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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아일랜드 - Shutter Islan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보스턴 셔터아일랜드의 정신병원에서 환자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연방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수사를 위해 동료 척(마크 러팔로)와 함께 셔터아일랜드로 향한다. 셔터아일랜드에 위치한 이 병원은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를 격리하는 병동으로 탈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식 셋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여인이 이상한 쪽지만을 남긴 채 감쪽같이 사라지고, 테디는 수사를 위해 의사, 간호사, 병원관계자 등을 심문하지만 모두 입이라도 맞춘 듯 꾸며낸 듯한 말들만 하고, 수사는 전혀 진척되지 않는다. 설상가상 폭풍이 불어닥쳐 테디와 척은 섬에 고립되게 되고, 그들에게 점점 괴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아리까리한 영화다. 우선 주인공이 광인인가 아닌가 하는 해석의 문제가 있다. 착시 그림을 갖다 놓고 각도를 달리 해서 볼 때마다 그림의 미녀가 마녀로 변하기도 하듯, 주인공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정신병자일 수도 있고, 병원 관계자들의 심리전에 희생당한 심약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영화의 반전을 식스센스와 디아더스에 견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반전은 반전이되 중류가 다른 반전이기 때문이다.
영화 보기 전에 남편이 회사에서 내용 누설(네타)을 당했다면서 콧김을 내뿜던 게 기억난다. 회사 사람이 회식 중에 이랬단다. "셔터 아일랜드 거 재밌더만, 디카프리오가 미친놈이잖아요." 착한 우리 남편님은 나한테는 네타를 하지 않았지만, 정작 나는 엔딩 크레딧 올라올 때 뭐에 얻어맞은 것마냥 멍한 얼굴을 해가지고 나왔다. 주인공이 진짜 미친 X이야? 그런거야?
내가 가진 영화 정보에는 약 5년간의 공백이 있다. 달님공주 키우느라 변변한 영화 몇번 본 적 없고, 결혼 전에는 지겹게 보던 영화도 애기 낳고 나서는 일년에 한번 있을까말까 한 일대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네가 가진 데이터는 다 옛날 것 뿐이다. 그런데 어떡하나, 셔터 아일랜드의 결말은 식스 센스와 디아더스를 너무너무 빼다박았다. 마지막 장면 주인공 아내의 입에서 뿜어 나오던 새하얀 입김에 전율하던 기억, 나한테는 너무나도 생생하다. 그렇지만 그 경우는 영화가 보여주는 결말에 수긍을 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였다. 그런데 셔터 아일랜드, 뭐냐? 이 "학창시절 선생님이 풀어준 문제를 보고서 그게 아니라고 바락바락 우기고 싶은 기분"은? 분명히 풀이 방식은 그게 맞는데 왠지 아닐 것 같은 이 찜찜함, 그게 내가 느낀 셔터 아일랜드의 결말이다.
모든 것이 주인공의 착란 현상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점도 있고, 무엇보다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여의사는 관객을 결정적으로 헷갈리게 한다. 환상 속의 인물 치고는 하는 말이 너무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분명히 섬에 들어와서 의사가 권하는 아스피린을 먹었고, 약을 먹고 난 후 신경쇠약과 착란증세가 더욱 심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을 떠다 밀면서 그녀는 의미심장한 경고를 한다. 이 섬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믿지 말라고.
없던 호랑이도 세 사람이 말하면 정말로 있다고 믿게 된다는 고사가 있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극중에 등장하는 모든 장치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미녀? 혹은 마녀?
1. 아스피린 주인공이 의사로부터 무심코 받아 넘긴 아스피린은 환각을 이끌어내는 영화 속의 장치이다. 주인공이 광인이라는 전제를 깔고 보면 아스피린을 받아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상상을 뒷받침해주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주인공의 파트너를 작당해서 사람 하나 미친 놈으로 몰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2. 67번째 환자와 레이첼 영화는 결말이 보여주는 설정과 주인공이 주장하는 설정 두 가지가 존재한다. 주인공의 주장을 믿는다면 레이첼은 섬에서 도망친 죄수이고 67번째 환자는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앤드류 레이디스이다. 그러나 주인공 앞에 나타난 의사는 침착한 얼굴로 67번째 환자는 다름 아닌 주인공이며 레이첼이라는 죄수 역시 그의 상상의 산물이라고 말해 준다. 과연 그게 사실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절박한 범죄사실을 숨기기 위한 필생의 연기일까?
3. 동굴 속에 은둔하는 여자 의사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그녀가 말하는 사실이 그만큼 충격적인 데다 병원이 그토록 숨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말해 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여의사는 이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름 아닌 인간을 소재로 한 생체실험이며 멀쩡한 사람도 몰래 약을 먹여 정신이상자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정신상태를 의심하는 쪽으로 생각한다면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의 망상 속에서 이루어진 허구일 수도 있다. 원래 사람의 공상이라는 게 끊임없이 자기를 합리화하게끔 되어 있으니까.
4. 테디 대니얼스와 앤드류 레이디스 영화가 제시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소재이다. 테디 대니얼스와 앤드류 레이디스는 이름 철자만 바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다. 주인공이 아무리 아니라고 발버둥쳐도, 이것만은 빼도 박도 못할 진실임에는 틀림 없다. 테디 대니얼스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나사가 하나 빠진 인물인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깊이 묻어 두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세 아이를 익사시킨 것은 레이첼이 아니라 자신의 아내였고, 자신은 그런 아내를 쏘아 죽인 후에 너무도 절망해서 미쳐 버렸다고 말이다. 이것은 누군가가 주입시킨 만들어진 기억이 아닌 온전히 그의 기억이다. 그래서 결론은 바로 주인공이 미친 X이라는 장장 2시간에 걸친 증명 되시겠다.
.............분명히 얘기는 맞다. 잘 들어맞는다. 그런데 자꾸 찜찜한 기분이 든다. 정말 이렇게 되는 게 맞는 걸까? 학창시절 수학 좀 했던 사람이라면 내 이 기분을 알리라 믿는다. 좀 모자라는 선생이 있다. 푼다. 어찌어찌 했는데 답은 맞다. 그런데 해법을 보니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샘솟는다. 선생님 진짜 그거 맞는 답이에요?
물론 이럴 때 해결책은 단 하나 뿐이다. 문제를 자꾸 풀면서 익히는 것... 언제 시간 나면 다시 한번 제대로 흟어 보고 싶다. 한번 더 보면 딴지 안 걸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