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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물속에 산다 - 발달장애로 살아가는 일의 감각적 탐구
요코미치 마코토 지음, 전화윤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3월
평점 :
이 책을 읽기 위해 펼쳤다.
그리고 대번에 리뷰를 쓰려고 마음먹게 되었다.
대번에, 1장만 보고 쓴다.
이런 '1장'은 본 적이 없다.
목차 바로 뒤에 붙어 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1장'들은
대개, 이렇지 않다.
이런 식으로 '유예'하기 보다는 어서 빨리 말하려 한다.
1장을 보고 2장으로 기꺼이 넘어갈 의향을 비칠 즈음,
독자는 그 책을 도로 접어 카운터로 가져갈 것이다.
구매의 결심.
그걸 가능케 하는 게 '1장'의 사명이다.
이 책의 1장은 좀 다르다.
장의 제목이, '시처럼'이다.
난생 처음 접하는 방식의 '1장'을 보다가
든 생각.
'메타 1장'이란 단어가 있을까?
소설이 저 스스로 소설임을 알아보는 소설을 메타소설,이라 한다.
이 책의 '1장'은 저 스스로 '1장'임을 알아본다.
말인즉,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 책의 '1장'은 제 몸을 움직여 말한다.
말하자면, '책'이란 저 자신을 너무나 잘 아는 1장이다.
이 책의 1장이 아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마흔살에 자폐스펙트럼 장애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진단을 받고
평생 자신에 대해 가진 의문을 풀 열쇠를 마련한다.
나와 함께 일하는 일터의 동료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ASD와 ADHD를 동시에 갖고 있다.
저자처럼, 성인이 되어 진단을 받았다.
그는 성실하기 그지없지만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액면가로 이해한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조크'를 던졌다가 황망한 일을 겪기도 했다.
함께 일한 지 일년 여가 지났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비ASD', '비ADHD' 인간.
그는 나를 몹시 신기해한다.
어떻게 당신은 이 찬란한 형광등 불빛에 눈이 시리지 않느냐고.
어떻게 당신은 이 소란스러운 소음에 귀가 아프지 않느냐고
어떻게 당신은 이 요란한 떠듦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느냐고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을 찾지 못한다.
그냥 그런 거라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서.
그는 그 불빛, 소음, 떠듦을 견디며 일한다.
그는 나보다 몇곱절은 일을 더 잘한다.
그런 그를, 나는 가끔 흐린 눈으로 응시하게 된다.
이 책의 내용에 관한 리뷰는 조금 미룰 생각이다.
이 책의 1장을 보면서('읽다'보다 '보다'가 어울린다)
그를 생각했다.
1장 속에 그가 산다.
이 책의 1장은, '움직이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동적 배치로 그걸 이루어냈다.
갈피마다 들인 푸른 빛은 물.
흰 빛의 제목들은 물거품.
움직이는 텍스트들은 말과 숨.
그리고 생각.
이책의 1장 속에 그가, 들어있다.
왜 그가 말하는 것처럼,
그가 외치는 것처럼,
들렸을까.
우리는 물속에 산다
발달장애로 살아가는 일의 감각적 탐구
나는 자주,
책을 찾으려 제목을 입력하는 검색창에
'글항아리'란 단어를 넣곤 한다.
이리도, 좋은 책을 잘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글이 하는 말을 듣고,
그 글이 원하는 옷을 입혀
가장 훤한 얼굴의 책을 만들 줄 아는 것 같아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랬다.
'시처럼'이란 장 제목을 달고 있는 '1장'은 '시처럼'이 아니라 '시'다.
ASD/ADHD 인간이
물속에서 물로 쓴 물의 시.
(눈)물속에서 (눈)물로 쓴 (눈)물의 시.
(이 책의 '1장'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전체가 '시'가 아니라.
아, 번역은 또 얼마나 좋은지.)
나는 내일,
아무래도 그와 물속에서 만날 것 샅다.
그가 사는 물속으로 나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이야말로 마침 우리가 살고 있는,
문제투성이의 근사한 삶을 보내는 장소.
(토베 얀손, '아빠 무민 바다에 가다',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