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다.
점심 때 근처 유로고메에 가서 샌드위치와 연어샐러드와 라쟈냐를 시켜 먹었다. 먹고 나니, 체했다. 대체로 찬 음식을 찬 날씨에 먹으면, 자주 체한다.
사실, 그닥 밖에서 먹고 싶지 않았으나, 또 도시락을 싸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거절하는게 나의 본심에 합당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같이 가자는 말에 나갔다.
나참..난 왜 이렇게, 솔직하지 못할까...싶은 생각을 잠시 품었다가, 이내 놓아버리고..조잘거리며, 동료와 함께 나갔다.
이즈음의 나는, 자주 이런다.
그건, 내가 아직 어리기 때문이고,
그건, 내가 여전히 수동적이기 때문이고,
그건, 내가 이토록 우유부단하기 때문이다.
나도, 안다.
아녜스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아녜스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되고자 하는가?
나는 스마트 폰이 없어서, 음식들이 차려졌을 때, 찍지 않아서, 누구처럼 페이스북에 자랑질도 안했다.
밖은, 바람이 불어 잎들이 심하게 흔들거렸다. 진열장 속에는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종류의 치즈들이 누워있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왔단다. 참 멀리서도 왔군!
우리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득의 격차가 음식과 영양의 격차로 이어진다는 이야기와 미국의 어느 빈민가 아이들은 채소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놀라운 소식과 실은 가난한 집일수록 패스트푸드와 레토르식품을 사다 먹으니 생물의 채소를 사 요리할 일이 없고 그러다 보니, 식품점에서 채소를 팔지 않게 되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수긍과 이런 현실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개탄과....그리고...우울한 마음을 안고 걸었다.
그리고 다시 일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체했다는 사실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