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것도 의미가 없는 날, 나는 쓴다.
이렇게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고.
꽃이 피고, 지고, 아침이 오고 가고, 저녁이 온다. 일을 하지만, 마음은 일을 보지 않고, 나는 오늘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의 단편집을 읽었다.
벌써 3,4주전에 끝냈건만, 벌써 오래된 습관이 된 듯, 긴 글, 독후감을 쓸 여유가 없다.
왜일까?
나의 시간이 그 언젠가보다 줄었단 말인가?
그건 아닐 터이고, 마음이 급해져서 인가?
왜?
숨을 읽었고, 각각의 단편(소프트웨어 객체의 ...는 별로 마음에 안와닿음)은 나름대로 의미를 던졌다. 나는 첫작품이 너무 인상적이어서..울었다.
눈물이 나다니, 그건 기억의 어떤 편린을 건드렸기 때문일 터이다. 기억이라...아니다 기억이라기 보다, 인간의 지구 위에서의 삶은 되돌릴 수 없다는 점, 그 불가역성이 너무 몸서리쳐져서일 수도 있다.
최근 드라마 한편과 함께 기억에 자주 소환되는 것은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란 작품...자유의지에 대한 것이건만, 자유의지란 인간 본성인 건지..자유의지란 도대체 어디서 기원하는 건지에 대해 진지하게 반추하게 하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빌 브라이슨의 바디다. 이건 인간에 대한 미시적 탐구이다.
우주로 갔다가 다시 몸으로 온건가?
(그냥 이리 저리 방황하는 인생이다.)
늘 그랬다. 방황하다 정신차리고 보면, 또 그자리...그자리...서성이고 있었다.
결론은, 어린 시절에 이미 한 인간이라는 나무의 크기는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하는. 그러니까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은 진실이라는 것. 그 떡잎속에 나무 모양을 찾아내서 아이들이 와 나중에 이렇게 된대 하던 기억이 나는데, 그게 사실은 진실을 목도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이미 그 어느 여섯살 때의 한 순간에서 정해져 버린 듯하다.
기억은 뇌의 서로 다른 부위에 나뉘어 저장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필요시 꺼집어 내어 조합되는 과정에 굴절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하던데...여튼 나는 그 어느날의 심부름에서 나의 인생이 정해져 버렸다고 생각한다.
숨은 테드 창의 신작이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여튼 김초엽의 작품이다.두개의 작품을 비교할 능력은 없어서 생략하고,
우리의 세계관이 조금이라도 멀리 확장될 수 있었다면, 인식의 지평이 더 넓어질 수 있었다면, 이 두개의 작품을 읽을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세계는 불가해하지만, 노력을 멈출 수는 없는 것, 그것이 지능을 가진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 또한 말하고 싶다.
내가 인간인 이상...놀라운 특권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