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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기다린 게 있었다.
벤의 마음.
벤은 단 한 번도 자기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아니, 못한다. 그저 행동(언어 포함)으로만 마음을 표출한다. 그런데 어디, 행동이란 게, 마음을 그대로 갖고 나오던가. 행동은 마음의 표출이 아니다. 마음은 몸밖으로 원래 모습 그대로 나오지 못한다. 마음은 심장 혹은 가슴의 레이어를 지나면서 바.뀐.다. 어떻게든 바뀐다. 무언가가 더해지거나 무언가가 빠지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 그 원형 그대로 밖으로 내보일 수 있는 사람, 손!
독자는 벤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독자 이전에, 벤의 엄마(해리엇)도 알지 못한다.
그 누구도 벤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원형 그대로.
벤은 눈을 들어 그녀(엄마)를 쳐다보았다. 그 애가 계산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계산? 저 차갑고 비인간적인 눈...저 앤 뭘 볼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는 것을 저 애도 본다고, 저 애도 인간 세상을 본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아마 그의 감각은 아주 다른 사실들과 데이타를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저 애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저 애는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불쌍한 벤" 그 애는 여전히 때때로 그렇게 말했다.
(148p)
이 대목에서 가슴이 울었다.
책의 종반이 가까워진 이제야 벤의 마음이 한 줄 나온다.
불쌍한 벤
벤이 자신의 마음을 밖으로 가져나온 말이다.
벤은 벤을 불쌍히 여긴다.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은...........가.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사람, 손.
(오해는 마시길. 나, 은근 자존감 높은 축에 드는 인간임...내 입으로 그렇다고 말함으로써, 방금, 자존감 낮음을 자력으로 인증)
나는 과연, 사람들이 보는 세상을 같이 보고 있긴 한가?
소설 속 해리엇의 '생각'은 나를 향한 생각 같다.
저 앤 뭘 볼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는 것을 저 애도 본다고, 저 애도 인간 세상을 본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아마 그의 감각은 아주 다른 사실들과 데이타를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148)
나의 감각도 벤처럼, 아주 다른 사실들과 데이타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글로 쓸 이야기가 한 시도 쉬지 않고 고개를 들이미는 거겠지, 싶다.
소설 속 인물에게서 나를 볼때, 특히 그 인물이 '불쌍할' 때, 그 소설은 내 삶 속으로 선뜻 들어선다. 이 소설이 그렇다. 더는 소설 안 같고 현실이 되는.
소설 속에서 그 누구도 벤의 마음을 알려하지 않는다.
모두가 벤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고 단정한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마음 같은 게 벤에게 있을 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 자기 마음 대로, 말이다.
빅토리아 풍의 정원 넓은 저택에서 크리스마스면 온 집안이 음식 냄새와 사람 냄새로 가득한, 그런 집을 꿈꾸었던 '보통사람'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다섯째 아이, 벤.
사람들은 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모두가 귀찮아하고 번거로워하고 두려워하고 기피할 뿐이다. 자신들과 좀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위 형제인 폴에게 손을 뻗친 벤을 보고 해리엇은 긴장하고 폴은 이층으로 도망간다. 층계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폴이 부엌 한쪽 구석에서 자기 목으로 뻗고 있는 벤의 손을 피하려고 발끝으로 서서 온몸을 늘이고 있는 것을 해리엇이 발견한다. (중략) 해리엇 생각에는 벤이 폴을 겁주려고 한 것 같았지만 폴은 광란의 상태였다. (147p)
사람들은 벤의 마음을 단정 짓기 바쁘다. 외관으로만. 행동으로만.
폴을 향해 뻗어진 벤의 손을 오로지 '폭력'으로만 읽는다.
"벤, 앉아.
마치 개에게 하듯이,
(148p)
사람들에게는 '경험'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이전 경험은 이후 경험의 근거가 되고 이유가 된다. 그 경험의 처음에는 벤의 마음이 원형 그대로 개입되었을까. 벤을 향한 첫경험의 근거는 어디서 왔는가.
그 시작이 어디였길래, 벤은 '개'가 되었는가.
벤은 스스로 불쌍한 존재가 되었는가.
벤을 스스로 불쌍한 벤을 만든 건 벤인가, 가족인가, 사람들인가.
부디, 스스로 불쌍한 이들은
어떤 경우든
그 불쌍함의 시작도 스스로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