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잭슨과 번개도둑 - Percy Jackson and the Lightning Thief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우리 부부는 결혼식을 안 했다. 주된 이유는 학생이라 금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나는 지금도 결혼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식에 쓸 돈 있으면 차라리 날 주지?" 하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랄까. 다행히 남편도 그런 데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고, 나는 돈 들이고 사람 동원해야 하는 이벤트라면 학을 떼는 터라 다행히 지금까지 식 안 올리고 잘 버텨 왔다. 다행히 나한테도 동지(?)는 있었다. 대학 같은 과 친구가 그 주인공인데, 이 친구도 대학 때부터 사귀어 온 남자친구랑 호적만 올린 채 신접살림 중이다.  

그러던 친구가 끝내 배신(?)을 때리고 말았다. 이번 토요일에 결혼한다는 문자가 온 거다. 전우를 보내는 심정으로 청첩장을 받았다. 과연 걱정했던 대로 결혼을 일주일 앞둔 신부와는 느긋하게 수다 한번 떨기 힘들었다. 부케가 어쩌고, 한복이 어쩌고...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진저리를 내는 친구를 보면서, 나도 한 마디 안 할 수 없었다. 

나: 친구야.  

친구: 응? 

나: ....................나 결혼하기 싫어진다. 

친구: 나도 누가 대신 좀 해줬으면 좋겠다-_- 

그리고 발칙한 두 아줌마들의 한탄이 이어졌다는 이야기. 

이왕 같이 보기로 했으니 결혼을 앞둔 사람에겐 무슨 영화가 어울릴까 고민하다가, [하모니]와 [위핏]을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금 되씹어 보니, 인제 막 결혼하는 애한테 딸네미와의 찐한 교감을 강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더구나 얼굴 좋게 보자고 만나는 자리에서 [하모니]같이 눈물 쏟는 영화도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고른 게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 이왕 만나는 거 재미나게 보자고 선택한 나만의 안전빵이다.   

아빠 빽은 좋고 봐야 한다-능력도 되고 얼굴도 되는 이기적인 데미갓들  

첫장면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보고는 그만 깜짝 놀랬다. 무슨 남자애가 이렇게 이쁘게 생겼어? 주인공도 그렇지만 반신반인으로 등장하는 아이들은 얼굴만 봐도 그림이 된다. 특히 퍼시 잭슨 역의 로건 레먼은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나비 효과에 나온 그 아이가 이렇게 훈훈하게 자라줬을 줄은 몰랐다. 하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신반인들 중에 못생긴 애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긴 하다. 물론 캐스팅에 신경을 쓴 결과겠지만, 영화 보고 나온 나는 "그래 부모가 신이면 애들도 능력 있구나" 하는 그릇된 감상을 갖고 나왔다. "포세이돈 아들 맞는 것 같은데?" 주인공 딴에는 악당 물 먹으라고 날린 멘트겠지만, 어째 내 눈에는 "울 아빠 이렇게 잘났어!" 하고 자랑질하는 것 같다.

CSI뉴욕의 스텔라 형사를 아테나 여신으로 만나다  

영화 흥행에 지원 사격 해주러 나오는 까메오들을 보는 것도 관객에게는 색다른 재미다. 영화 [다크 나이트]의 첫장면을 장식해 주신 프리즌 브레이크의 머혼 요원이 그랬고, 퍼시 잭슨의 친구 애나베스의 어머니인 아테나 역으로는 무려 뉴욕 과학 수사팀의 스텔라 형사께서 수고해 주시겠다. 제우스 역의 숀 빈은 너무나 유명하고, 퍼시 잭슨의 아버지인 포세이돈 역에는 무려 [롬]의 주인공인 캐빈 맥키드가 열연했다. 아아, 이 화려한 아저씨 군단이라니! 게다가 캐빈 맥키드는 [롬]이후로 정말 만나 보지 못한 희귀종 드문 배우기에 더욱 반갑다.

미국식 그리스 신화의 재해석 

영화는 그리스 신화의 설정이나 아이템을 요모조모 잘 심어 놓는 데는 성공했다. 무대가 현대 미국이라는 설정도 신선한 소재고, 헐리우드 영화답게 어려울 것 없이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물론 영화 곳곳에 살짝 숨어 있는 미국중심주의가 약간 거슬리긴 하지만, 작가가 미국 사람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럭저럭 봐줄 만한 수준이다. [셜록 홈즈]에서도 그랬지만, 확실히 요새 트랜드는 원작에 충실한 재구성보다는 원작을 베이스로 한 창작이 대세다. 그런 면에서 퍼시 잭슨은 영리한 영화다. 그리스 신화를 모르는 사람도 그럭저럭 즐길 수 있을 뿐더러, 신화의 내용을 현대극에 적절하게 패러디하는 재치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이 가족간의 불화와 대화 부족이라니! 아무리 전작이 [나홀로 집에]라지만 너무하는 거 아니우, 감독?

끈적하다고 불평했던 피어스 브로스넌, 아예 사람이 아니더라  

주연이 피어스 브로스넌이라길래 기대 아닌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 아예 사람으로 나오지 않으니 그저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차라리 보기가 낫더라, 하면 본인한테 너무 실롄가? 제임스 본드 자리도 이제는 신예에게 물려준 그, 레밍턴 스틸의 스마트한 매력은 사라졌지만 주인공을 조력해주는 교육자로서의 이미지도 꽤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울리는데 계속 이런 역 맡아주면 어떨까... 싶은 마음도 들지만, 여전히 그는 그림에서 빠져나온 듯한 로맨스 그레이다.

친구야, 결혼 축하한다  

배신 때리느니 어쩌느니 했지만 내가 이만큼 잘되기를 바라는 친구도 없다. 같은 학교에 같은 과 나왔고, 내 남편 별명이 그집 남편 이름이고, 우리 남편 고시공부 할 때 그집 남편도 똑같은 공부했고, 똑같이 떨어져서 각자 다른 직장 찾았고, 그 동안 뼈빠지게 고생한 것도 우리들이었다. 결혼을 한다니 내가 못 뛰어갈 이유가 없다. 기다려라 친구야. 없는 스케줄 빼서라도 가마. 너 바라는 대로 애기 딱 둘 낳아서 행복하게 오순도순 살기를.

오늘도 빼놓으면 섭섭한 반전/ "연말쯤엔 해야지?" -친정아빠 

"명동성당에서 하자, 얘"-시어머니 

"얘 취업 되는 대로 당장 해버려" -친정엄마 

"옙" -남편(이 자식아!) 

...............뭔가 내 뜻과는 달리 일이 착착 진행되는 기분. 나더러 결혼식 하자고 꾸며 놓고 가면 참 볼 만할 거다. 소 도살장 끌려가듯 질질 끌려 가는 신부, 내가 생각해도 너무 무섭다. 그러니까 그냥 하지 말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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