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야 바로 쓴다 - 증보판
한효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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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상태가 아쉬워서 그렇지, 내용은 진짜 알차다. 한글로 글 쓰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하는 책. 이 책에 수록된 연습 문제를 꼼꼼히 풀어서 자기 것으로 만들면 글 쓰기 강사도 가능하다. 글 써서 밥 벌어 먹고 사는 나도 숱하게 틀렸다. 부끄러운 만큼 글 솜씨가 늘었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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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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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에 세 가지를 만족시켜서 구매. 1) 제목. 이탈리아 구두. 소설 제목으로 백점 아닌가. 이탈리아 구두가 대체 뭘까. 2) 번역이 아니라면 읽을 수 없는 언어. 내가 모를 세계. 3) ‘냉기‘로 시작되는 첫문장. 소설은 추워야 제맛. 따뜻하고 편안한 사람이야기를 뭣하러 소설까지 읽어가며 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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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 어느 문외한의 뉴욕 현대 예술계 잠입 취재기
비앙카 보스커 지음, 오윤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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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재밌겠다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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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집을 매일 읽고 있다.

이제 고지가 보인다.


오늘은 <깊은 오한>을 읽었다. 

Enduring Chill


감내해야 하는 오한/추위


플래너리 오코너의 <깊은 오한>을 읽는 일은 인물과 함께 오한을 느끼는 경험이었다.

스물 다섯 살의 애스버리는 '아파 보이는' 청년이다.


그는 어머니가 자기 얼굴에서 죽음을 본 것이 기뻤다.

어머니는 예순의 나이에 비로소 현실 세계를 볼 것이고,

그 일로 어머니가 죽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머니의 성장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479)


그는 적 달 전부터 병세를 느꼈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서점에 자꾸 결근을 하면서 해고된다. 무일푼이 된 애스버리는 어머니의 집이 있는 텀버보로로 온다.


애스버리의 경우는 똑똑한 데다 예술가 기질까지 있어서 문제였다. (중략)

부인이 볼 때 사람은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능력이 줄어 들었다.

483)


애스버리의 어머니는 말하자면 '속물'인 것이다.

정신적 역량에는 추호도 관심 없고 그저 아들이 '땅에 발을 굳건히 디딘 사람'이 되어주길 원한다. 그 집에는 어머니와 그리 다르지 않으며 지역 학교 교장인 누나 메리가 있다.


애스버리가 느끼는 ‘깊은 오한’은 단순한 의학적 증상이나 일시적 몸살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홀로 계몽된 자가 맞닥뜨리는 숙명의 추위이며,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자에게 끝내 내려앉는 정화의 공포다.


애스버리는 집안에 고용된 흑인 하인들인 랜들과 모건에게 담배 불을 직접 붙여주고 함께 담배를 나누어 피운다. 그 짧은 시간은 "흑인과 백인의 차이가 사라지는 드문 친교의 시간"이었고, 그는 그 경계가 사라진 지점에서 새 세상의 징후를 본다. 


애스버리는 착유장에서 막 짠 우유를 흑인들에게 건네준다.

그러나 검둥이들은 '사모님'이 마시지 못하게 한다며 우유를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다. 


홀로 계몽된 자의 눈으로 본 세계는 죽음처럼 차갑다. 무지한 다수는 바뀌지 않고, 바뀔 의지도 없다. 애스버러는 '위대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신부에게서 결정적 좌절을 체험한다. 


자신이 홀로 떠안은 지식과 예술의 무게는 병이 되어 그에게 오한을 내린다.

그의 병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내적 고통이자, 

차라리 자살로 완수해야 할 책무처럼 여겨진다.


어머니가 부른 의사는 그의 병이 별것 아니라고 단정한다. 소도 흔히 치르는 증상일 뿐이라고 안도하며 흥분한다. 그 옆에서 애스버리는 홀로 절망한다. 자살할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계몽된 자로서 죽음을 통해 완수할 의지마저 박탈 당한 그는, 이제 살아남아야 하는 자의 숙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 지점에서 오한은 깊어진다.


그때 오한이 시작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주 특이한 오한이었다.

너무 가벼워서 깊고 차가운 바다를 건너가는 따뜻한 잔물결 같았다.

숨이 짧아졌다.

(중략)


애스버리는 얼굴이 하얘졌고, 마지막 환상이 부서졌다.

(중략)


그는 남은 평생동안 자신이 허약해졌지만 질긴 몸으로

정화의 공포와 마주하고 살게 될 것을 알았다.

마지막 소용없는 항변이 가녀린 비명으로 새어 나왔다.

하지만 성령은 불 대신 얼음을 입고 잔혹하게 내려오고 또 내려왔다.


(513)


은총은 어떤 구원의 형식이라기보다는, 

계몽된 자가 살아남아야만 하는 잔혹한 정화의 힘으로 내려온다.


이 정도면 '저주'인 셈이다.

은총의 저주.


오코너의 소설은 결코 '은총'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이제껏 20편 정도 되는 오코너의 단편을 읽는 동안, 실로 다양한 종류의 은총을 목격했다.


작게는 다르나 크게는 같은 은총.


오코너의 은총은 한결같이 낯설고 불편한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부적응자에게서 죽음을 맞으며 맞이하는 은총,

물살 센 강으로 기약없이 뛰어들며 아이가 맞이하는 은총,

그렇게도 성가셔 하던 소에게 부딪혀 죽어가며 부인이 맞이하는 은총.


이번에는 몹시도 차가운 은총이다. 

오한으로, 깊은 오한으로 내려온 은총이다.


그 차가운 은총 앞에 홀로 선 에스버리는 마지막 방어선을 허물고, 

삶의 전면에서 무기력하게 두 팔을 벌리고 그것을 맞아 들인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남은 생애 동안 이 오한을 견디는 일 뿐이다.


<깊은 오한>은 홀로 계몽된 자의 '저주같은' 숙명을 다룬 비극이다.


도래할 기미가 전혀 없는 '새 것'을 기다리는 지식인/예술가의 참담한 고독이다. 

무지한 다수 속에서 홀로 눈뜬 자가 맞닥뜨리는 고립과 절망이다. 


에스버리가 ‘공적 세계’ 속에서 계몽된 자로 존속될 수 없고, 

오히려 고립 속에서 자신을 소진한다는 차원에서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과 얼핏 이어진다.















에스버리에겐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의 곁에 끝내 남는 것은 자신을 끝까지 따라다니는 오한이다. 


'깊은 오한'이란, 어쩌면 '계몽'이 끝내 도달하는 자리의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빛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냉기와 함께하는 삶일지도 모르겠다. 


에스버리는 이제 그 진실을 안다.

그래서 남은 생애는 바로 그 깨달음을, 혹은 그 계몽을, 

매 순간 추위처럼 견디는 일임을 예견한다. 


애스버리가 'Enduring Chil'을 감내하기로 하는지 어떤지는 소설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불 대신 얼음을 입고

잔혹하게 내려오고 또 내려온' 성령에 옅은 숨결이나마 의지할 수밖에. 


숨결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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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그만두기
린 섀프턴 지음, 최리외 옮김 / 위고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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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하기 위해 숱하게 노력했다. 안 됐다. 그래서 난 수영을 하지 못한다. 수영하는 사람이 젤로 부럽다. 이런 책을 사게 된다. 나 같은 사람 또 있구나, 싶어서. 수영 그만두기. 나는 수영이 ‘삶‘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맘대로 안 되는 것들의 가장 대표적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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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식 2025-09-03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현진 작가의 단편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의 수영강습에서 호흡, 둥둥뜨기, 동작에 애를 먹는 희주가 생각나네요. ㅎㅎ

2025-09-03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