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고양이 -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꾸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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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의 소나티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면서 열역학 제2법칙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며 교양의 양극화를 우려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 자신에게 그 잣대를 들이대 보았다. 나는 세익스피어의 소나티네도 잘 모르거니와 열역할 제1법칙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라면 잘 못할 것 같다. 둘다 서양에서 이입된 이론이기는 하다.

이건 교양의 양극화가 아니라, 교양의 절대부족이라고 해야 되지 않나 싶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우리는 교양의 절대 부족 내지는 교양의 절대 양극화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에 최재천 교수나 도정일 교수 같은 분이 학문의 하이브리드 시대니 통섭이니 하는 시도를 하고 있긴 하지만, 나만 해도 인문계를 지원하고 나서는 물리나 수학의 또 다른 분야는 문닫고 살았으니 말이다. 

어느날 문득 내 생애의 어느 순간이든 이토록 매력적인 분야를 지나치지 않고 인지하게 된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 시발점이 된 것은, 역시 책이었지 않나 싶다. 그 책은 무엇이었을까? 기억하기가 솔직히 쉽지는 않다....최초의 인간이 누구인지 의견과 이론이 분분하듯, 내 최초의 책은 무엇이었을까....우리의 기억은 늘 위태롭게 흔들거리고 기억은 완벽하게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 허나 나의 편향을 부채질했던 책들을 떠올리려 애쓰면서, 그동안 읽었던 사랑스러운 책들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런 기억들은, 행복하다. 어디에선가 행복은 죽고 나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했던 것 같다. 막스 플랑큰가? 모순적인 말 같지만, 이해가 되는 말이다.최근 좀더 알고 싶은 것은, 막스 플랑크의 양자도약,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파울리의 배타원리 그리고 리만의 가설에 대한 최근의 연구결과 따위다. 무엇보다 테드 창이 후속작을 썼는지 썼다면 언제 번역되어 나올까도 궁금하다.  

5월, 파란 많았던 한 계절이 오늘로서 끝이다. 오늘의 경계와 내일의 경계가 오로지 시계바늘이거나 시계침 하나인 세계에서 5월은 고단한 무대를 접고 퇴장하려 한다. 

나는, 5월이 힘이 들었다. 좌절과 환멸과 추억이 정신을 온통 흐트러지게 한 이 계절에, 꿈을 꾸었다. 꿈조차 꾸지 않으면,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했던 누군가의 말도 생각난다.  시간은 주단위로 빠르게 흘렀지만, 내 마음 속의 시간은 어느 순간 멈춘 듯하다. 차악의 선택-자살이라고? 그런 책 제목이 눈에 띄었으나, 펼쳐 보진 않았다. 나는 아침이면 눈을 억지로 뜨고 정해진 일과에 맞추어 버스를 타고 체육관에 가거나 출근을 하였다. 출근하여 기계적으로 맡겨진 일을 하고, 퇴근 시간에 맞춰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내렸다. 

나의 감각은 내 몸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나는 내가 이 계절 한 동안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초조했다. 나는 이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존재란 말인가? 

그런 초조감이 존재를 압도했다. 물리적인 세계에서 물리적 존재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날로그적인 감각과 디지털적이 그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앨리스라면, 나는 도대체 나자신에게 무엇을 물어볼 수 있을까? 이 삶은 도대체 삶인가? 

마이크로적인 삶과 매크로적인 삶이 동시적으로 하나의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지금 이 곳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에어빈 슈뢰딩거의 전기라거나 그의 물리학 방정식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막스 플랑크의 전기와 함께 배달된 이 책은, 아쉽게도 과학 교양 입문서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과학 교양 입문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기대하기는 적어도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은유하는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의 결정적 차이에 대한 교양서라든가, 대중적이되 가볍지 않은 물리학 이론서이기를 기대했다. 물론 이 책에서 언급한 다양한 이론적 배경과 쟁점은 여전히 흥미롭긴 했다. 과학사에서 중요하거나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들은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반복된다. 그렇다, 물리학 역시 음악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영감을 주고, 아름다움도 주며, 존재에 대한 깊이를 더해 준다.  

어떤 것이 어떤 것보다 더 낫다라는 비교가 통하지 않는 이유를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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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9-06-01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년 전 나는, 적어도 애는 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과 달리 구멍이 나진 않았지..내 삶의 일부가...어쩌면 뼈대...틀..이었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