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매사에 화가 잦은 나,의 문제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출근하는 전철이 이 시간대임에도(우리 회사는 오래 전부터 시차출근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워를 피할 수 있다)불구하고, 승객이 너무 많아서 화가 났다.
아니 왜 이래? 한시간이든 30분이든 일찍 나온 보람이 없네.
나는 투덜대면서, 전철 속으로 뛰어든다.
마스크를 턱하니 벗고 휴대폰 통화를 하는 저 남정네는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
하면서, 약간 힘을 주고 째려본다.물론 몇 초 동안, 아주 짧아야 한다. 혹시라도 그가 나를 인식하고, 해꼬지를 하면? 두려움에 나는 소심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아 바깥으로 나오니까..이건 뭐 타야 할 버스가 너무 안오네.
아아 오늘 지각을 면하고자 평소보다 일찍 나왔고, 늘 하던 스트레칭의 마지막 세가지를 빼먹고 왔건만.
보람도 없이, 나는 출근시간보다 3분 지각했다.
역시나 화가 났다. 자리에 앉으면서도, 화가 나서 그냥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곤, 나의 화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모든 감정에는 원인이 있을 터이고, 이 감정은 분명히 나에게 무엇인가를 드러내고 있을 터인데 말이다.
일단 오며 가며 읽기 위해 주문해 둔 책을 꺼내든다.
고 생각하였는데, 세상에나, 다른 책을 갖고 왔네. 어제밤에 분명 내일 출근과 퇴근길에 조금씩 읽기 위해 책상위에 두었던 책을, 급한김에 보지도 않고 보조가방에 넣었는데, 다른 책을 넣고 온 것.
그래서 또 화가 났다. 나의 부주의함에.
여튼 잘못 가져온 책을 읽으면서, 아직 이 소설은 뭔가 굉장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올 것인가..하는 기대도 점차 시들고 있는 터였다.
정직하게 말하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건축이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인간은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지구의 온갖 곳으로 거주지를 넓혀가는 그 모든 과정에서 거주할 어딘가에 무언가를 세웠을 터인데, 그런 역사를 죽 훑어나가는 연대기적 건축사를 기대하면 안된다.
주인공은 자신이 공학자로서 관여한 건축물-다리, 건물 등-이 어떤 물리적, 수학적, 기술적 원리로 그런 모양으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마주친 이런 저런 놀라운 공학적 원리는 사실 우리 인간의 역사에서 끝없이 짓고 허물고 짓고 허물고 한 경험의 결과라는 것.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최고층으로 신기록을 계속 쌓아 가는 고층 건물은, 사실은 콘크리트의 사용, 강철의 발견, 엘리베이터의 발명...의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라는 점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인류는 또 다른 기술의 발견과 발명을 통해 더 빨리, 그리고 더 단단하게 또는 불가능해 보이던 높이까지 혹은 지하까지 건축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이것은 낙관일까? 축복일까?
땅위에 살도록 만들어진 우리가 저렇게 높이? 혹은 저렇게 아래로?
이 책을 읽고 난 후다.
방에 누워 가만히 천정을 응시한다.
저 천정의 높이, 그것을 떠받치고 있을 벽, 벽을 형성하는 콘크리트, 방과 방을 구획하고 있는 기둥들,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배수로.....화장실과 그 오물을 내보내는 하수구...집이란 '집'이라고 단순간결하게 명명하는 것 이상의 과학과 역사가 반영된 형상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사실 이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임에도 로마 아그라왈이라는 한 여성(그렇다 나는 여성이라고 쓴다. 21세기가 한참 지난 지금도 여성 공학도는 드물다는 사실에 다시 놀라면서) 공학도가 이처럼 마음먹고, 그러나 술술 이야기하듯 써내려간 책을 읽지 않았다면, 미처 개닫기 어려운 아니, 간과하기 쉬운그 무엇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