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한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다.

두고두고 조금씩 읽었다.

내용 자체가 굉장한 사건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거나 극적이고도 드라마틱한 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나만의 느낌이다.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사전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우리 영화 "말모이"도 떠올린다. 상황이 다르지만, 사전편찬이란 것이 오랜 시간과 노력, 사회적 관심, 의식적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들의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


물론 그 가운데는 항상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그 과업의 의미를 꿰뚫어 볼 줄 아는 선각자가 있기 마련이다. 옥스포드 영어 대사전의 경우는 누구일까? '말모이' 즉, 우리말대사전에서는 누구였을까?

사전에 실릴 수 있는 어휘는 과연 누가 선택하는가? 사전에 실려야만 하는 말은 또 누가 정하는가?

그렇다면, 사전에 실릴 수 없는 말은 무엇일까? 


최근 페미니스트에 대한 다양한 책들이 홍수다! 그렇다.홍수라고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 또한 나의 느낌이다. 

묘하게도 손이 안 간다. 나는 이미 구세대이고 구시대적 관습과 사고에서 벗어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고통스럽다. 어떤 변화라도 변화는 에너지가 많이 들고, 그래서 일단은 회피하고픈 본능이 먼저인 듯하다.

이성적으로 또는 학습을 통해 나는 여성은 유사이래 제대접을 받은 적이 없고, 지금의 현실도 그리 녹록치 않음을, 안다.

안다는 것과 몸에 체화된 어떤 것은 다르다. 그래서 나는 투쟁하였는가?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진실이다. 노력하지 못했고, 안했고, 안주했다. 나는 비교적 성차별이 심하지 않은 직종에 종사하고, 구성원들조차 이성적으로는 차별을 범죄시하고 있는 조직이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역시 우리는 관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여전히 여성 대표보다 남성 대표가 다수다.

여성은 일이 끝나면 제2의 직장에서 일을 또 해야 한다.

그렇다면, 비혼인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

밤에 무서워 항상 문을 몇 번씩 확인한다. 밤늦은 시각에 택시타는 것은 거의 숨쉴 수 없을 만큼의 공포를 준다. 야근하는 날은 초조하다.

대외 회의를 가기 위해 일부러 힌머리카락이 보이게 해야 한다. 그나마 나이에라도 기대지 않으면, 좀 무시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일상들이 모여 삶을 이루는 것이라면, 이건 사소함을 넘어선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책은 옥스퍼드 영한 사전 첫권이 나오던 시대부터 마지막 권이 나온 후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주인공은, 허구적 인물이긴 하지만 소설 속의 사전편찬에 관여하는 다수가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사전에서 지워진 말들을 찾고 그 말들을 모아 또다른 사전을 엮어 낸 주인공을 따라오다 보면, 굽이굽이 역사를 함께 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전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단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사전이란 것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구나..그리고 그 사전 속 어휘들은,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구나..그 누군가는 사실상 세상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이구나.. 그 칼자루를 쥔 자는, 누구인가...그리고 누구여야 하는가...


어제밤에 마지막쪽을 덮었고, 복기하면서, 감상을 몇자라도 남겨둔다, 올해 나의 결심에 충실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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