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다. 

몇 일째 계속 화다스리는 법이란 제목으로 메일이 온다. 한국건강연대라는 곳에서 보내는 이메일이다. 화를 참지 못하는 성미라는 것을 특히 요즘, 화날일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듯. 마치 지금 나는당신의 상태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꼼짝말고 우리의 프로그램에 참가하십시오, 하는 듯하다. 

 점심때도 그런 말을 하였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허니 지금부터 화다스리는 법으로 스스로를 단련시켜 놓으란다. 그럴 듯하다. 나 역시 감정이 너무 과잉한 상태라. 아마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실망하고 실망하리라. 어느 신문칼럼에서 읽은 듯하다. 오로지 자신의 비판능력만을 믿으라는. 

자신의 비판능력이라......천암함사건도 그렇고 도무지 모든 것이, 이성의 정상적인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끔 정의는 있는 건가. 진실이란 어디에 있는 건가. 정말 사필귀정이란, 신기루일 뿐인가 하는. 아니 이런 생각은 자주 든다.... 

이런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은,슈뢰딩거의 고양이다.  

슈뢰딩거는 오스트리아 물리학자이며 나는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 슈뢰딩거의 방정식으로도 유명하고, 무엇보다 양자세계가 확률에 따라 움직인다는 새시대의 물리학에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껴 거부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주장한 하이젠베르크에 반감을 느끼고 공개적으로 경멸했던 인물이다. 해서 사고실험을 통해 그것이 엉터리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여기서 나온다. 방사능물질이 흘러나오게 장치해 둔 상자속에 고양이를 함께 둔다. 실험자가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고양이는 죽었을 수도 살았을 수도 있다. 관찰자가 문을 열어 확인하는 순간에야만 그 상태가 확정된다는 것이다. 문을 열기 전에는 고양이는 죽었을 수도 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가 어떻게 반 죽고 , 반 살 수 있단 말인가...하는. 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허나 양자세계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의미가 행해지는 세계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듯하다. 양자의 존재를 우리는 감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사실 고양이가 죽었는지 아닌지는 우리가 그것을 감각적으로 확인하든 말든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관찰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 않나.? 

암튼 잘 모르겠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도 실은, 원자가 어떤 상태변화를 겪더라도 그 원자이게 하는 고유의 특성(?)을 잃지 않는 이유가 무언지를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한다. 그럴듯하게 들리는데, 실은 잘 모르겠다. 하나의 전위에는 꼭 하나의 전자만 존재할 수 있다는 원리인데....음...좀 어렵다... 

하지만 이런 물리학의 이론들을 읽고 생각해 보고 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사물의 이치를 따져보고 이해하는 재미랄까? 그건 또 묘한 즐거움을 준다.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주의 별빛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곳에서 생명의 아주 미세한 근원이 있다는 것, 그런 사실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것 못지않는 즐거움을 준다.....이런 것을 지적 즐거움이라고 하는 건가... 

지금은 정신이 없어 사둔 책들이 쌓여 간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다 집어쳤다. 생각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다만, 조지 오웰이 왜 그런 생활을 한 것인지, 감정이입을 하고 싶다. 나는 솔직히 그러고 싶지도 않고 또 그러지도 못할 것이다. 파리의 우아한 동경, 그러나 실은 어느 곳이든 밑바닥 삶이 있는 법인데,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이해하는 먼 이국의 도시는, 그런 현실을 사장한채, 보고 싶은 면만 윤색한 도시일 뿐이다.  

허긴 여행이란, 동경이고 동경이란 낭만이 아닐까? 이 곳의 삶이 고달프면 더욱, 저 곳의 삶은 멋지리라는 기대, 아니 멋져야 한다는 바람. 

우리 동네를 돌면서, 새삼 우리 동네가 생각만큼 후지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살랑이는 나무들이 맑은 공기가, 어라 여기도 이런 게 있었네 하는 새삼스런, 발견이라고나 할까.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읽고 레마르크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책이 다시 번역되어 나왔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샀다. 

언제 읽을 지 모르지만, 그 책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 마고였나? 개선문의 그 여자는 마두 였던가(조앵 마두였나보다, 남자는 라비크였던 것 같다)....어찌 되었을까...줄거리가 생각나지 않네...이런....다시 읽어 보아야 겠다..아니다 그 책을 언니네 집에 두고 온 기억이 난다. 오페라의 유령도 함께 두고 왔지..그 5월의 어느날, 오스트리아는 눈부시고 환했지. 

언니네 아들은 어렸고, 귀여웠지, 사랑스러웠지.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런 꼬마를 본 적이 없었지. 

그 꼬마는 이제 다 자라, 어른이 다되었지. 그 때 좀더 사랑해 주었어야 하는데. 

왜이리 후회가 되는지. 사랑할때 옴팡 사랑해 주어야 하는데, 더욱 아끼고 귀여워 해 주었어야 하는데, 

비엔나의 조용한 점심때, 전차와 트람바이, 바나나, 카페들. 다시 언니와 그 카페에 가고 싶다.언니와 마주앉아 거품이 풍성한 달콤한 라떼커피를 마시고 싶다. 

언니...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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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0-05-25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나는 지금보다는 긴글을 쓸 여유가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