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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Alice in Wonderland ㅣ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
영화
평점 :
상영종료
Preview 나는 조니 뎁이란 배우를 [가위손]의 괴기스럽고 가련한 청년으로 기억한다. [가위손]은 내가 초등학교 때 본 작품이라고 기억하는데, 극중 에드워드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청승맞아 보였던지 그만 끝까지 다 못 보고 말았다. 아무튼 조니 뎁이라면 일단 기억나는 얼굴은 [가위손]의 그 창백하고 가냘픈 이미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쯤의 그는 잭 스패로우라는 이름의 건들거리는 괴짜 해적 선장이 되어 있었다. 조니 뎁, 조니 뎁을 어디서 들었더라. 선뜻 기억해 내지 못하고 이름만 혀속에서 굴려 봤지만 영 생각나는 게 없었다. 내가 결코 [가위손]을 잊은 건 아니다. 오히려 눈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에드워드의 얼굴은 꽤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는데, 왜 그때만 유독 기억이 안 났는지 모르겠다. 기괴한 분장과 분장만큼이나 기기묘묘한 그의 표정과 몸동작, 아무튼 조니 뎁은 유연한 안면 근육을 가진 짐 캐리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배우임에는 틀림없다. 앨리스나 하얀 여왕이 아무리 이쁜들, 일단 이 영화를 찾는 관객이라면 앨리스보다는 조니 뎁의 모자 장수를 기대하고 갔을 게 분명하다.
Synopsis 더 이상 소녀가 아닌 19살의 앨리스(미아 와시코우스카 분)가 어쩌다 본의 아니게 또다시 들어간 이상한 나라는 예전에 겪었던 그 이상한 나라가 아니다. 십여년 전 홀연히 앨리스가 사라진 후 이상한 나라는 독재자 붉은 여왕(헬레나 본햄 카터)이 그녀 특유의 공포 정치로 통치하고 있었던 것. 물론 하얀 토끼와 트위들디와 트위들덤 쌍둥이, 겨울잠 쥐, 애벌레와 음흉하게 웃어대는 체셔 고양이 그리고 미친 모자장수(조니 뎁 분)는 붉은 여왕의 공포 정치 속에서도 정신없는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고 있다. 마치 어제 헤어진 친구를 오늘 다시 만난 듯 앨리스의 귀환(?)을 대환영하는 미친 모자장수와 그 친구들. 손가락만큼 작아져버린 앨리스는 모자장수의 정신없는 환대와 붉은 여왕의 공포 정치를 뚫고 이번에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시놉시스와 영화정보는 이곳에: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m192435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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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백미라면 단연 순정적인(?) 모자장수를 연기한 조니 뎁이다. 어쩌면 나는 [캐러비안의 해적]에서 맛보지 못한 그의 로맨스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3편의 영화를 거친 윌 터너와 엘리자베스 스완, 그리고 잭 스패로우의 삼각관계는 윌 터너와 엘리자베스 스완의 손발 오글오글한 결혼식으로 막을 내렸고 혼자 남은 잭을 보며 나는 엘리자베스를 향한 이유 있는 배신감에 분노해야 했다.
이눔의 가시나 시집가서 좋냐 그래, 10년에 한번 오는 서방보다는 배 한척 떡하니 가진 선장님이 훨씬 낫구만! 2편에서 꼬리쳐서 멀쩡한 사람 하나 폐인 만들어 놓고는 시종일관 사람 헷갈리게 만들다가 지 결혼식 주례 서게 하면 다냔 말이다! 젠장, 내가 잭이었으면 그딴 결혼 깽판 놓고도 남았을 텐데
물론 영화는 구도도 비교적 단순한 편이었고 결말도 뻔했지만, 단순하고 뻔하기에 조니 뎁이 더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살짝 돌기도 했고 하는 짓도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아쉬울 것 없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면서 여차하면 대신 잡혀가 주기도 하는 남자-이런 캐릭터도 나름대로 여자들의 로망 아닌가 말이다.(틀려!) 같이 본 동생과 남편은 으쑥쿵짝 춤이 너무 짧았다고 투덜거렸지만, 나는 나름대로 즐겁게 봤다.
영화의 캐릭터들은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 그런데 그것도 나름대로 유쾌하다. "나 진짜 돌았나봐. 어떡하지?" "응, 너 돌았어. 근데 그거 알아? 멋진 사람들은 전부 다 돌았다는 거." 영화는 내내 극중의 캐릭터 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돌아버릴 것"을 강조한다. 앨리스는 타고난 풍부한 상상력 탓에 "정상이 아닌 사람" 취급을 받아 왔고, 이상한 나라wonderland에 사는 동물과 사람들도 하나같이 괴벽스런 성격에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데 여념이 없다. 하다 못해 앨리스의 구원자로 나오는 "하얀 여왕"의 쭈그리 주스 조제 레시피는 무슨 마녀의 탕약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이딴 세상에 무슨 구원이 있고 희망이 있냐고? 팀 버튼은 그 특유의 비뚤어진 세계관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주스를 마시면 작아지고 케익을 먹으면 커지는 요절복통 세상에도 희망은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해피엔딩을 택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팀 버튼은 매우 복잡하고 기괴한 세계관을 가진 감독 중 하나다. 그런데 그가 창조하는 세계가 과연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인 세계일까? 관객은 그의 현란한 인형극 안에서 차가운 현실의 투영을 본다. 잔인하고 괴팍스런 붉은 여왕은 정말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일까? 툭하면 잡혀가고, 약점을 잡혀 하기 싫은 일이라도 억지로 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말 한 개인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들일까? 차가운 호수를 건너기 위해 호수 속의 얼굴들을 가차 없이 밟고 지나가야 하는 가냘픈 소녀의 영상은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엔 너무 어렵다. 현대에 태어났다면 도드라진 개성으로 주목을 받았을 상상력 풍부한 소녀 앨리스는 시대적 선입견과 도덕관념에 익숙해져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 "돌아버린 아이"로 낙인찍힌다. 아무 가진 것이 없는 무력한 소녀가 이상한 세계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시무시한 괴물 jabberwork를 물리치는 것 뿐이다.
내가 앨리스라면
때려쳐!를 외쳤을 것이다.
세상은 꿈도 희망도 없어,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읊조렸을지도 모른다. 이런 오합지졸들을 가지고 뭘 어쩐단 말인가? 그러나 영화는 앨리스를 다독이긴커녕 끝없이 몰아붙이기만 한다. 그래 너 돌았어. 돌아도 괜찮아. 돌아버려. 돌아버려야 해. 돌은 게 뭐 어때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말고 한번 꼬아서 보라는 것이 영화가 앨리스에게 주는 과제이다. 허어, 그래도 되나? 그런데 웃기는 건 이 허무맹랑한 인간 군상들이 벌이는 일이 또 제대로 굴러 간다는 점이다. 통념을 벗어난 인간들이 찾아나가는 구원과 행복은 관객을 유쾌하게 한다. 돌았으면 뭐 어떤가. 어차피 jabberwork는 앨리스에게 죽었고 붉은 여왕은 하얀 여왕에게 패배했고 모자장수는 으쓱쿵짝 춤을 추었는데.
구원을 위해 불가능한 과제를 수행할 것, 설정은 언뜻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연상케 한다. 단 [판의 미로]가 모두 다 죽자는 배드엔딩을 선택한 대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저연령 대상 영화답게 발랄하기 그지없는 해피엔딩을 선사했다. 물론 제작사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영화 전문이라는 점도 한몫 했겠지만, 감독이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도 행복한 결말을 택한 것은 이를테면 "희망"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관객으로서는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인생 자체가 요절복통인데, 영화에서까지 현실에 찌든 캐릭터를 봐야 한다면 우리들로서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말이다. 제대로 되먹잖은 인간들이 벌여나가는 제대로 된 엔딩, 진짜 누구누구들에게 한번 보여 주고 싶을 정도로 통쾌하지 않은가?
관람 포인트 1. "엽기적인 헐리우드의 그녀" 앤 헤서웨이
하얀 여왕 역을 맡은 앤 헤서웨이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안면을 튼 배우다. 그때도 또렷한 이목구비가 참 인상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칫 밋밋하기 쉬운 화이트 일색에 진한 다크계열 아이섀도우를 쓰고 브라운으로 입술톤을 정리하고 나니 그만 눈과 입만 딱 도드라져 보이는데 그게 얼마나 예뻐 보였는지 모른다.
그녀가 돋보이는 이유는 화장 뿐만이 아니다. 붉은 여왕에 대비되는 착하고 아름다운 하얀 여왕은 솔직하게 말하면 정말 비중이 없다. 오히려 붉은 여왕을 맡은 헬레나 본험 카터 쪽이 출연 빈도수도 높고 캐릭터 특징도 확실한 데다, 악의 세력과 맞서는 쪽은 정작 주연인 앨리스이니 남은 그녀는 그저 허울 좋은 마네킹으로 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각본의 실력인지 그녀 자신의 역량인진 몰라도 하얀 여왕은 관객의 뇌리에 확실하게 자리잡을 만한 포스를 가지고 있다. 얌전할 것 같은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엽기적인 행동을 해대고, 붉은 여왕과 맞대결하는 장면에서도 우아하게 상대방의 부아를 돋구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그 살랑살랑한 손동작이라니! 같은 여자지만 정말 손발이 오글오글했다.
관람 포인트 2. 난 이 결말 반댈세-하얀 여왕과 붉은 여왕
영화의 결말은 "착한" 하얀 여왕이 온전히 왕위에 복권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만약 달님공주와 같이 보러 갔었다면 "그러니까 이 영화의 교훈은 못되게 굴면 착한 사람한테 당하게 되어 있다는 법이야, 알겠지?" 하고 자못 엄마다운 훈계를 늘어놓았을 테지만, 정작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 이 결말 반댈세!"하고 고개를 가로젓고 싶은 게 솔직한 감상이다. 여왕이 싸이코라서 딴 놈으로 갈아치우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싸이코가 싫다고 또다른 싸이코를 데려오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내가 본 바로는 "마음도 얼굴도 아름답다는" 하얀 여왕은 붉은 여왕보다 하는 짓이 심하지 않아서 그렇지 싸가지 없기로는 언니를 능가한다. 뒤에서는 얼굴이 크네 난폭하네 갖은 험담은 다 하면서, 정작 싸울 때가 되니 "언니, 우리가 꼭 싸워야 해?" 하고 두 손을 모으는 하얀 여왕은 나 같아도 확 패주고 싶을 만큼 재수 없었다. 그래, 너 같은 가식덩어리하고는 꼭 한번 싸워 봐야겠다. 아예 확 밟아주마! 싶었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까?
영화 끝나고 나서 남편은 기대했던 만큼 무섭지 않았다면서 울분 아닌 울분을 늘어놓았지만, 정작 나는 두 눈을 하트로 하고 나왔다. 조니 뎁 너무 멋있어♡ 어차피 나를 잊어버릴 텐데, 하면서 젖어들어가는 그 눈망울이라니, 말 그대로 "내 하트를 확 찔러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으어, 난 그 희여멀건한 가위손이 왜 멋있다는 건지 이제야 알았어. 이렇게 사람 꾸며 놓으니 귀엽잖아? 조니 뎁의 다음 행보가 정말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