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재 부모의 오답백과
앨리사 쿼트 지음, 박지웅 외 옮김 / 알마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장난감이 과연 아이의 발달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엄마들이 선호하는 교육용 장난감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부모가 구비해둔 장난감을 단순히 아이들 스스로 발달단계에 맞추어 가지고 노는 것이라면? 예를들어 돌즈음 나무블록을 방에 비치에 둔다고 하자. 아이가 곧장 쌓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색깔이나 모양에 흥미를 보이거나 입에 넣어볼 수는 있겠지만 정작 쌓는 일은 능력껏 미루어 둘것이다. 나무블록이 없다해도 쌓기 능력이 사라질리는 없다. 엄마가 나무블록에 기대하는 건 자유로운 구상이나 놀거리 제공 정도여야 한다.
나무블록은 형편이 낳은 장난감이다. 그나마 요리조리 요량을 부려 생각하고 조작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시중에 넘치는 많은 종류의 장난감들을 떠올려보자. 전자 오르간같은 버튼식 장난감들은 형광색과 번뜩이는 불빛을 자랑하며 애이건 어른이건 상관없이 시선을 끈다. 드럼 소리부터 심벌즈 소리, 마이크에 녹음 기능까지 손가락이 바빠진다. 그런데 더 잘 생각해 보면 이런 정교한 기구들이 오히려 단순한 작동만을 요구한다. 직접 손에 쥐거나 입에 대보면서 느끼는 실재 악기의 까다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당장의 연주는 불가능해도 미적인 세계에 대한 어렴풋한 감상이라도 느낄 수 있지만, 이 악기모형은 전등 스위치보다 아이들 손끝능력발달에 도움이 안된다. 그저 신기한 물건에 대한 구경꾼이 되는 샘이다.
무엇보다 장난감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는 커녕 오히려 죽인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 문제를 다룬 논문을 엮어 <신화론>을 펴낸 프랑스의 사상가 롤랑 바르트는 당시의 장난감을 자연의 산물이 아닌 인공의 괴물로 비판했다. 특히 오줌을 싸는 인형과 여자아이에게 미래의 엄마의 역할을 미리 배우게 하는 인형에 대해서 경악했다.
"이 장난감들은 아이들을 적극적인 창조자가 아닌 단순한 사용자로 만든다. 아이가 마음대로 다루면서 상상상 할 수 있는 장난감이 '이미 다 만들어져서 아이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장난감'보다 훨씬 낫다. 자기 주도적 놀이가 가장 우수하기 때문이다. 조립식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이미 만들어진 것만 사용하는 무기력감을 느낀다. 그 장난감은 아이에게 어떤 모험도 어떤 놀라움도 어떤 즐어움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이는 어른의 세계에 참여하지 못한 채 정채된다. 오직 자신만 즐겁게 할 뿐 놀이에서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하다."
-<영재부모의 오답백과>에서
장난감들이 정교하고 많은 기능을 발휘하게 되면서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장난감을 감상하는 도구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갖가지 기능을 가진 장난감이 아이들의 마음을 유혹하지만 이 유혹은 아이들의 놀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소유욕이나 감상을 위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장난감을 버려라. 아이의 인생이 달라진다>에서

나도 어느 정도의 장난감 공급은 필수라고 여겨왔다. 24시간 아이랑 붙어있다고해도 내 일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어느 정도 분리하고 싶었던 나는 뭘 주면 '혼자'잘 놀 수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문득 아이의 시선이 닿는 곳을 들여다 보면 그건 장난감이 아닌 어른들의 물건이었다. 요리할 때 쓰이는 주방도구 일체, 비누, 열쇠 꾸러미, 회전 의자, 곡식 알갱이 등등. 아이는 마치 자기가 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 부모와 같이 부모의 물건들을 다루고 싶어했다. 장난감으로 수차례 눈길을 돌렸지만 허사였다. 그래서 언제 부턴가 아이가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들은 창고에 쳐박혔다. 결국 아이가 남겨둔 장난감은 나무블록과, 소꿉 몇 개, 공 뿐이었다.
마른 곡식 알갱이와 물, 야채는 아이가 꾸준히 흥미있어하는 장난감이다.
직접 만들어 준 장난감. 우유팩 기차와 양말 애벌레.
그냥내버려두면 아이들은 자기 갈비뼈를 만지면서도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의 조급함은 이를 참지 못해서 교육적 자극이라는 소음으로 아이의 성장을 방해한다.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이 바로 에듀테인먼트 제품의 냉혹한 상술이다. ... 교육용DVD를 치우면 아이들에게 빗자루, 쓰레받이, 어른의 손가락, 열쇠 꾸러미 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이 된다.
-<영재부모의 오답백과>에서
아이에게 장난감을 줄 때 교육적 효과나, 장난감에 흠뻑 빠져 어느정도 시간을 보내주길 기대했었다. 하지만 아이는 정면으로 반박해왔다. 무슨 물건이든 엄마와 함께 가지고 놀고 싶어했고, 유익하다고 느껴지는 장난감들에는 금새 호기심을 잃었다. 아이가 원하는 건 소통의 세계라는 걸 깨달았을 때, 함께 장난감을 만들고 함께 집안을 어지르기 시작했다.
유아교육관련 전문가들은 아이들과 장난감과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 적당한 장난감은 아이들의 지능발달에 도움이 되지만 과도한 장난감에 대한 노출, 특히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이 장난감에만 의존하는 아이들의 놀이는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장난감을 버려라. 아이의 인생이 달라진다>에서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얼른 무언가를 손에 들려주거나 늘 새로운 걸 제안했다. 돌이켜보면 정작 지루함을 두려워 하는 건 엄마였다. <영재부모의 오답백과>에 따르면 무료한 아이들은 어떤 경험을 기다리고 그 기다림은 이후의 경험을 능동적으로 학습하게 하는 정신적 여유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지루함은 해로운 것이 아니라 기회이자 능력이며 아이가 꼭 거쳐야 할 발달단계라는 것이다.
지루함에 대응하는 방법, 관찰에 의하면 지루해 하는 그 순간에 아이들 스스로 학습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관할하고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궁리합니다. ..장난감 없는 유치원에는 몰입의 상황만 존재할 뿐 장난감 중독은 없습니다.
<장난감을 버려라..>에서
<장난감을 버려라..>에서 장난감 없는 유치원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관찰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달리기가 처음인것처럼 열중했고 교실에서 뛸 수있다는 사실과 넓어진 공간만으로 충분히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놀이는 곧 술래잡기로 이어졌고 무엇이든 장난감으로 활용하는 법과 아이들 특유의 관찰력을 발휘하며 세상을 배워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외국에서는 알코올, 마약, 쇼핑 중독의 원인으로 어린 시절 중독을 경험시킬 수 있는 소비재, 장난감이 지목 되었다. 독일의 장난감 없는 유치원에서도 '장난감 없는 지루한 시간=창의력을 키우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같은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독일에는 장난감 없는 유치원 뿐만아니라 숲속의 넓은 공터나 그루터기 같은 곳에서 진행되는 숲속 유치원도 있다. 아이들은 어떤 교구도 장난감도 없이, 그저 자연 속에서 뒹군다. 야외 활동인데도 전혀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흙투성이가 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자연은 아주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유도한다. 상이한 지형상황에서 움직이는 연습, 스스로 놀거리를 찾아 발휘되는 상상력, 단순한 자연물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장난감 같았다.)
그렇다고 아이들 손에서 당장 장난감을 빼앗을 수는 없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품질을 높여서 짧은 시간이라도 '사람과 노는 것이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심어주어야 한다. 또 장난감을 선물하면서 부모의 애정을 과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결국 무엇을 가지고 노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가지고 노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놀이가 학습능력을 키워주지 않는다해도 아이들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 놀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아이들에게
조기교육과 장난감으로 덧칠하기보다 그냥 놀게 하는 건 어떨까. 아이들을 벽장 속에 가두지 않는 한, 아이에게 치명적인 정신적 상처를 입히지 않고 충분한 영양을 공급한다면 아이 스스로 배우는 타고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영재부모의 오답백과>의 저자 엘리사 쿼트처럼 대담해질수는 없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