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선택을 마저 읽었다.
소피의 선택은 일종의 관용구가 되었다고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가 비극적인 상황을 가리킬 때.
그렇다. 소피는 선택을 하였으나, 결과는 비극으로 끝났다. 이렇게 했더라면, 저렇게 했더라면, 그런 가정법조차 허용하지 않은 비극!
나는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혼란 속에 있다.
누군가의 생과 사가 자신의 손가락 방향에 달렸다고 한다면, 그 손가락을 견딜 수 있을까?
12살 어린 소녀는, 시체를 태우면서 나온 열로 겨울 수영장 물을 데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아이는 어떻게 자랐을까?
수용소 책임자의 딸 침실에 놓여져 있던 지멘스 라디오. 지멘스는 유서 깊구나가 아니라 미처 이르지 못할 그 어떤 다른 깨달음.
한때 아름답고 잘 다듬은 분홍색 손톱을 가졌으며 잘생긴 외모와 기품있는 매너로 소피를 홀렸던 실업가, 그는 더 많은 유대인 노동자들이 필요하다며 수용소 관리책임자를 설득한다.
사실 아무 것도 쓸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책을 아니 읽었더라면 나았을까 싶기도 하다.
분노나 슬픔도 아니고, 그러나 그것들이 없지도 않은 뚜렷하게 하나로 형상화되지 못하는 것들이 마음을 떠돈다.
인간은 어디까지 악할 수 있는지, 또한 인간은 어느 정도로 견딜 수 있는지, 인간의 삶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지.
분명한 것은, 매 시기마다 인간은 악했고, 또 악할 것이다.
또한 자명한 것은, 인간은, 여전히 선하고 또 선할 것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