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중반에 이른 학자인 남편은 일기를 쓴다. 그는 일기에 아내를 상대로 하여 꿈꾸는 성적 판타지에 대해 남긴다. 열 살 넘게 어린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욕망과 은밀한 요구를 담는다. 남편은 일부러 아내를 도발해 일기장을 감춰둔 곳의 열쇠를 슬쩍 흘려두기도 한다.

아내도 일기를 쓴다. 남편이 기록한 사건과 다른 관점으로 자기 생각을 적는다. 남편의 괴이한 취향에 대해서도 평한다.

부부는 일기로 심리전을 벌인다. 상대방의 일기를 훔쳐 읽은 척, 안 읽은 척하며.

이탈리아 에로영화의 거장 틴토 브라스 감독이 이 소설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생존시대와 거주국가를 초월한 두 ‘배운 변태‘(?)의 취향공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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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북에서 내려온 간첩 김기영은 남한의 대학교에 입학해서 학생운동에도 참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며 살다 신분을 숨긴 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작전명령이 오지 않고 그는 윗선을 잊고 지낸다. 그러던 그에게 20년 만에 지령이 떨어진다. 24시간 안에 북으로 귀환하라! 이 소설은 잊혀진 남파 간첩이 겪는 그 당황스런 하루를 그린 이야기다.

빛의 제국이 출간된 2016년 여름, 나는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모든 짐을 정리해 부산 본가로 내려갔다. 얼마 남지 않은 자유를 만끽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소설을 부산대 앞 서점 북리브로에서 하루종일 붙잡고 서서 읽었다. 중간에 점심 먹으러 잠깐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 읽었던 것 같다. 그 무모함과 단순 무식함이란...사서 편한 마음으로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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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어른입네 하며 더러운 쌍판 내밀던 양아치들을 시원하게 밟아주신 영미 누님.

난수표나 미해독 문자 같은 현대시들을 읽을 때면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그와 달리 최영미 시인의 작품은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힌다. 그냥 ‘꽂혔다‘.

기성출판사들이 출간을 꺼려 최영미 시인이 직접 출판사를 세워 펴낸 시집이다. 부디 흥하길!

˝목숨을 걸고 뭘 하진 않았어요
(왜 그래야지요?)
서른다섯이 지나
제 계산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답니다!˝
- 밥을 지으며

˝장미넝쿨이 올라온 담벼락에 기대어
소나기 같은 키스를 퍼붓던 너.
...
침대가 작다고 투덜대는 내게 너는 속삭였지

사랑한다면 칼날 위에서도 잘 수 있어˝
- 마지막 여름 장미

˝싸움이 시작되었으니
밥부터 먹어야겠다.˝
- 독이 묻은 종이

˝보석처럼 빛나지는 않지만,
너희들은 서로의 가슴에 별이 되거라˝
- 여성의 이름으로

˝인생은 낙원이야.
싫은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 낙원.˝
- 낙원

˝길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다만 이 햇살 아래
오래 서 있고 싶다˝
- 1월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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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일곱 살 노인이 며느리 사쓰코에게 사랑받고 싶어한다. 그녀가 자신을 지배하길 원하며 그 지배를 통해 쾌감을 얻고자 한다. 다소 쇼킹한 소재. 아들의 정혼대상(줄리엣 비노쉬)과 예비 시아버지(제레미 아이언스) 사이의 사랑을 다룬 영화 ‘데미지‘와 묘하게 겹친다. 이 소설이 그 영화보다 30년 앞서 나왔다.

부유하나 병원과 약에 잔뜩 신세를 진 채 말년을 보내는 노인은 일기를 쓴다. 일기에 자신의 일상 말고도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남긴다. 바로 며느리를 향한 심정. 급전이 필요하다는 딸의 부탁은 매몰차게 거절하지만 며느리에게는 300만 엔짜리 캐츠아이 반지를 덜컥 사주기도...

˝어머니의 아들인 내가 손자며느리의 매력에 빠져 그녀에게 페팅을 허락받는 대가로 300만 엔을 투자하여 묘안석을 사 주는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는 아마 놀라서 기절했을 것이다.˝

˝- 가끔 기모노를 입는 것도 나쁘지 않군. 귀고리나 목걸이를 하지 않은 게 세련됐구나.
- 아버님 꽤 센스 있네. ˝

˝내게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있다면 사쓰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쓰코의 입상 아래 묻히는 것이 내 소원이다.˝

˝- 자네 발바닥을 뜨게 해줘. 그렇게 해서 이 백당지 색지 위에 주묵으로 발바닥 탁본을 뜰 거야.
- 그걸 뭐에 쓰게?
- 그 탁본을 바탕으로 사쓰짱 발을 본뜬 불족석을 만들거야. 내가 죽으면 뼈를 그 돌 아래 묻을 거야. 그게 진정 대왕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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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 시 ‘소년‘에서

윤동주.
전태일에 앞서 왔다가 떠나간 아름다운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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