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세상의 아름다움 태학산문선 105
정약용 지음, 박무영 옮김 / 태학사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프로코피에프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들으면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한의 공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주 없이 첼로 독주로 시작되는 첫 도입부는 처음부터 감정의 긴장을 극대화하여 마치 슬픔의 극한까지 이르는 듯하다가 지극히 정서적인 멜로디로 마음의 어떤 곳을 사정없이 건드린다. 그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일종의 감정적 액스터시다.

세 차례나 개작의 손길을 거친 이 쉽지 않은 첼로 소나타 곡은 음악이 어떤 의미에서든 마음의 영역임을 여지없이 증명해 준다. 왜 어떤 특별한 음악은 이토록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인가?

휴가 때면 으레 몇가지를 마음속에 품는다. 아마 내게는 이 물음이 화두가 된 듯하다. 시작은 마음으로부터였을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궁리출판사)’라는 궁금증이 이 오리무중 마음의 영역에서 점차 대뇌 속 논리 영역으로 공간 이동을 한 결과, 과학과 음악이라는 상이한 분야를 넘나들며 음악이라는 난해한 세계를 설명하고 있는 책에 멈춘다. 호기롭게 과학으로 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뜻을 품으며 나의 이번 휴가를 셈한다. 처음 시작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한 100여 쪽은 제법 재미도 쏠쏠해서 해부학적인 용어까지 꼼꼼히 챙겨가며 흐름을 잘 따라간 것 같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족이 500쪽은 넘을 전체 분량에서 200여 쪽을 넘기면서부터 개념이 흔들리고 혼란스럽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더운 여름 기온이 주는 산만함과 휴가라는 정신적 이완이 집중성을 떨어뜨렸을 것임에 틀림없지만 내 마음의 문제는 결국 그 해결을 무한정 미룰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만난 것이 이 책이다.

이전에 나는 정약용을 읽은 적이 없다. 그가 조선 정조 때의 개혁가요 경세가며 실학자였고 긴 유배기간 동안 목민심서며 경세유표, 마과회통 등의 책을 저술하였다는 정도의 성급하게 소화한 교과서적 지식이 전부라면 전부였다. 게다가 옛 어른의 글들이란 도무지 제대로 풀어쓴 것을 만난 적이 없어서인지 대개는 처음에는 제법 뜻을 좇아가다가도 끝까지 간 적이 드물게 따분하거나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고약한 선입견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 ‘뜬 세상의 아름다움’은 일단 읽기가 쉽고 정갈하다. 옮긴이 박무영의 공이 크다 하겠다. 책의 처음부터 정약용의 인간적 면모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옮긴이의 선언대로 경세가요 정치개혁가 이전에 그가 어떤 면모의 인간이었는지에 글 전체가 집중되어 있다. 지아비로서 혹은 어버이로서 그리고 아우로서, 친구로서 평범한 사람이었으되 평범을 뛰어넘는 위대한 범부로서의 그를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사람다운 방식으로 ‘성화’하려고 했던 사람이라고 단정할 만큼 정약용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폐족의 자식으로서 장차 입신할 기회를 잃어버린 두아들에게 이미 그들이 진사가 되었고 급제도 하였다고 여긴다며 오직 독서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일이며 ‘폐족의 처지에 잘 대처’할 수 있는 길임을 당부하는 아비의 심정!  ‘남의 아비되어 이처럼 누를 끼치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 쉴 새 없이 저술에 전념한다는 고백에서는 어버이로서 그의 안타까움이 애처로울 지경이다. 그의 진심이 전해진 것일까? 그의 큰아들은 당대의 이름있는 시인이요, 둘째 아들은 ‘농가월령가’의 저자로 아버지의 뜻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정약용은 소나기 쏟아지는 날 세검정의 폭포수 구경 맛을 아는 풍류객이기도 하다. 촛불에 비친 국화 그림자를 감상하는 호사가이며 뜰에 죽란 울타리를 갖춘 화단을 만들어 친구들과 갖가지 꽃나무를 완상할 만큼 여유가 있었던 사람이다. 형인 약전에게 건강을 염려하며 개 잡는 방법에서 양념하는 법까지 ‘개고기 요리법’을 상세히 적어보낸 서간에서는 툭하고 웃음이 나온다. 부인이 유배지로 보낸 다섯폭 치마에 하피첩이라 하여 서화를 남겨 답할 만큼 순정한 남편이기도 했던 그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것도 회혼시였다.




육십년 세월, 눈 깜빡할 사이 날아갔으니/복사꽃 무성한 봄빛은 신혼 때 같구려/살아 이별, 죽어 이별에 사람이 늙지만/.../옛날의 하피첩은 먹 흔적이 아직 남았소/.../




사람의 가장 내밀한 정서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이 예순 해를 넘기면서 더욱 견실한 믿음과 고마움으로 그들의 자손에게 다시 순환되는 듯한 느낌은 나만의 유별난 감상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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