 보고 독자들 중엔 ‘음, 누가 역사학계 수비수로 나섰나 보군’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책을 읽은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역사학계 수비수가 아니다.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되면서 가끔씩 ‘역사학자’ 타이틀도 반납해야 옳지 않을까 고민도 하는 사람이다. 내 딴엔 역사 공부라 생각하며 공부를 계속하지만, 연구 논문을 낸지 10년이 다 돼가는 사람이 ‘역사학자를 자칭하기가 멋쩍어지는 것이다. 나서는 입장을 굳이 가리자면 ‘역사 평론가’라 할까? 작업에 임하며 첫 번째 원칙으로 마음먹은 것이 사실 관계를 다투지 말자는 것이었다. 사실 관계는 그 분야 전문 연구자들의 몫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뉴라이트 역사관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비평하는 것이다. 작업을 통해 내가 얻은 결론은 뉴라이트 역사관이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관이라 할 수 없는, 하나의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부정적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리는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겠다. 역사관이라면 역사의 일부분을 보는 눈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보는 눈이다. 그런데 뉴라이트 역사관은 자본주의 발생 이전을 보지 못한다. 개인주의를 전체로 하는 자본주의를 문명의 유일한 형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눈으로 ‘자본주의 이후’를 내다본다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자체도 극히 경직된 의미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206-207쪽)
그러므로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은 정당한 학문적 노력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정략 노선을 지원하기 위해 억지로 짜 맞춰진 틀이다.”(2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