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두 영어회화 - 느낌동사만 알면 야, 너두 할 수 있어! 야나두 영어회화
원예나 지음 / 라곰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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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영어교육의 시작은 다른 어느 나라에 비추어 봐도 너무 이른 나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모국어의 시작과 더불어 외국어를 함께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결과도 있고, 모국어의 말하기, 읽기, 쓰기를 어느정도 습득한 후 외국어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연구가 더 맞는지는 몰라도 유치원, 심지어는 유아기 부터 영어에 노출시키는 부모님들도 주위에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초, 중, 고 그리고 대학 심지어 취업 시험과 승진 시험을 위해서 또 다시 영어책을 펴왔습니다.

그런데 과연 여러분은 영어로 자신의 의사를 어느 정도 표현하실 수 있나요? 어려운 단어가 아닌 쉬운 단어라도 제대로만 표현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요즘 TV나 각종 미디어에 영어 회화와 관련하여 많이 듣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야나두 영어회화" 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야나두 영어회화 : 느낌동사만 알면 야, 너두 할 수 있어>" 에서는 느낌 동사라고 하는 조동사와 각종 시제와 가정법에 관한 미묘한 차이를 예제와 함게 자세히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많이 쓰는 can의 과거인 could 라는 조동사의 경우 3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첫번째 과거의 능력(~할 수 있었어), 두번째 추측하기(~일 수도 있어), 세번째 요청하기(~해도 되겠습니까)

can의 과거이기 때문에 당연히 과거의 능력은 이해가 갑니다만, 추측의 경우는 쉽게 활용하기가 힘이 들죠. 예를 들어, "재미있을 리가 없어" 를 표현할때 It couldn't be fun. 을 즉석에서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Could의 가장 중요한 느낌은 추측하기입니다. could는 대략 가능성이 50% 정도일때 사용합니다. 반면 can은 확신에 가까울 때 사용합니다.

이렇듯 원어민의 경우, 자신의 느낌을 조동사의 원형, 현재, 과거 그리고 완료 형을 통해 표현을 합니다만, 그 정확한 표현법을 습득하게 된다면 좀 더 원어민에 가까운 영어를 구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로 영어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가장 큰 기억은 그들은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have, get, take, come 등과 같은 기본 동사와 전치사를 이용해 다양한 표현을 구사한다는 것이죠. 또한 본서에서 이야기하는 조동사(느낌동사)를 통해 강제, 권유, 요청, 아쉬움 등을 상황 상황에 맞게 표현하더라는 겁니다.

책은 아주 쉽게 쓰여 있어, 초심자 분들도 보실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법책이 아니라 회화책이기 때문에 문법의 설명은 없습니다만, 우리가 기존에 배워왔던 기초 문법 정도만 아시는 분들이라면 쉽게 접근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동사의 느낌적인 느낌(?)과 그 활용법을 익혀 미드를 보거나 외국인들과 좀더 수준있는 대화를 원하시는 분들께서 보시면 좋을 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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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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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으로 기억합니다. SBS에서 2010년 방영한 드라마 "시크릿가든" 에서 주인공인 현빈이 읽는 장면이 나와 곧장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하나있습니다. 바로 유엔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이었던 스위스의 사회학자인 '장 지글러(Jean Ziegler)' 교수가 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가 바로 그 책입니다.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고, 충분히 농사지을 수 있는 환경에 있으면서도 상시적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책에서 그는 1차적으로 부의 불균형과 양극화가 독점 자본가(초거대 기업)의 탐욕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가난한 나라들의 인프라 구축과 탐욕적인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견제장치 마련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초거대 기업들이 자본주의의 논리로 인해 적정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멀쩡한 식량을 버리거나 소각해 버리는 식량을 아프리카에 지원만 해줘도 세계의 빈곤은 일정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주장은 큰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는 어떤 의미에서 전편의 속편 격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즉,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현실에 분노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사상 초유의 불평등을 야기한 야만적이고 비열한 자본주의의 민낯을 해부하고 있습니다.

자본(Cappital; 원금이나 투자금처럼 휴율적으로 이익을 만들어낼 종잣돈)이라는 말이 탄생하게 된 12세기 부터 시작된 논의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부르주아 자본가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사회 변혁을 일으키는 힘의 원천이 되고, 그 이데올로기의 중심인 사유재산권을 인정한 것이 소위, 자본권력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재앙'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당성을 획득한 자본권력은 1980년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기술혁명을 통한 '독점화'와 '다국적화' 조류를 틈타 오늘날과 같은 맹위를 떨치게 됩니다. 저자에 의하면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지구상에 일종의 '식인풍습'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독점적 자본주의의 결과, 극히 적은 소수를 위한 풍요와 대다수를 위한 살인적인 궁핍이 그 이유겠죠.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등에 업은 소수의 자본 식인종들은 조직적 탈세와 로비로 초 국가적 권력을 휘두르며,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를 상대로 폭주하고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극히 적은 소수만이 누리는 자본주의적 풍요로움의 원천은 기아에 허덕이는 그래서 선진국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의 빈곤과 고통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에는 다소 무거워지는 양심을 느끼게 됩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엔 식량농업기구를 방문해 "소수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한 반면, 다수는 너무 적게 갖고 있다" 면서 부의 편중 현상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400명(인구의 0.00025%)이 소유한 부가 하위 60%에 속하는 성인 1억 5000만명 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보고서를 냈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진 것이 많은 85명의 부호들이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들 35억명이 소유한 것을 모두 합친 만큼의 부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부의 불균형 문제에서는 전 세계적으로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겁니다.

자본주의의 탄생으로 부터 프랑스대혁명, 산업혁명, 맑시즘(Marxism)을 지나 현대의 독점 거대 자본주의의 민낯을 손녀와의 대화형식으로 효과적으로 풀어낸 책입니다. 물론 세계 시민의 일부로서 불평등하고 부당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변화를 위한 시작점에 서자는 저자의 주장은 다소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문제의 핵심을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는 차분히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의 불평등과 부의 양극화 문제를 자본주의 시스템의 재점검으로 부터 시작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본서의 마지막에 나오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꽃들을 모조리 잘라버릴 수는 있지만, 그런다고 한들 절대로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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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 그들 - ‘그들’을 악마로 몰아 ‘우리’의 표를 쟁취하는 진짜 악마들
이안 브레머 지음, 김고명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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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80년대를 기점으로 전 세계는 소위 신자유주의 사상에 기초한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물결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사상, 정보, 사람, 돈, 재화 그리고 서비스가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흘러다니는 말 그대로 '국경없는 Globalization'의 시대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또한 예외없이 이 새로운 조류에 뒤처지면 끝인 양 연일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각 계층의 세계화, 국제화 타령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덕에 우리나라는 개도국에서 선진국의 초입으로 진입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며, 최근 수십년 사이에 10억명 이상이 빈곤에서 벗어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전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존 선진국가의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세계화가 결코 탐탁지 만은 않은 듯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래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폭력과 압제를 피해 온 수많은 이슬람교인을 포함한 난민들의 대거 유입으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많은 국가들, 생산비 절감을 위해 자국의 생산기지와 설비를 대거 아웃소싱한 나머지 제조업 경제가 후퇴하고, 일자리가 사라져 버려 중산층이 붕괴직전인 미국 등.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자본의 욕심과 탐욕으로 부터 기인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인 분노와 불안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제 비정상적인 '저금리', '저성장', '저임금' 상태가 오히려 정상적인 상황으로 비춰지는 뉴노멀(New Normal) 로 자리하게 되었으며, 고용없는 성장과 부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독일 극우정당의 득세, 멕시코의 좌파 대통령 당선 그리고 브라질의 군 출신 극우인사의 당선 등은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하게 표출되는 분노와 불안의 표출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우리 대 그들>의 저자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 그룹 회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이 신진 정치인들은 전폭적인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에 의해 그것도 주로 개혁이 지극히 어려운 지역에서 선출됐다..... 기성 정치권에 도전해 명성을 쌓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새로운 경계선을 그리는 재주가 있다. 그들은 국민이 자신의 권리와 안전망을 지키기 위해 그것을 앗아갈 것 같은 사람들에 맞서 싸우는 분열의 구도, 즉, '우리 대 그들'의 구도를 선명하게 제시한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상황의 대부분은 '우리 대 그들'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운 포퓰리즘 정치인들의 선동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정치인들은 대중의 불안과 분노를 먹고삽니다. 여기서 '그들'은 지역과 상황에 따라 부자나 빈자, 외국인이나 소수집단, 정치인, 언론가, 은행가 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안정적인 기반이 무너지고 생활 수준이 하락하고 있다고, 또 국가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을 공략하게 됩니다. 위협을 느낀 이들은 비슷한 무리들을 찾아 서로 규합하여, 실존하는 적이나 혹은 날조된 적을 이용해 아군을 모으는 일에 전력하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가 되어 '그들'과 대치하게 됩니다.

4차 산업혁명이 자랑하는 초연결 네트워킹 기술에 기댄 소셜 미디어는 이러한 끼리끼리 문화를 심화시켜 '우리 대 그들' 의 경계를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도구로 전락한 건 아닐까요? 여기에 더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적폐세력 청산' 이라는 프레임이 또 다른 '우리 대 그들'의 분열 구도는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포퓰리즘 정치가들이 씌워놓은 '우리 대 그들'이라는 적대적 프레임은 최근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며, 이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또한 각국의 현재 상황을 예로 들어, 이 프레임에 한번 걸려들게 되면 되돌리기 힘든 현실들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 결과는 국민간 분열이 될 것이며, 이러한 현상은 날로 더욱 심각해져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본서에서는 대략 12개 국가의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우리 대 그들'의 분열 양상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브라질, 베네수엘라, 터키, 러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그리고 중국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소위 진보와 보수, 기업가와 노동자, 가진자와 없는자 간의 '우리 대 그들' 프레임은 하루가 다르게 우리사회를 짓눌러오고 있진 않나요?

우리는 직시해야합니다. 이 프레임을 활용해서 득을 보는 자들이 누구인지, 이러한 분열 뒤에 숨어 자신들의 권력을 조용히 쌓아가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모든 것은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적 결핍'과 '일자리의 상실'이 이 모든 분열의 원인이며, 이를 교묘히 '그들'의 잘못으로 몰아가 '우리'의 표를 쟁취해온 모사(謀士)꾼들의 소행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식의 편 가르기에 편승하고 부화뇌동한 댓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대공황 시절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 국민은 민주주의 대신 빵을 선택하고, 대신 그 모사꾼들에게 그들의 운명을 맡기게 됩니다. 물론 그 결과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지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현실이 힘들다고 어렵다고 방치해 두었던 '이성적 비판'의 칼을 다시 한번 갈아야할 때임을 일깨워주는 책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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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사이언스 -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서가명강 시리즈 2
홍성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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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눈부신 과학기술이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는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을 통해 가장 최적화된 개인과 사회의 모습을 제시하고, 유전자 조작, 변형 기술을 통해 질병없이 오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켠에는 자동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인간이 하는 일이 줄어들어 결국 대량 실업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합리성을 띈 과학의 두 얼굴은 점점 이상과 현실이라는 양갈래길에서 우리를 방황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과학의 진보가 인류에게 유토피아의 길인지 디스토피아의 길인지 지금 당장 가늠하기는 힘이 듭니다. 과학의 진보가 가져오는 결과물이 발현하여 우리 삶에 스며드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그 결과로서 벌어지는 우리 삶의 양태가 변화하는 데 또한 일정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과학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오늘날까지 사회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증기기관에서 전기로 그리고 인터넷에서 인공지능으로 산업혁명을 견인해왔던 과학기술이 생산성 향상에 따른 부가가치 산출이라는 사회, 경제학적 산출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인류의 삶의 방식을 비약적으로 변화시켜온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크로스 사이언스>과학기술학(STS,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의 관점에서 과학과 인문학, 과학과 예술, 과학과 대중문화의 접점을 발견하고, 사실과 가치영역의 교집합을 읽어내어,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영역간의 간극을 좁히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학이란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규명하는 학문이며, 과학기술을 역사적, 철학적,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 전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회와 과학기술 상호 연관관계를 분석하여, 융합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마주하는 관점의 확장을 목표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과학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들여다 보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죠?

본서에서는 과학과 대중문화의 크로스(Cross)를 볼 수 있는 많은 사례들을 제시합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프랑켄슈타인", "1984", "멋진신세계"와 같은 소설부터 "메트로폴리스", "엑스마키나"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와 같은 영화, "공각기동대"와 같은 애니메이션 그리고 대중서적인 "코스모스" 속에 담겨진 과학적 사실과 인문학적 가치를 함께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또한 과학기술학자인 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공지능, 빅데이터, 유전자 가위 등 첨단 과학분야의 주요 이슈들이 대중 문화 속에 어떻게 숨겨져 있는지 그리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 분석하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을 통한 새로운 괴물의 탄생이나 인류를 억압하고 감시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 그리고 우월한 유전자만 살아남는 세상과 첨단 로봇의 반란등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잔인한 비극으로 내몰며, 궁극에는 멸망으로 이끈다" 는 대중문화의 Sad Ending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결말일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문화의 슬픈 결말을 지양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들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인문학, 사회과학 그리고 가치를 연구하는 모든 학문들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물음에 계속적인 대답을 해왔던 것입니다.

이렇듯 과학과 인문,예술 그리고 사실과 가치의 융합은 지금 우리에게 매우 절실한 일이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삶이 비참한데 나의 삶이 풍요로울 수 없고, 지구상의 다른 동식물의 삶이 피폐한데 인류 만이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은 나를 둘러싼 상황들을 이해하고 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기 위한 필요 충분 조건이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본서를 통해 이 필요 충분 조건의 일단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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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전쟁 - 기계와의 일자리 전쟁에 직면한 우리의 선택
앤드루 양 지음, 장용원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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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는 ICT 기술들 예컨데,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이 기술들이 직업과 일자리 그리고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2가지 상반된 견해 취합니다.

첫번째는 이 기술들이 우리의 노고를 덜어주고, 인류에게 행복한 삶을 살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과 결국 기술로 인한 실업(기술적 실업)으로 인해 대량의 실직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기술의 양면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일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술은 우리들의 일자리를 앗아가게 되는 걸까요? 기계에 대체될 가장 취약한 직업은 무엇일까요? 가장 안전한 직업은? ...

이러한 물음은 4차 산업혁명이 우리사회에 본격적으로 논의된 2016년 이래로 지금까지 가장 큰 사회적 화두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보통사람들의 전쟁 : 기계와의 일자리 전쟁에 직면한 우리의 선택>은 어쩌면 필자가 접한 미래일자리와 관련된 자료 중 가장 암울한 현실과 가장 현실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서의 저자인 앤드루 양은 실제 미국 주요 도시 현장에서 신규기업의 창업과 안정적 운영을 지원해주는 스타트업, 벤처 액셀러레이터로 오랜 기간 일하면서 업계의 현실과 관련 통계 자료를 통해 "첨단 기술을 통한 자동화와 일자리 상실의 물결은 더는 미래의 암울한 이야기가 아니며, 이미 한창 진행 중" 임을 역설합니다.

이는 비단 육체적 노동자군을 일컫는 블루컬러 직종 뿐 아니라 자산관리인, 변호사, 보험중개인 그리고 의사와 같은 고소득 화이트 컬러 직종도 예외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또한 짧은 시간안에 이뤄지게 될 기술의 무인 자동화 현상으로 부터 비롯된 이러한 피해는 기술사다리(Skill ladder)의 아랫 부분에 있는 사람들 즉,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기 어려운 비숙련 노동자들일 수록 더 심해집니다.

실업률과 불완전 고용률이 높아지면 당연히 약물남용, 가정폭력, 우울증, 이혼, 자살과 같은 사회 문제가 늘어나며, 궁극적으로 가정 해체 및 공동체 파괴와 같은 극단으로 치닫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비정상 상태를 극복할 사회적 비용 또한 증가하여 사회 전체의 역동성과 활력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일자리를 만들고, 보존하는 것은 기존 기업의 1차적 책무입니다. 그러나 지난 1980년대 이래로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물결과 기업의 주주가치 극대화를 통해 기업에 무한 자유를 부여한 결과, 기업의 1차적 책무는 "생산비용을 최대로 줄이고 생산성을 극대화하여 최대한의 이윤을 추구하는 일" 그리하여 "주주가치 극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평가의 잣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제 시장은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돈이 가장 적게 들어가는 방법을 찾은 듯 보입니다.

점점 더 저렴해지는 자동화 비용(로봇비용)은 이러한 추세에 날개를 달아주게 됩니다. 이제는 비록 새로운 기업이 번창하고 성장한다해도 과거처엄 사람을 많이 고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용없는 성장'은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얼굴인 셈입니다.

본서에서 저자는 규모가 큰 미국의 5대 직업군의 자동화에 따른 실업 위기를 경고합니다. 사무 및 행정지원, 판매관련, 요리 및 서빙관련, 운송 및 물품 운반 그리고 생산직 이 그것입니다. 1차적으로 대부분의 업무가 매우 반복적이고, 자동화 할 수 있는 직업들인 셈이죠. 미국의 통계와 자료를 분석한 결과이지만 우리나라의 그것과 그게 다를 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통 자동화가 진전되면 기본적, 반복적인 일을 하는 블루컬러 노동자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보다 문제가 조금 더 복잡합니다. 화이트컬러냐, 블루컬러냐 또는 지적 기술이냐, 육체적 기술이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틀에 박힌일이냐 아니냐는 겁니다. 틀에 박힌, 매일 동일한 패턴으로 일하는 어떤 종류의 일자리라도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자산관리사, 증권거래사, 기자 뿐 아니라 예술가와 정신분석 전문가까지도 틀에 박힌 활동을 하는 직업이라면 점차 자동화 기술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최고 수준의 필요로 하는 일자리도 예외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대미문의 대사건 앞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우선 저자는 거대한 역사적 변화를 헤쳐 나가려면 경제와 사회를 바꾸고 그 틀을 다시 짤 것을 주장합니다. 이를 위해 2가지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그 첫 번째는 사회보장의 한 형태로서 모든 국민이 일이나 소득과 관계없이 매월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UBI, Universal Basic Income)' 이며, 두 번째는 좀 더 본질적으로 시민 대다수의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힘든 지경에 이른 오늘날의 자본주의 대신할 더 나은 자본주의로의 업그레이드를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이를 '인간 중심의 자본주의' 혹은 '인간적 자본주의'라 부르고 있습니다.

보편적 기본소득과 관련해서는 토머스 페인, 닉슨 대통령, 밀턴 프리드만, 버니 샌더슨, 버락 오바마, 스티븐 호킹, 마크 저커버그 등 내노라 하는 가양 각층의 인사들이 입을 모아 그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현재 핀란드, 인도, 캐나다,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이란, 미국 등에서 실증 사업을 진행중이며, 몇 가지 반론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현실세계에서 보여 준 성공에 힘입어 그 지지 기반을 점점 넓혀가는 중입니다.

기존의 인간이 시장을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자본주의가 아닌 인간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자본주의를 통해 보통 사람의 운명을 더 낫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저자가 제시하는 인간적 자본주의가 그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또한 일자리가 줄어도 걱정 없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특히 기술이 인간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게 하려면, 그 무엇보다 중앙 정부가 나서 경제의 틀을 바꾸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저자의 입장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음을 우리는 실감합니다. 지도자와 관련 기관이 더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리라는 사실과 해결책은 있지만 그러려면 많은 사람이 특히 기득권 층에서 목전의 이익을 포기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는 어쩌면 입에 발린 이 말을 저는 아직도 믿고 싶습니다. 결국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 우리사회를 허물어뜨리려는 세력과 맞서 싸우는 사람이 세상을 바꿀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섬기고 있는 걸까요? 인간인가요 시장인가요?

곧 불어닥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계와의 일자리 전쟁의 현실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 중 하나를 냉철한 시각으로 접근한 책으로 평가합니다. 많은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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