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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가끔 사건들은 맥락없이 앞뒤로 엮이기도 한다. 꿈에 흰머리 염색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느닷없이 생전 보도 못한 대학 친구의 열살배기 아들이, 자기 엄마가 유괴되었단다.
동생도 머리카락을 뒤집어서 흰머리칼을 보여준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이 꿈들은 연이어서 꾼 것인지, 밤을 건너뛰어 하루의 상간을 두고 꾼 것인지, 그것마저 헷갈린다. 수영장에서 문득, 나는 인간인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어젯밤에는 세계명작산책으로 미국의 주홍글자를 들었다.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맨 처음 장면이 무엇으로 시작하는 지도 기억에 없는데, 성우는 제법 진지하게 소설 첫장면을 연기한다. 내일은, 식료품을 좀 사야지 하는데, 갑자기 드는 생각 '모두가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좀 절약해야겠다, 먹을 것을 좀 줄여야 하지 않을까?' 가난한 사람은 이제 더이상 절약할 것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 잠을 청하지만, 나도 집을 사야하는 것이 아닐까..이 낡은 이층집 이 조그만 방에 나의 물건들이 다 있구나, 이 정도면, 가난하다고 할 수 있을까?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 연휴동안 책을 네 권 읽었다. 유일하게 하는 일이, 먹고, 잠자고, 읽고. 이것이 인간인가?
2009년 1월, 가슴이 떨렸다. 아무 계획없이, 새해가 밝았다는 사실과, 어제와 오늘이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과, 무기력과 무능이 결국 같은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언론노조의 파업현장에서, 얼굴도 예쁜 아나운서들이 생각까지 똑바르다는 사실과, 연휴동안 거의 뉴스를 듣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래서,다시 묻는다, 이것이 인간인가?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는 제목이 탄생하기까지의 에피소드가 이 책의 역자의 글에 소개되어 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볼 때, 그 문제의 '포스트맨'은 언제 등장할까 고대하지 않았을까?
물론 나는 영화를 먼저 보았다. 제시카 랭과 잭 니콜슨이 연기한 것이었다. 오래 전 일이다. 너무 선명한 이야기 줄거리 때문인지, 이것의 원작이 있다는 생각을 잘 못했던 것 같다. 이 말은, 그만큼 영화적 플롯이란 말이겠지.
솔직히 소설을 읽고 나면,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기분이 나쁘다고 해야 하나? 설명하기 힘든 어떤 기분의 상태에 빠진다. 이 두 남녀를 어떻게 봐야 하나?
사랑 때문에 살인을 하였다고 할 수 있나? 여자로 말할 것 같으면, 간이식당 여종업원 신세를 면할 가망성 없는 자신을 구해준 금줄시계찬 그 남편이, 그냥 견딜 수 없다고 하였다. 부랑자인 남자는, 그 여자가 원해서, 남편을 죽이기로 하였다. 사랑 때문이었을까?
그 지긋지긋한 사랑 때문에, 포도주병으로 머리를 으깨 죽여버렸는가?
내가 기분이 나빴던 것은, 이런 두 남녀의 살인행각에서조차, 주인공들의 거짓이 탄로날까봐 조마조마했다는 사실이었을까? 동정할 수 없는 살인에, 나도 모르게 응원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을까?
이 구제할 길 없는, 동정의 여지 없는 두 남녀는, 포스트맨과 단 한번도 조우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원하던 어떤 것을, 얻는 바로 그 순간, 원하던 것을 잃는다, 만약 함께 그냥 그대로 사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말이다.
사는 것은, 마치 어젯밤 꿈속에서 이미 오래전 연락이 끊긴 친구의 아들을 본 것처럼, 느닷없이, 닥쳐오고, 사라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