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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칠 년 전 어느 아침, 부엌 식탁에서 사과를 깎는데 곁에서 커피를 내리던 헌수가 <러브 허츠>를 틀었다.
-어? 나 이거 어디서 들어봤는데.
219p
방금 전 로버트가 내게 "그런데 한국어로 '안녕'은 뭐라 그래?" 물었을 때 저날 헌수와의 대화가 떠오른 건 그 때문이었다.
222p
김애란 소설가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소설에는 '과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설 전체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과거'는 소설 속 인물에게 '현재'를 만든 근거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재에만 발 딛고 걷는 인물이라 해도
어디에서는 반드시 과거가 디뎌지게 마련이다.
모르긴 몰라도, 소설가에게 '과거'는 생명줄과 같다.
과거 없이 인물의 현재를 표현할 길이 없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요는, 그런 과거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내가 보기에 소설가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은 이런 정도다.
1) 작심하고 과거 속으로 뛰어든다.
-그때는 1973년 이른 봄이었다.
-5년 전, 여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2)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린다
-오렌지를 먹다 보니 오렌지를 좋아하던 친구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조용해졌다. 아버지가 아예 말을 잃던 날이 떠오른다.
이 둘에서 아마도 그닥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방식들의 공통점은 '현재'가 먼저란 것이다.
인물은 현재에 먼저 살고 있고, 현재에서 어떤 계기가 있어
현재와 연결된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뛰어들건, 그 지점을 떠올린다.
그런데 김애란 소설가의 방식을 보자.
확연하게, 과거가 먼저다.
칠년 전, 화자가 부엌에서 사과를 깎는데 헌수가 음악을 틀던 그때.
그때의 과거.
현재는 그 다음이다.
방금 전 로버트가 한국어로 '안녕'이 뭐라 묻고 화자는 과거의 그 지점을 떠올린다.
위에서 말한 2)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린다, 에 속한다.
그런데 다르다.
아니, 같은 지도 모른다.
엄연히 '떠오른다'란 말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르다.
아니, 다르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과거가 먼저 진술되었기 때문이다.
현재가 그 다음에 불려온다.
과거로부터 현재가 불려오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과거가 먼저 나왔기에 과거가 현재를 불러오는 것 같은.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렸는데도 말이다.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그래도 소설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
이 방식을 쓰는 과정의 김애란 소설가가 그려진다.
고민했을 것이다.
베테랑 소설가라고 해서 모든 게 'easy'하지 않다.
굳이 'easy'란 영어를 쓰는 이유가 있다.
'로버트'가 등장하다 보니 이 소설에 영어문장이 좀 나온다.
그리고
쉽다...는 한글 단어 한 마디로 'easy'를 단언할 수는 없어서다.
'easy'의 어원은 'aisier'.
여기에는 '쉽다'만 품어있지 않다.
'쉽다'가 되기 위해
활용하다/가능하게 하다
란 의미가 기반이 되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김애란 같은 베테랑 소설가라고 해서 모든 게 'easy'하지 않다.
소설의 많은 요소(요인)를 '활용'하는 게 무조건 편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요소가 품은 가능태를 백퍼센트 현실태로 펼쳐놓지는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활용을 더 어려워하고 고민하는 소설가야말로 베테랑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김애란 소설가는
이 단편소설의 서두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과거를 먼저 배치하고,
과거가 현재를 불러오는 식으로,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리는 기존의 방식을 쓰되
과거에서 현재가 당겨지는 식으로.
이게 철저한 전략 하에 이루어졌는지,
워낙 몸에 익어 자연스럽게(easy 하게)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독자로서 나는 완전히 설득되었다.
'easy'는 14세기 후반부터 '쉽게 양보되는, 설득하기 어렵지 않은'이란 뜻이 포함된다.
Meaning "readily yielding, not difficult of persuasion" is from 1610s.
https://www.etymonline.com/word/easy
이렇게 한글소설의 후기를 쓰다가 맥락없이 영어 단어의 어원을 들먹이는 데는
이유가 더 있다.
-우리말의 '안녕'에는 '반갑다'는 뜻과 '잘 가'라는 뜻 말고도 또다른 의미가 있어.
-어떤?
-'평안하시냐'는 혹은 '평안하시라'는 뜻.
254p
이 소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해서다.
아,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우리말의 '안녕'과 영어의 'ease'는 통한다.
'평안하다'는 의미에서.
로버트는 캐나다 퀘벡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자기 고향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223p
그 뒤로 소설가는 '더없이 편안하게' 과거로 걸어들어간다.
심지어 헌수와 커피를 마시던 그날 아침으로도 다시 간다.
그리고 드디어 현재다.
수업에 들어오며 로버트는 오늘도 밝은 얼굴로 인사했었다.
232p
그리고 결말에서 소설은 다시 소설 서두의 '러브 허츠' 지점으로 돌아간다.
헌수는 내게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다
엉뚱하게도 우리가 <러브 허츠>를 들은 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252p
앞서 화자가 오가던 현재와 과거의 기로들이
절묘하게 결말에서 조우한다.
서로가 서로를 'easy'하게 불러들인다.
이 소설의 엔딩은
로버트가 '안녕'이란 단어의 뜻을 묻던 과거로 잠시 돌아갔다가
화자가 '안녕'이란 말을 현재에서 쓰는 것으로 완성된다.
과거와 현재는 구분된다.
분명한 선을 그을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게 나뉘어진다.
김애란 소설가의 손끝에 과거와 현재는 어우러진다.
늘 앞서던 소설 속 현재가 사이좋게 과거에 자리를 내어준다.
어떤 게 과거고, 현재인지 헛갈리지 않는다.
무책임하게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이쪽에서 현재의 저쪽에서
과거의 현재가 어깨를 기대고
휘파람 한 줄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정겨움이 있다.
그 정겨움 속에서 독자는 소설에 완전히 설득되어
어느새 '안녕'해지고 만다.
적어도, '나'란 독자는 그랬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사족이다.
띠지에 "나는 김애란이 오랫동안 사회학자였고 이제야말로 유감없이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란 평론가의 말이 있다.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다.
다들 알 것이다.
좋은 뜻이다.
김애란이 그만큼 소설 속에서 우리 사회를 잘 그려낸다는,
사회를 잘 이해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사회학자가 쓰는 소설은....쩝.
나는 김애란이 어떤 '학자'도 되지 말고,
더구나 사회학자는 되지 말고,
오로지 '소설가로만'
더더더더 '소설가로만' 남아주길 간절히 기도할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