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장인정신을 말하다
유홍준.김영일.배병우.정구호.김봉렬.조희숙 지음, 아름지기 엮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장인정신, 참 고루한 말입니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지만 '나'는 아닙니다. 바란다고 되는 일도 아닌것 같습니다. 
그래서 '존경'은 하지만 '관계' 할 수 없는 두터운 벽 같기도 합니다. 

책 한권으로 여섯 명의 장인정신을 배울 도리야 없겠지만, '장인정신 이거 자기 계발서의 새로운 아이템으로 등극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기이한 생각이 출몰합니다. 

도제로 스승의 기술과 정신을 부여받고 자신의 몸을 밑천으로 가느다란 명맥을 이어가는 인간문화재의 외로운 싸움이 '장인정신'의 회초리 소리였습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일을 나서서 하겠습니까. 남들 배우는 만큼 배우고, 돈 잘 벌고, 날씬하고, 암에 안걸리는게 삶의 기준이 아니라고 저는 말 못합니다. '장인정신'이 이런 기준과는 담쌓는 일이고 '경지'를 얻는 것보다 '잃게 되는 것'들을 더 많이 떠올리게 하는데도 이 세계에 자진해서 발을 담글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여기 모인 여섯은 장인정신의 '현대화' 혹은 '현실화'를 말하려고 합니다. 이런 말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은 또한 '성공한 장인'입니다. 성공한 사람의 설득력을 거부할 수 없는 '시장자본주의 시대의 장인정신'이라고 한다면 조금 무례하겠지만, 그들의 접점이 비현실성이 아니기에 충분히 가능한 조합입니다.      


유홍준은 전문가와 대중 사이의 충분한 교류 가능성을 언급합니다. 에르메스 넥타이를 예로 들며 통일성과 규칙성 뒤의 쉽게 간취되지 않는 변화, 즉 매우 치밀한 디테일을 산업적 측면의 장인정신으로 꼽습니다. 그런 점에서 단원 김홍도는 넘치는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전문적 영역의 신비화를 고집하지 않으면서, 남과 공유할 수 있는 양식을 창출한 아름다운 장인이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대해서도 한국성을 길어 올리는데 골몰한 것이 아니라 진심을 전하는 '감동'이 먼저였다고 고백합니다. 

지금 당장, 제가 이 장인정신을 본 떠 제 서평에 '감동' 그리고 규칙 이외의 '변주'를 담는다면 그것도 장인정신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무슨무슨 달인,이 장인은 아니지만 달인의 기술에 감동을 더한다면 '장인'이란 무거운 말 앞에 붙을 수 있는 분야가 무한하게도 느껴졌습니다. 아전인수 일까요.           

바톤을 이어받은 악당이반의 대표 김영일의 '산조'이야기는 본래의 고집스런 장인정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제자가 스승의 형식을 부수어 다시 짜는 것, 한 명의 연주자나 작곡가가 자기 사는 동안 딱 한 곡을 남기고 가는 유일무이의 형식이 산조의 현대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말에, 완벽히는 아니어도 동감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산조, 참 포스트 모던 합니다.


 배병우 作 (사진출처)


사진작가 배병우의 문장은 참 담백하고 격이 없었습니다. 바다가 자신의 근원이라며 '바다를 볼 때마다 아, 저 속에 얼마나 맛있는 물고기들이 많을까 라고 웃음짓는다'라고 씁니다. 내 고향 여수, 한려수도의 수사적 아름다움보다 그의 사진의 질감이 만져지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남의 땅에서 이방인처럼 서성대는 우리에게 뿌리로 돌아가 영감을 얻으라는 말은 그닥 획기적이지는 않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처럼 들렸습니다. 아마존 탐방 계획은 취소해야겠습니다.   


장인은 아니라고 외치는 정구호는 대중영화의 아트 디렉터, 의상 디자이너 미술감독 입니다. 그답게 기술과 장인정신의 만남에 대해 말합니다. 그는 최고의 기술은 아날로그적인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기계라고 말합니다. 또 장인을 알아보는 문화적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장인의 물건'에도 '수요'가 있어야 한다고 못 박습니다. 위험천만하지 않나 싶었지만, 그가 이루어낸 영화(<정사>, <스캔들>, <황진이> 등등)의 미장센들이 증거 1호 이기도 했습니다.

이만하면 장인의 편견을 깨는데 괜찮은 조합이었다고 봅니다. 더불어 성공이란 부실한 집에 '장인정신'이라는 튼튼한 디딤돌을 놓을 수 있겠다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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