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나는 내가 살아남을 만큼만, 용감하고, 살아남을 딱 그만큼만, 진보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아 물론, 이전부터 내가, 어리석고, 겁쟁이란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자기고백할, 기회가 없었거나..회피하였거나, 적어도 그럴 정도는 아니라는 자만심에, 이것도 자만이라면,쌓여있었다는 말이다.


문득 떠오르는 이런 단상들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지만, 하나하나 모아보면, 나라는 인간이 어쩐지 비루해 보인다.

뭐 예전에도 그랬지만..그런 자각은, 사실은 슬프다.

인간으로 태어나, 무언가 할 수 있을 거 같은, 그게 희망이라 불려야 할지, 낙관이라 불려야 할지,혹은 본능적인 자만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느낌들을 가지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하지만, 실은 인간이라는 종을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이런 모양새를 가진 어떤 존재가 되어 있었고, 마침 의식이라는 특징을 갖추고 있었고, 또 마침...인간 존재는 스스로에 대해서 알고싶어하고 또 알아내고 있고, 알아낸 만큼 내가, 이 우주에서 그다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또또...인생이란 축하할 일도, 또 한탄할 것도 아니라는...우연의 사슬일 뿐이라는, 그런 자각말이다.


그리고 또 문득, 나란 지금 여기 이렇게 걸어다니고, 말하고, 웃고, 밥먹고, 뭔가 일을 하고 하는 존재인 나는, 결국 죽음을 향하여 묵묵히 나가는 수밖에 달리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다면, 정말 속수무책인가?

낙관도 절망도, 그리고 진보도 타락도,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것일까?

쌍화차를 두봉지 사들고 오면서,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메르스에 안 감염되기 위해 최대한 면역력을 기르려고 하는 나자신을 보면서, 이건 또 뭐라 불러야 하나? 본능인가? 이웃에 대한 예의인가?

두려움인가?

생의 애착인가?


호들갑인가?

그리고,또또..필경사 바틀비에 대한 독후감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쓸 필요까지야 없지 않을까? 쓴다고 한들 무슨 이야기를 쓰나?

바틀비, 그는 그냥 아무것도 안하는 것을 택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안하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안할 선택의 자유마저도 없는 존재가 아닐까?


나는 사실, 바틀비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다..그냥, 이런 느낌? 

어느날 아침 제일 먼저 일하는 사무실 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사무실 안쪽으로 문이 잠겨져 있고, 엇? 누구지? 나보다 먼저 누가? 하는데 잠시 뒤 느릿느릿 누군가 안쪽에서 문을 여는데, 문이 열리고 비쩍 마르고 표정없는 어떤 남자와 딱 눈이 마주친 느낌???

뭐 그런 느낌이다..


실은 작품속 한 장면이기도 하다...


죽음을 향해 그저 나아가는 길에, 일을 하여야 하고 왜? 죽을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하니까, 이런 저런 사람도 만나고, 또...뭐 그런게 인생이 아닐까?

쌍화차를 뜨거운 물에 데워 마시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틀비를 떠올린다.


아, 바틀비...바틀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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