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문어도 영혼이 있을까?

답을 하려면 무엇을 두고 영혼이 있다고 할건지 먼저 약속을 해야 할 것 같다. 영혼이라는 게 너무 막연해서 우선 생명체를 하나 떠올리고 그 존재의 영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것의 영혼이라고 할 만한 것. 성격이라던가 취향이라던가 다른 개체와 구별할 만한 점. 이런 게 혼합되어있는 하나의 생명 안에 영혼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부모님집에는 (강아지가) 어릴 때 나와 사랑으로 같이 살았던 소리라는 개가 있다. 소리는 아기때부터 정말 총명했다. 그래서 똑소리난다고 소리라는 이름을 지었다. 유전자의 1/4은 확실하게 진도인 시고르자브종이다. 나머지 유전자는 알 수 없지만 성격적으로는 진도 특징이 잘 드러난다. 쏘쿨녀라 같이 놀다가도 자기 놀이량이 차면 저만치 떨어져서 등돌리고 누워버린다거나. 사료도 필요한 양 이상은 절대 과식하는 일이 없다. 딸기는 싫어하고 사과는 좋아한다. 수많은 시고르자브종 누렁이들이 모여있어도 누가 우리 소리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올해는 자주 못 갔지만 오랜만에 봐도 반가워하는 걸 보면 아마 소리도 그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따뜻하고 작은 털뭉치 안에 나와 교감할 수 있는 영혼이 들어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내가 소리의 영혼에서 추출했던 것들의 흔적을 찾아본다. 책에는 네 마리의 문어가 나온다. 그 중 칼리라는 문어는 열정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이고 옥타비아라는 문어는 온화하고 다정한 성격이다. 당연하게도 문어에게도 성격이란 게 있었다! 또 기호도 분명하다. 맘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수관을 이용해 물대포를 쏘며 표현한다. 문어들은 피부색을 순식간에(0.7초) 바꿀 수 있지만 일부분 색이 변하지 않는 점 같은 부분도 있다. 만약 똑같은 크기와 점과 모양의 문어를 여러 마리 준비해도 작가는 팔을 내밀어 교감을 통해 친한 문어를 찾아낼 것 같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빨판을 내밀어 친근감을 표시하는 문어를 봐도 마찬가지다.

책으로 접한 야생문어의 일생은 너무 고독해 보인다. 문어는 평생 혼자 지낸다. 어미가 알을 부화시키고는 곧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생명일 때부터 포식자를 피하고 먹이를 구하는 일을 스스로 해야 한다. 이렇게 혼자서 살다가 평생 한번 번식을 한다. 수컷은 짝짓기 이후에 금방 죽는다. 암컷은 신기하게도 정포(사람의 정자)를 가지고 있다가 원하는 시기에 수정을 시키고 알을 낳는다. 부모의 사랑을 한번도 경험해보지도 못했고, 어깨 너머로 배울 기회도 없었지만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알을 정성들여 키운다. 그리고 알들이 부화하면 고생 끝에 어미가 죽는다.

책에도 나오지만 영리하고 감정적인 문어들이 수명이 너무 짧아 안타까웠다. 만약 수명이 좀더 길어질 수 있다면 더 많은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거다. 야생에서야 이렇지만 책에 나오는 수족관에서는 문어들이 사육사와 자원봉사자와 이 책의 작가와 교감을 나누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유는 모르지만 문어의 짧은 수명에는 딱딱한 보호껍질 없이 부드러운 피부만으로 외부 세계와 맞닿아야 하는 숙명적인 스트레스가 한 몫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만약 그렇다면 수족관에서 사는 문어들은 야생의 문어들보다 수명이 좀더 길어지기도 하는지 궁금했다.

수족관에서 모든 문어는 죽기 전에 노망이 난다. 활발하던 애들도 그 괄괄한 성격을 잃고 얌전하고 순순해지고, 피부색을 조절하는 근육들이 약해져 하얀색이 되버린다. 꼭 치매에 걸린 사람처럼. 만약 내가 소리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면 문어에도 영혼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영혼이 진짜 있거나 없거나. 그 영혼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건 나라는 생물이다. 나라는 생물이 없다면 아무도 소리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의 영혼에도 다른 존재의 영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의 영혼을 비추어 보는 존재. 그 영혼이 거기 있다고 믿는 존재. 그 영혼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존재. 그렇게 내 영혼을 구별해 호명하는 존재가 있을 때 내 영혼도 확실히 있다고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여러분. 문어도 있다는 그 영혼의 생명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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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김춘수를 호명하면 너무 촌스러우니까 장얼을 호명해요.

내 이름을 불러 불러 불러 불러 불러주세요

단 한번만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오

[Official Audio] 장기하와 얼굴들 (Kiha & The Faces) -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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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서 책은 랩걸보다는 더 건조한 에세이고

브로카의뇌보다는 재밌는 에세이에 가까워요.

그리고 냉장고에 혹시 두족류 식재료를 저장해두신 분은 꼭 읽기 전에 먼저 조리해서 드세요.

제가 읽을 땐 이런 주의사항이 없어서 좀 곤란한 상황이 됐어요. 당분간은.

책에는 실제 문어에 대해 신기한 내용들이 더 많았어요.

어쩌면 치유물이나 유명인의 에세이보다 이런 게 진짜 힐링물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 문어는 솔직히 정말 귀여워요.

Shy Octopus Hides Inside Its Own Tentacles | Nautilus Live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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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큰 문어를 전시하고 있는 수족관을 찾아보니 우리나라에는 코엑스 하나뿐인 것 같다.

대문어씨. 전에 갔을 때는 못 봤는데 관심이 부족했나보다.

코엑스아쿠아리움 (coexaqu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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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2-13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먹고나서 읽는 책 ㅋㅋㅋ인간 외 생물 사랑하는 분들이야 말로 진짜 넓은 사랑이지 싶습니다. 나는 멀었어...

link123q34 2020-12-14 13:52   좋아요 1 | URL
남의집 냉장고자리 걱정..ㅋㅋㅋ 그러게요 진짜 그런 분들 참사랑인거 같아요. 숨만 쉬어도 귀엽고 사랑스러운건 어떤 기분일까요? 아 부러워라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