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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섹스 - 생명은 어떻게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가?
도리언 세이건 & 타일러 볼크 지음, 김한영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토요일 오후, 한가한 시간의 실내 수영장이다.
실내 수영장은 여전히 젊은이들로 넘친다. 최초로 수영장에 대한 각별한 인식을 심어주었던 이는 아녜스, 그렇다 아녜스였다. 내게 파르마의 수도원을 가르쳐 주었던 이도, 바로 아녜스 그녀가 아니던가.
그 부인은 예순이나 예순다섯 살쯤으로 보였다. 나는 어느 현대식 건물 맨 꼭대기 층 헬스클럽의 실내 수영장 맞은편에 놓인 길쭉한 의자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파리 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중략)...그녀는 혼자 풀 안에서 허리까지 물에 담근 채, 자기 앞에 꼿꼿이 서서 수영을 가르치는, 선수용 웃옷까지 걸친 강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 그녀는 풀 가장자리 난간에 매달려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이 심호흡을 반복했는데,마치 물 저 밑바닥에서 어떤 낡은 증기기관차 소리(오늘날에는 잊혀 버린 이 목가적인 소리를, 이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다만 그것을 풀 가장자리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한 노부인의 숨결과비교하는 것뿐이다.)가 솟아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매혹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내가 어쩐지 가슴 찡한 그녀의 코믹한 면모에 사로잡혀 있을 때...(중략)...그녀는 수영복 차림으로 풀 가장자리를 따라 수영 강사를 지나쳐 사오 미터쯤 갔을 때 문득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했다. 나의 심장이 졸아들었다. 그 미소, 그 손짓, 바로 스무 살 아가씨 같지 않은가! 그녀의 손은 눈부시도록 가볍게 날아올랐다. 마치 그녀는 장난하듯, 울긋불긋한 풍선 하나를 연인에게 날려 보낸 것 같았다. 비록 얼굴과 육신은 이미 매력을 상실했다지만, 그 미소와 손짓에는 매력이 가득했다. 그것은 매력 잃은 육신 속에 가라앉아 있던 한 몸짓의 매력이었다. 그부인이라고 해서 자신이 이제 더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테지만, 그녀는 그 순간만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p.9-10)
너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여 몸이 화끈거렸다. 이 열에너지 때문인지 수영을 한시간 했는데도 거뜬했다.
그리곤, 다시 아녜스를 떠올린다. 나는 그녀처럼 손을 흔들어 보이고 싶었던가? 10여 년 전 처음 수영을 배울 때, 그럴 수도 있었다. 반한 누군가를 따라하고 싶었다면, 내게는 바로 책의 여주인공들이었을 터이니 말이다.
최초로 대학 1학년 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일고 숨이 가빴던 일 이후,여주인공은 내 인격의 일부가 되었던 것 같다.
낭만적 동경의 대상으로서 여자주인공들!
사랑에 대해서 이별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사후 세계에 대해서, 인간만큼 철저하게 상상적인 존재가 있을까?
상상이라는 프로세서 혹은 뇌의 작용은, 우리 진화과정에서 꼭 진화적 잇점을 주기 때문일까? 아니면 진화의 부수적 산물일까?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죽음과 섹스다. 인간이라는 생물체가 왜 죽음을 거쳐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 삶에서 아니, 우리종에게 섹스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
죽음이란 우리 인간의 본질이며 진화적 본질이라는 것, 우리 욕망의 진정한 대상은 바로 태양이라는 것(이는 사드의 말을 인용한 것)!
새로운 몸의 발생시키려면 세포들은 조상의 상태인 정자와 난자로 돌아가야 한다. 수정이 되면 두개가 합쳐져 지금 나의 몸과 같은 염색체수가 되는 거다. 이것은 아메바의 동족포식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배고픈 아메바형 세포들은 서로 세포막과 세포질을 합치고 자신들의 염색체로 하나의 핵을 이루는 식으로 서로를 포식한다. 이것이 섹스의 기원이라니.
결국 우리는 태양의 에너지를 추구하고,소비하며 종국에는 원래 왔던 별의 먼지로 돌아가는 거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어느 먼 별에서 왔다는 표현은 시처럼 멋지고 낭만적이지만 한편으로 진실인 셈이다.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아, 저는 먼 별에서 왔습니다.
아하!우리는 고향이 같군요.
아녜스, 당신과 나의 고향도 같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