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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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윤석열 탄핵과 파면을 위한 밤들에 조금씩 읽었다. 그러니까 넉달이 걸린 셈이다. 마침내, 파면 후 일주일만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을 덮었으나 이불 속에서도 에이해브의 마지막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결국 죽음도 그 집념인지 복수심인지를 단념하게 만들 수 없었다는 것인지..도대체 그 무지막지한 흰고래는 어떻게 생겨먹었길래..하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뒤척였다.
무엇보다 내가 거듭거듭 질문하게 되는 ‘에이해브, 당신은 왜 왜 왜?‘

그 망망대해, 하늘과 바다의 경계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곳에서 거대한 고래와 벌이는 사흘간의 쫓고 쫓기는 장면은 숨이 막힐 정도다.

에이해브는 그 선택밖에 없었을까? 그것을 도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집념? 복수심? 용기?
그러나 이 책은 오로지 에이해브라는 기이한 존재와 거대한 흰고래의 대결로만 점철되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나, 이 책은 거의 마지막 몇장을 제외하면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흰고래는 등장하지 않는다. 에이해브 역시 처음 그의 풍모에 대한 외적 인상같은 주인공의 서술이 있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등장하기까지는 꽤 많은 장을 넘기고 나서다.
그럼에도 이 두 주인공의 대결은 전체에 대한 인상으로 각인될 만큼 압도적이다.


허먼 멜빌은 그동안 내가 짐작하던 것보다 훨씬 유머있고, 익살스러운 사람이 아닐까 싶은 대목도 여러번 만났다.
향유고래의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하나하나 마치 존재의 끝에까지 이르려는 듯, 이즈마엘이 늘어놓는 만물박사급 설명도 이 책이 혹시 향유고래에 대한 백과사전인가 싶을 정도이었다.

그나저나, 모조리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의 복수심, 그것 외엔 없는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임에도 이기려고 드는 인간의 무모함?
어떤 의미에서는 용기?

백경과 피쿼드호, 그 안의 선원들이 일종의 시대적 알레고리라는 설명도 있지만, 나는 그저 인간과 거대한 흰고래의 서사에 압도된 나머지 그 어떤 다른 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아마도 당분간은 0

내가 읽은 것은 김석희의 모비딕이다. 허먼 멜빌은 제대로된(그게 무엇일까마는) 글쓰기교육을 배운 바 없어 영미권에서도 문체가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그럼에도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번역가 김석희의 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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