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 - 독서의 즐거움
정제원 지음 / 베이직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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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정제원/베이직북스/2010.4

서문에서도 언급했지만, 독서법에 관한 책이면서 이렇듯 책을 구체적으로 선정해 일독을 권하는 것은, 독서법만 알고 실제로 그 독서법에 맞춰 독서 할 줄 모르는 병폐를 없애기 위해서다. 훌륭한 독서법은 행위 밖에서 관념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독서 행위 내부에서 우리에게 현시될 뿐이다.

정확히 이 구절이 서문을 포함해 큰 꼭지마다 네 번 반복됩니다. 뻣뻣하고 지루합니다. 진지한데다 관념적입니다. (요샌 목사들도 안그럽니다) 저자 정제원은 구닥다리 입니다. 

언제부턴가 책 가리는 게 제 소양이 아닌지라 어디한 번 읽어보자고 덤벼들었습니다. 의외로 책장은 술술 잘 넘어갑니다. 매 쪽마다 언급되는 책 목록은 헤프게 지나칠 수도 없었습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람이 돈맛도 안다고, 책도 읽을수록 열을 올리게 되있습니다. 요즘 제 독서 시속은 아우토반 입니다. 강한 걸로 넣어주세요, 책에 대고 이런 섹슈얼을 강요하는 중입니다.

도무지 예의라곤 없는 제 질주에 무인 감시카메라가 나타났습니다. 참 구식대로, 독서법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맨 먼저 들고 나오는, 전쟁터에서 평화를 무기로 싸울만한 못말리는 '학도'가 <독서의 즐거움>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의 테마에는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책을 읽는다/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읽는다/같은 테마의 책을 읽는다/같은 번역자의 책을 읽는다. /같은 '이즘'류의 책을 읽는다/같은 출판사 혹은 같은 시리즈물의 책을 읽는다/정치·사회분야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읽는다/두껍고 난해한 책에 도전한다/과거에 읽은 책 중 인상 깊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

이런 숙제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한 학기 강의 계획서 같네요. 물론 교수님이 달변가는 아니었지만 수업은 알찹니다. 좋은 책들에 대한 경외는 망설임 없이, 자신없는 주장은 한발 빼는 겸손으로, 말쑥한 영혼의 그림자를 따라가게 했습니다. 화려한 언변을 뒤로 하고 시대의 독서 교양을 고집하는 학자의 성역을 오롯히 지켜내시는 군요. 

곧 '지식을 어떻게 확장하는 가' '작가는 누구인가'의 다른 테마로 30가지의 독서전략이 등장합니다. 그의 30주 커리큘럼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책갈피마냥 평범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것들이 일목요연한 흐름으로 정리되니 한 사람의 올곧은 독서세계를 맛 볼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선입니다. 한 질의 책 꽂이가 어떤 실제적인 방식으로 채워져있는 지 눈으로 보는 야릇한 현장성도 가집니다. 무엇보다 독서법으로 예시하는 책들이 하나같이 읽어보고 싶어 못견디겠다는 것이지요. 

(제가 고른 책입니다. <지식인을 위한 교양 브런치><헬렌 켈러 자서전><이것이 세상이다><괴테의 이탈리아 기행><나무열전><누들 로드><철학 에세이><반룬의 예술사>)

저는 '일독'을 권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그가 권하는 '일독'에는 머리 굵어진 사람의 수수한 지적 갈망과 시대를 놓치지 말아야할 지식인의 자세와, 치우침 없이 책을 고르려는 겸허함이 들어있습니다. 지나친 책 소개에 할애하는 일이 없어 독서전략의 흐름을 끊지 않는 다는 점이 속도감을 줍니다. 각 수업 사이의 '독서공감'으로 그 내용을 첨부하려는 친절함이 엿보이지만 실은 인상적인 평은 없었습니다. 

서울 토박이 들이건 서울로 올라온 지방 사람들이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가?"하는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갖기 바란다.

<이것이 세상이다>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 신천지에서 들려오는 유익한 정보, 그리고 그 정보를 설명하는 창의적 서술방법과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얼마나 광대무변한지를! 굉장한 내용을 담고 있어 우리의 인생을 뒤바꿔줄 수도 있을 것 같이 포장된 허섭쓰레기들에 비해 이 책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문화사'라면 껌뻑 넘어간다는 저자, 때론 지적으로 때로는 감상적으로, 수를 모르는 사람의 투박한 직설이 난무하지만, 열거한 책들에 대한 이정표 역할 밖에는 못했다해도, <독서의 즐거움>이 흐트러지지 않는 독서법의 기준이 될 것임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수업을 잠시 따라가 볼까요?



상처받은 우리의 영혼을 위무하고, "나 자신은 누구인가?"하고 당당히 물을 수 있는 용기도 얻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물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너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 이는 우리가 정치.사회 분야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혹은 신간에 관심을 갖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쉬운책만 읽어서야, 독서가로 성장할 수 없다. 책읽기도 도전이다. 리하르트 다비드 프레히트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생각보다 충분히 많은 책을 이미 읽었다. 먼 곳에서 책을 찾지 말자. 헬렌 켈러<헬렌 켈러 자서전>→
지식은 잡학 상식을 굴리고 굴려 만든 눈사람과 같다. 잡학 상식은 힘이 세다. 피에르 제르마<이것이 세상이다>→
'구미가 당기는 책'은 결코 엉터리 기준이 아니다. 책을 고르는 능력은 직감일 때도 많다. 그 직감을 키워 나가야 한다. 스튜어트 리 앨런 <커피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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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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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재활용-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 <스티프> 개정판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세계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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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장인정신을 말하다
유홍준.김영일.배병우.정구호.김봉렬.조희숙 지음, 아름지기 엮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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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장인정신, 참 고루한 말입니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지만 '나'는 아닙니다. 바란다고 되는 일도 아닌것 같습니다. 
그래서 '존경'은 하지만 '관계' 할 수 없는 두터운 벽 같기도 합니다. 

책 한권으로 여섯 명의 장인정신을 배울 도리야 없겠지만, '장인정신 이거 자기 계발서의 새로운 아이템으로 등극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기이한 생각이 출몰합니다. 

도제로 스승의 기술과 정신을 부여받고 자신의 몸을 밑천으로 가느다란 명맥을 이어가는 인간문화재의 외로운 싸움이 '장인정신'의 회초리 소리였습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일을 나서서 하겠습니까. 남들 배우는 만큼 배우고, 돈 잘 벌고, 날씬하고, 암에 안걸리는게 삶의 기준이 아니라고 저는 말 못합니다. '장인정신'이 이런 기준과는 담쌓는 일이고 '경지'를 얻는 것보다 '잃게 되는 것'들을 더 많이 떠올리게 하는데도 이 세계에 자진해서 발을 담글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여기 모인 여섯은 장인정신의 '현대화' 혹은 '현실화'를 말하려고 합니다. 이런 말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은 또한 '성공한 장인'입니다. 성공한 사람의 설득력을 거부할 수 없는 '시장자본주의 시대의 장인정신'이라고 한다면 조금 무례하겠지만, 그들의 접점이 비현실성이 아니기에 충분히 가능한 조합입니다.      


유홍준은 전문가와 대중 사이의 충분한 교류 가능성을 언급합니다. 에르메스 넥타이를 예로 들며 통일성과 규칙성 뒤의 쉽게 간취되지 않는 변화, 즉 매우 치밀한 디테일을 산업적 측면의 장인정신으로 꼽습니다. 그런 점에서 단원 김홍도는 넘치는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전문적 영역의 신비화를 고집하지 않으면서, 남과 공유할 수 있는 양식을 창출한 아름다운 장인이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대해서도 한국성을 길어 올리는데 골몰한 것이 아니라 진심을 전하는 '감동'이 먼저였다고 고백합니다. 

지금 당장, 제가 이 장인정신을 본 떠 제 서평에 '감동' 그리고 규칙 이외의 '변주'를 담는다면 그것도 장인정신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무슨무슨 달인,이 장인은 아니지만 달인의 기술에 감동을 더한다면 '장인'이란 무거운 말 앞에 붙을 수 있는 분야가 무한하게도 느껴졌습니다. 아전인수 일까요.           

바톤을 이어받은 악당이반의 대표 김영일의 '산조'이야기는 본래의 고집스런 장인정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제자가 스승의 형식을 부수어 다시 짜는 것, 한 명의 연주자나 작곡가가 자기 사는 동안 딱 한 곡을 남기고 가는 유일무이의 형식이 산조의 현대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말에, 완벽히는 아니어도 동감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산조, 참 포스트 모던 합니다.


 배병우 作 (사진출처)


사진작가 배병우의 문장은 참 담백하고 격이 없었습니다. 바다가 자신의 근원이라며 '바다를 볼 때마다 아, 저 속에 얼마나 맛있는 물고기들이 많을까 라고 웃음짓는다'라고 씁니다. 내 고향 여수, 한려수도의 수사적 아름다움보다 그의 사진의 질감이 만져지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남의 땅에서 이방인처럼 서성대는 우리에게 뿌리로 돌아가 영감을 얻으라는 말은 그닥 획기적이지는 않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처럼 들렸습니다. 아마존 탐방 계획은 취소해야겠습니다.   


장인은 아니라고 외치는 정구호는 대중영화의 아트 디렉터, 의상 디자이너 미술감독 입니다. 그답게 기술과 장인정신의 만남에 대해 말합니다. 그는 최고의 기술은 아날로그적인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기계라고 말합니다. 또 장인을 알아보는 문화적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장인의 물건'에도 '수요'가 있어야 한다고 못 박습니다. 위험천만하지 않나 싶었지만, 그가 이루어낸 영화(<정사>, <스캔들>, <황진이> 등등)의 미장센들이 증거 1호 이기도 했습니다.

이만하면 장인의 편견을 깨는데 괜찮은 조합이었다고 봅니다. 더불어 성공이란 부실한 집에 '장인정신'이라는 튼튼한 디딤돌을 놓을 수 있겠다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북노마이드의 다른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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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북 - 키 작은 사람들을 위한 잡학사전
Kanin, Zachary 지음, 노승영 옮김 / 양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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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람이 <숏북>을 읽는다? 그건 키에 대해 유머감각을 발휘해서, 키가 더는 결점이 아니게 만들려는 이 책의 수작보다 더 웃긴 일입니다. 지금 당신은, 키 작은 사람들을 안쓰럽게 보는 편인가요? 키 같은 건 신경 안쓰고 사람만 보는 타입인가요? 키는 좀 작지만 다른 좋은 점들을 찾으려는 대안형인가요? 키 좀 작다고 뭐?라고 말하는 키 큰 사람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이런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단신입니까?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가가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지나치게 작은 사람들을 위한 위로서' 일거란 짐작은 가지만 정작 이 책을 손에 쥔 키 작은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위안을 받을 수 있을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당연한 수순처럼 키 작은 유명인들이 나열되고, 키가 작아 생기는 불편, 불쾌함들이 거론됩니다. 키 작은 사람들의 자존감과 동감을 끌어내려는 의도는 누가 뭐래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숏북>은 그 모든 것을 떠나 그냥 웃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제법 웃기기까지 합니다. 



케이스와 크리스티나 팩슨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키 큰 사람이 더 좋은 일자리와 더 높은 임금을 얻는 이유는 키 작은 사람보다 더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니, 지금 당신이 읽은 게 맞다. 이 책이 키 작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를 바라지만 내가 엄마 노릇까지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외계인끼리도 키를 가지고 차별합니까?
외계인은 키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촉수 개수를 가지고 차별합니다.

이런 거지 같은 정보를 어디서 들으셨나요?
내 동생이 외계인이다, 이 멍청아.

지하철: 키 작은 사람을 위한 미니 지하철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워싱턴 지하철은 2007년 2월에 손잡이에 용수철을 달아 키 작은 사람도 손잡이를 잡을 수 있도록 했다. 키 큰 사람 수염을 손잡이 대용으로 쓰도록 하려던 처음 발상보다는 괜찮아 보인다.

자신감을 기르는 비법

몸무게를 늘리고 운동을 한다. 사람들은 당신 키보다 덩치를 먼저 볼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처럼 머리를 거대하게 부풀린다. 등등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머로 결점을 커버한다'가 이 책의 핵심이라면 단신의 독자들이 허심탄회 웃을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키가 안 작은 사람'이 읽었을 때 더 웃긴 책이라는 것이죠. 유머란 모름지기 공인의 치부를 들추고 농락할 때가 가장 공감을 얻는 법입니다.(이 책의 공인은 아쉽게도 키 작은 사람이다) 그 누가 자신의 치부로 유머를 구사하면서 똑같은 마음으로 웃을 수 있겠습니까.

이 책은 몸개그 입니다. <숏북>이 소외된 인간에게 힘을 주기를 바란건 기특한 일이지만, 영구나 맹구가 그들처럼 순수하고 남다른 사람에게 힘을 주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힘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희화화 시켜 똑똑해 지려고 애쓰는 바보같은 현대인에게 던져주는 쉼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장해제하고 웃었습니다.




몸개그는 원맨쇼입니다. 이 책도 실제 160세티미터의 유머작가 겸 만화가인 재커리 캐닌 스스로를 웃음의 대상으로 삼은 샘입니다. 그 행동력은 높이 살만 하지만 단신을 위해 힘을 준다는 발상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저 여러 사이즈의 사람 중 오히려 평균치를 자랑하는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 태어난 책입니다. 사실 매우 시시껄렁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읽으려는 제 의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명언이 책의 마지막 장에 등장하고 맙니다.

키가 크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은 하늘을 나는 것이고 두번째는 물 속에서 노래하는 것이다. 제발 이성을 찾길 바란다.
  
어쩌면 <숏북>은 사회적인 열등감과 패배감을 느끼는 우리 안의 키 작은 누군가에게, 혹은 키작은 누군가를  다르게 보는 공평하지 않은 시선에 대한 조롱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서커스 무대에 올리고 아이를 안겨주었던 것처럼요.   





연필 한다스의 책 추렴

<나는 가능성이다>-신체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     <인간적이다>-보통 사람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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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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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쓸 수 있는 책. 그러나 아무도 쓰지 않은 책.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문학동네/2010.3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명제입니다. 이런 고답적인 제목으로 뒤통수를 치고 나오는 이 책을 이번 주 제일 먼저 집어들었습니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20대보다 30대에 더 절실해 집니다. 나이가 문제는 아닙니다. 최고조에 다다른 생산력으로 짝짓기할 상대를 고르고 오차없는 결과물을 만든 이후에 맞이하는 '죽음'이란 단어는 형이상학이 하닌 하등현실이었습니다.

생식 임무를 다하는 순간, 우리는 버려도 좋은 존재가 된다.-책에서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내가 싱싱한 개체를 위한 수단이라구요? 이를테면 죽음과 정면으로 대응하자는 취지일테지요. 그러고 보니 아이를 낳은 다음부터 가시적으로 사라진 청춘, 끓는 사랑, 무모한 열정 같은 것이 단순히 외부적인 요인만은 아닌것 같군요. 저는 이제 죽기 시작한 겁니다. 

아이를 하나 낳았으니(둘이든 셋이든) 인류의 사명을 완수한 샘이 될까요. 아니, 여성에게 XX유전자와 솔방울 생체시계를 더 나눠주어 연장된 수명으로 아이를 돌보게 한 책임도 뒤따르겠지만, 지금은 우선 네(아이)가 사는 일 말고, 내가 죽는 일이 시급해집니다. 방금 값을 치른 호떡이 구워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 따끈따끈한 죽음이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저를 맞이하는군요.

이제 죽음과 대적해 볼 시간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내 것이었지만 여태 한번도 내 것은 아니었던 그 놈에 대해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놈과 제대로 싸우려면 하루에 30분씩 거르지 않고 운동하고, 채식식단을 강화하고, 알칼리수 10잔과 녹차 10잔을 마시고, 담배도 끊고, 종교를 가져야 하겠지요. 하지만 죽음과 싸워도, 싸우지 않아도 죽음이 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실 건가요?  이 말에 운명을 대입한다면 좀 더 무거워 지겠습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죽음과 싸우는 인간 입니다. 더 자세히는 늙음을 거부하고, 그 말도 안되는 신경전에서 100전 100승할 것 같은 97세의 노인넵니다. 저자는 아버지가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고, 동시에 내일 당장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건 '죽음'을 놀리겠다는 거지요? 사랑을 포함한 영원한 주제 중에 어떤 바보도 할 수 있는 '죽음'으로 한바탕 놀아보자는데 만 원 걸겠습니다. 

예상보다 진지한 책은 아니라고 공언하고 싶습니다.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미국적인 책입니다. 스포츠가 있고 명언이 있고, 사생활이 있고, 폭로가 있고, 컴플렉스가 있고, 설탕이 있고, 발기가 있고, 그 모든 걸 뛰어넘는 자랑스러움이 있습니다. 저는 이걸 미국적이라고 느낍니다.  

이 책을 굳이 저울질 한다면, 셰익스피어 부터 우디앨런, 아버지부터 택시 운전사까지, 그들이 죽음을 어떻게 말하는지가, 무게로 가중됩니다. 게다가 '그래도 우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의 일치단결된 결말은 제가 알기론 딱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죽는 건 누구나 한다, 사는게 재주지' 그 어떤 위대한 이들의 명언보다 아버지의 이 한마디가 빛을 발하는 이유는 이 책이 '죽음'이 아닌 '아버지'에 대한 오마쥬이기 때문입니다. 

죽도록 미워하고 누구보다 사랑하고, 가장 강하고 또한 가장 약한, 누구나의 거인이자 소인인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전선입니다. 짐짓 날을 세우며 태어남 부터 죽음의 순간까지를 과학적 사실들로 강렬하게 채우긴 하지만, 상식적이거나 전문적인 종류의 이런 지식들은 의외로 자주 만납니다. 물론 이렇게 꼬집어놓는 것도 힙들겠지만요.

그의 아버지는 그의 영웅이면서 쪼다고, 건강하면서도 늙어가고, 색광이면서도 몽상가인, 죽음과 가장 가까운 지상에 있는 인간입니다. 수사를 빼고 담백한 글귀가 이어지긴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화려한 수식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습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는 자신을 설명하는데 주변 인물만큼 좋은 자료는 없다는 투의 말이 나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아버지를 통해 그 누구보다 자신을 많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과 아버지와 과학과 스포츠와 통증이 만나는 이 자리는 누구나 들렀다 가는 버스정류장입니다. 뻔한 이야기를 가장 뻔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그가 무척 부럽습니다. 수많은 추천사 중에 '이 책이 내 책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인간의 몸을 알만한 과학서적들을 통독해서 자신의 언어로 녹이고, 죽음에 관한 경구를 수집하고, 아버지의 기이한 생명력과 죽음에 대한 거센 저항력의 일화를 고르고, 자신의 경험을 칼처럼 꺼내들어 꽂으면, 누구나 이 책을 쓸 수 있는 메뉴얼이 됩니다. 

거의 흡사한 종류의 <내 몸의 사생활>로는 사실 이만한 정서적 충격은 받지 못했습니다. 과학과 몸이 만나는 지점을 시간 순으로 전개한 것은 동일했지만, 결정적으로 이 책은 삶에서의 '죽음'을, <내 몸의 사생활>은 하루의 여정 중 밤을 종착지로 삼았으니, 무엇이 스케일이 큰 지는 말 할 것도 없겠습니다. 무엇보다 아주 강한 치부들이 낯 뜨거울 정도로 들춰지는 이 책은 인문서가 아닌 논픽션이라는게 그 이유입니다. 

그래요. 우린 언젠가 죽는다고 칩시다. 죽음와 이제 큰 용기로 마주했고, 째려보기도 했지만 기꺼이 악수도 했습니다. 더 이상 죽음이 슬픔, 회한, 원망 같은 부정적 감정만 포함한게 아니라 죽음과 싸워왔던 용맹한 늙음도 칭찬하고 싶습니다. 반대로 속수무책의 한계점을 확인하고 주춤 물러섰다면, 살아있는 순간이 더 소중해지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뜬금없지만 덤덤히 유언장을 쓰는 문화적 대안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나도 죽음에 대한 멋들어진 한 마디를 보태는 것으로 책을 덮고 싶기도 합니다. 






 
무대를 바라보듯 골목길을 주시하던 아이가 일명 왜가리 포즈로 시동을 걸더니 갑자기 흥에 겨워 춤을 추기 시작했죠.


재미난 일이 있으면 언제까지라도 깨어 있을 수 있다는 듯 버티다가 자기도 모르는 새 곯아떨어 진 아이에게서 저는 가장 환기된 죽음을 만납니다. 정해진 시간에 자야 내일을 보충할 수 있는 연속된 삶의 흐름을 사는 어른이 되면 오히려 죽음을 체감할 기회는 적어집니다. 매일을 죽고 매일을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아이들은 살고 있습니다. 잠을 통제하고, 식욕을 억제하고, 할 일을 정하고, 스케줄을 짜고, 불을 끄고 이불 아래 눕는, 알고보면 지극히 낙관적인(당연히 내일이 온다는) 하루가 갑자기 못마땅해 집니다.
우리의 하루는 매일 죽음을 연습하도록 설계되어 있을 지도 모릅니다. 내 안에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건, 동심의 차원이 아니라 태어 날 때부터 지닌 '삶과 죽음의 기술'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회한이 밀려옵니다. 하루의 삶이 좀 더 아이다워 진다면 죽음이 이토록 대단한 목록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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