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도시 이야기를 해야겠다.

101개의 섬과 365개의 다리에 의해 묶여진 물위의 도시-북구의 베니스로 불리는 그곳, 쭉뻗은 대로와 아름다운 운하로 이어진 인공의 도시, 세 번이나 이름이 바뀌어 불린 우여곡절의 도시, 6월이면 밤이 달아나 버리는 백야의 도시 그리고 우리에게는 현재보다 과거로 더 알려진 도시!

그 도시 뻬쩨르부르그는 지금부터 약 300년 전인 1700년 경 표트르대제가 스웨덴 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습지에 건설한 도시다. 이후 로마노프 왕조가 혁명으로 막을 내리기까지 근 200여년 간 러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러시아는 이 도시를 통해 서구와 의사소통하고 정신의 꽃을 피웠으며 혁명의 꿈을 완성했다.

도시가 게르만의 자유결사체 Genossenschaften에 기원하고 이는 ‘대등한 지위를 가진 개인들간의 자유로운 결사체'’를 의미한다면 뻬쩨르부르그는 의식적이고 인공적인 도시다. 그렇다고 이 도시가 분업과 교역의 발달로 인구가 밀집하고 새로운 규율이 형성되어 자연스럽게 생겨난 다른 도시들에 비해서 얘깃거리가 덜하다거나 도시 생활이 덜 활기있다고 상상해선 안된다. 이 도시도 다른 모든 도시들이 그러했듯이 스스로 숨을 쉬며 욕망하고 그 속의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진화했다. 러시아 속의 유럽, 도스토옙스키가 ‘세상에서 가장 인위적이고 추상적인 도시’라고 했던 곳, 물리적으로는 우리로부터 5000여km 이상 떨어진 도시-그래서 너무 멀고 아득한 도시, 이제 그 도시 뻬쩨르부르그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자. 단, 지금보다 100여 년 전에 살았으므로 그만큼 더 행복에 가까웠을 지도 모를 사람들에게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고골은 뻬쩨르부르그 태생은 아니다. 그는 19세 되던 때에 관리가 되기 위해 이 도시로 왔다. 이후 뻬쩨르부르그는 그가 43세에 정신의 일탈로 죽기까지 그의 작품의 배경이자 주인공이 된다. 그가 본 당시의 수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책의 집'이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을까? 18세기 후반에 건설된 시내 최대의 상가 건물 고스찌느이 드보르와 20세기 초에 세워진 시내 최고의 식료품 가게 엘리세예프 상점은 고골의 시대에는 아직 없었을 것이다. 이 식료품점 바로 옆 폰탄카강을 가로지르는 아니치코프 다리의 네 모서리에는 1841년에 시작해서 그가 모스크바에서 죽어가고 있던 1850년 대 거의 10년에 걸쳐 조각가 클로트가 완성한, 젊은 청년이 말을 길들이는 생명력 넘치는 조각품이 서 있다. 아무래도 고골은 이런 도시의 외형적 모습에는 관심이 없었던 듯 싶다. 오히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동감하고 숨을 쉬는 도시의 내면에 눈길을 주고 있다.




승진 청탁을 하기 위해 상경한 장교가 어느날 아침 문득 잠을 깨고 거울을 보았을 때 얼굴의 코가 사라져버렸다. 귀나 다리나 팔이 아니라 하필 얼굴의 정중앙에 위치한 코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래가지고는 출세를 하기는커녕 낮에 신문에서 본 아름다운 여성과도 만날 수 없고 점찍어 둔 고관부인의 딸과도 만날 수 없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그의 코가 자신보다 높은 5등 문관의 복장을 하고 성당이며 연회에 참석하는 것이 아닌가.

9등관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평생 관청에서 문서를 정서하는 일만 하는 하급관리였다. 그는 그저 사람들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기만 하면 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친구도 없었고 다른 일을 하고자 하는 욕심도 특별히 없었다. 다만, 뻬쩨르부르그 최대의 적이자 위협적인 유일한 존재인 추위에 맞서기 위해 외투를 장만하기만 하면 되었다. 최극빈 생활을 통해 틈틈이 모아 둔 돈과 월급을 가불하고 재봉사에게 사정하여 그럴듯한 외투를 장만한 날 난생처음으로 파티에 초대까지 받게 된다.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길에 등불이 휘황찬란한 상점 진열장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모르는 여자의 뒤를 이유없이 따라가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느닷없이 나타난 강도들이 외투를 빼앗고 그 후 그는 병에 걸려 죽어 버린다.

또 한 명의 하급 관리 뽀쁘리친은 비록 말단직이긴 하지만 자신이 귀족 출신이며 일반 장사치나 마부들과는 다르다고 강하게 인식하다 급기야 자신을 스페인 왕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연필을 깎아주기 위해 들르는 국장 집 딸과 사회적 신분 상승을 꿈꾸지만별 볼일이 없음을 그 집의 애완견이 쓴 편지를 훔쳐보면서 알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조금씩 광인이 되어간다.

황당하고 비현실적이 일이 벌어지고 신분상승을 꿈꾸지만 광인이 되어가는 곳, 가난한 하급관리가 살기에는 너무나 추운 곳이 바로 고골의 눈에 비친 수도의 진면목이었던 것일까?

이 뻬쩨르부르그의 한 쪽 바실리에프섬에 살고 있는 가난한 화가 차르뜨코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골의 눈에 비친 수도가 어떤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차르뜨꼬프는 그런대로 재능있고 선량한 화가였지만 우연히 발견한 초상화에서 떨어진 금화가 그의 인생을 바꾼다. 이 금화를 밑천으로 신문에 광고를 싣고 집을 옮기고 상류사회 흉내를 내면서 세속적인 명예와 부를 좇아 자신의 재능과 청춘을 팔아버린다. 한편 소심하고 몽상적인 화가 삐스까료프는 이상적인 여인인 줄 알고 뒤쫓아간 여인이 술집 여자인 것으로 알고 상심하다 자살한다. 세속적이고 허영심 많은 그의 친구 삐고로프가 금발여인의 집까지 따라가 겪은 해프닝과는 대조적이다.

이 모든 것이 수도 뻬쩨르부르그에서 일어난 일이다. 삶의 천태만상을 보여주는 전람회장이기도 한 수도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라고 고골은 말한다. 그러나 또 그는, 이 수도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믿지 마라, 모든 것이 기만이고 꿈이며 겉보기와는 다르다는 충고를 잊지 않는다.




모든 도시는 서로 닮았다. 이것은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건축물이나 도시를 감싸고 있는 풍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과 물질이 동질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시대까지도 초월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사람들을 찬찬히 뜯어보라. 고골의 시대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는가. 역사는 길어지고 우리를 담아내는 거리의 풍경은 바뀌었지만 삶은 반복되고 변한 것은 여전히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