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허무감이 존재의 의미를 압도해 버리지나 않을까...
빅터 플랑클의 이 대목에서 나는 내 존재의 허무감이 내 존재의 의미를 이미 압도해 버렸다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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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편협한 것은, 내 경험이 폭넓지 못해서 일까?
나는, 하나를 보아도 그 하나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펭귄클래식의 두 도시 이야기를 다 읽었다.
시드니 카턴의 그 행위는 사랑인가?
도대체 그건 뭐지?
여자 주인공 루시는 지극히 평면적이다. 금발의 인형이라는 표현에 딱 맞는다. 그러고 보니, 위대한 유산의 에스텔러 역시 그닥 깊이있고 풍부한 여자주인공은 아니었던 듯하다.
오히려 미스 해비셤이야말로 인상적이 어떤 캐릭터를 구축했다! 내 생각이지만...말 많은 평론가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지?
혁명이라...혁명...
고귀한 사랑의 힘이 혁명의 광기에서 어떻게 사람을 구하는지 보여준다!!이건 너무 교조적이고 평면적인 감상평이군.
사실은 소름끼친다
혁명이란 결국 두 광기의 부딪침인가?
하나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어떤 질서가 탄생하기까지, 피를 보는 것은 불가피한가? 세상에 거저 자유, 평등, 박애가 주어지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