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춘추전국시대 - Confuciu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40자평도 써놓고, 선전 페이퍼 잔뜩 날리고, 대체 이 영화를 보긴 봤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예스다. 알라딘 영화 코너의 [공자:춘추전국시대] 페이지엔 내 추천평이 가득하다. 윤발이 형님 멋져요, 공자가 책략가로 변신한대요, 와호장룡 스텝이라는데 안 보고 지나가기 어려워요 등등 손발 오글오글한 얘기만 골라서 써놨다. 그런데 대체 추천한 본인은 그걸 보기는 봤느냐고? 리뷰도 없고 페이퍼도 없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영화가 재미가 없었다. 


좋은 의미, 나쁜 의미로 명성이 높았던 바로 그분
내 평생 영화관에서 꾸벅꾸벅 졸아 보기도 처음이었고, 요 몇년 들어 야밤에 팝콘 생각이 간절했던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왜 팝콘을 안 샀을까. 이렇게 졸음이 폭풍같이 몰려올 지경이었다면 다이어트건 뭐건 간에 콤보셋트 하나 사들고 들어올걸.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대체 왜? 뭐가 이 영화를 이렇게 재미 없게 만들었을까?  

제발 딱! 한놈만 패줘 굳이 [주유소 습격사건]의 명대사를 쓰지 않더라도, 영화의 미스 포인트는 명백하다. 껏해야 200분 남짓인 런닝타임 동안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 했던 게 문제다. 영화는 노나라 시절에서부터 각국을 떠돌아다니며 갖은 고생 끝에 귀향하는 공자의 반생을 담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실상도 설득력 있게 제시했고 화면에 비치는 풍경도 잘 잡았고 세트도 잘 살렸다. 그런데 내용에 기복이 없다. 이야기의 전개와 서사만 존재할 뿐 관객의 마음을 확 잡아끌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없었다는 소리다. 공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라면 이런 식의 섬세한 서사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계몽적인 감독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적어도 일반 관객에게는 그다지 먹혀들지 않았을 것이다. 홍보할 때 수없이 강조했던 "책략가 공자"와 화려한 전투씬은 정작 극중에는 별반 비중이 없고, 영화 내내 공자는 관객을 인과 의로 가르치려 든다. 본국에서는 자국의 위인이니까 그게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혹은 누구나 알고 있는 위인의 재발견이라는 의미에서도 신선하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그런데 같은 문화를 토양으로 하는 유교 국가이긴 하나 생판 타국의 인물을 받아들여야 하는 한국 시장과, 하물며 공자와 유교에 아무 상관이 없는 북미나 유럽에 이게 통할까...묻는다면, 대답은 글쎄올시다.  

관객의 니즈와 감독의 의도가 딱 맞아 떨어졌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비슷한 구도에 위인을 소재로 했던 영화라면 2004년도 작품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있다. 한화 350억원의 제작비가 든 [공자:춘추전국시대]에 비해 총제작비 2천 5백만 달러가 소요된 2004년 최대의 흥행작 중 하나다. 당시 감독이 배우 출신이라는 점과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이 눈길을 끌었고,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극장가에 몰리는 바람에 객석이 난데 없이 예배당이 되었다는 전설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공자]는 어땠을까? 중국 현지에서는 아예 정부가 나서서 홍보에 열을 올렸다고 들었다. 예고편과 홍보성 마케팅에 낚인 사람도 제법 많았다. 그러나 개봉 한달만에 [공자]는 2월 23일을 기준으로 8위를 기록하면서 조용히 막을 내렸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오락성 전무한 연대기적 구성을 띠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해 개봉한 스파이더맨의 전체 수익과 버금가는 기록을 세운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종교영화이면서 2004년 흥행성적 3위라는 기염을 토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렇다면 두 영화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 생각엔 멜 깁슨 감독이 호 메이 감독보다는 극의 포인트를 명확하게 잡은 것 같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가 죽기 전 12시간의 행보를 그렸다. 예수의 생애 중 가장 극적인 부분이자 논란의 여지가 가장 큰 부분 말이다. 일반 관객의 눈에는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도 신자들에게는 신의 아들이 인간을 위해 감내한 고행으로 받아들여졌다. 다가올 미래를 알고 고통스러워하는 인간 예수의 고뇌, 예수를 사형에 처하라고 외치는 군중들의 소름 끼치는 광기, 예수의 종교적 신념을 좌절시키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사탄의 음험한 그림자와 피가 튀고 살점이 깨지는 잔인무도한 고문, 영화의 이 모든 요소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종교적 경건이라는 가치를 향해 맞닿아 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장점은 감독이 지향하는 가치와 관객(특히 기독교 신자들의)의 욕구가 잘 맞아 떨어졌다는 데 있었다. 관객들은 교회나 성당에서 근엄하게 미사를 보는 대신 영화 한편 관람하러 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심지어 교회에서 단체로 버스를 대절해 영화를 보러 오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공자]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과연 그런 열정이 있었을까? 너무 가혹한 평가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이 영화가 자극 없이 밍밍한 영화였던 건 사실이다.  

2% 모자랐던 그 무엇 사실 이런 류의 위인전기는 내 취향은 아니다. 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건성으로 봤고, 무엇보다 나는 멜 깁슨 식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도도 낮은 편이다. 다만 [공자:춘추전국시대]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기 위해 비교 대상으로 삼았을 뿐이다. 진도 안 나가는 연애에 골머리 썩는 것처럼, 조금만 고치면 잘 될 것 같은데 왜 안 됐을까? 하는 미련이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지, 요 한달 내내 [공자]는 기한 지난 숙제마냥 내게 찜찜함을 안겨 준 작품이었다. 게다가 무려 각본가가 [적벽대전]의 칸첸인데, 내가 알기로 적벽대전은 중요한 부분 말고는 싹 가위질해서 사상이고 베이스고 없애 버리고 오락성만 남겨 놓은 퓨전 액션극 중 하난데, 왜 새삼스레 정극을 하겠다고 나섰는지 모르겠다. 시쳇말로 하면 "떡밥은 많이 뿌렸지만 회수는 못한" 중구난방식의 이야기 전개도 문제다. 저우쉰의 캐릭터는 화려한 비주얼에 비해 개연성이 전혀 없었고 전투씬은 극중 대단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닌데 뭣하러 비싼 특수 효과 들여 가며 만들어 놨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전개가 엉성하다는 느낌을 줬다. 모든 소재가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향해 흘러갔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비하면 총제작비 350억원이 무색할 정도로 [공자]는 방향성이 없었던 셈이다. 동서 양 문화권의 시조라 할 수 있는 공자와 예수의 맞대결에서 그야말로 예수는 웃었으되 공자는 울은 격이랄까.

우는 공자와 웃는 예수가 가르쳐준 것 최근 영화를 보며 느끼는 점은 영상미와 그래픽 효과 기술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아바타]쯤 되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끝도 없이 달려들 것 같은 트롤과 오크들의 압도적인 그래픽은 2010년 지금에 와서는 전혀 색다를 것 없는 평범한 기술이 되고 말았다. 인플레라는 개념을 이런 경우에 쓸 수 있다면, 확실히 요즘 영화에는 갖가지 특수효과가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영화들은 비주얼에 치중한 나머지 각본의 완성도에는 그만큼 소홀해지는 것 같다. [공자:춘추전국시대]가 시사하는 바는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그래픽에 돈을 들여서 그럴 듯한 영상을 만들어내도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평론가들이나 영등위가 아무리 영화의 폭력성이 어쩌니 떠들어대도 관객들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그런 것을 신경이나 썼던가? 개인적으로 멜 깁슨을 좋아하진 않지만, 적어도 그가 추구하는 바와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정확하게 일치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관객이 열광했던 이유는 각자의 종교적 가치관이 일차적으로 주요하게 작용했겠지만, 그 이면에는 독실한 신자로서의 예수에 대한 감독의 깊은 고민과 탐구가 뒷받침되었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공자가 예수보다 못한 인물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나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흥행성적의 차이는 주인공의 차이가 아니라 각본의 차이라고. 

홍보에 정부가 직접 나섰을 만큼 이 영화는 관영의 성격이 강하다. 굳이 아바타를 밀어내고 전국상영을 강요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영화사업에 대한 일종의 자신감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꾸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더 재밌게 만들 수도 있었는데 너무 욕심 부리는 것 아닐까 싶어서다. 글쎄 돈만 들인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니까? 돈 들여서 특수효과 뻥뻥 터지면 다 대박 난다고 높은 양반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이런 걸 기대하는 거라면, .....................................................................글쎄? 흠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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