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주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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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의 <겨울정원>을 읽다가 가장 먼저 감지한 건 

이 소설엔 제스처가 별로 없다는 것-.

인물은 의미심장한 몸짓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소설의 시작은 '반복되는 일상'이다.
이건 특히 소설의 서두에서 잘 안 쓰는 건데...

봄과 여름 내 만개했던 것들이 모두 진 십일월부터,

하루 중 가장 볕이 따뜻한 오후 한 시간 동안 난 꼬박 텅 빈 정원을 바라본다.

14p)


지금이 언제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십일월부터 화자는 한 시간 동안 텅 빈 정원을 바라본다. 아무 것도 없는 정원을.

이렇게 되면 소설을 끌고 가기 힘들어진다.


너무 가라앉았다. 거기서 '동요'를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동요없는 소설을, 특히 요즘 독자들은 읽으려 들지 않는다.
물론, 소설은 읽히기 위한 게 목적은 아니지만.


이 소설은 '제스처'보다는 상태/상황 설명이 위주다.

작은 행동을 개별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그 행동들을 뭉뚱그려 진술한다.

가라앉은 분위기엔...어울린다.

분위기는 가라앉았는데, 사소한 움직임이 뚜렷하면 텍스처가 깨진다.

이 소설에서 삶은 그래서 '장면'으로 존재하기보다

점으로 찍히는 편이다.


어제의 점, 오늘의 점, 내일의 점이 이 소설에서는 서로 크게 다르지가 않다.

독자는 다르길 기대할텐데...읽으면서 걱정이다.

'겨울정원'의 서사는 도통 진행되지 않는다. 대신 반복된다. 

그런데 이 반복은 짐짓 독특하다.

무기력이나 서사적 실패의 결과로 읽히지 않는다.

아하, 오히려 그것이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형식일까.


말하자면, 이 소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게 하려 

소설가가 아주 많은 일을 한 소설 같다.

배제하기-.


금주 언니가 과메기가 있다면 화자(혜숙)을 집으로 초대하는 장면만 해도 그렇다.

과메기는 이 가라앉은 소설에서 동요를 일으킬 만한 ‘특별함’의 기표다. 

계절적이고, 누군가와 함께 나눠야 하며, 일상을 벗어나는 식탁을 암시한다. 


그러나 혜숙은 그 초대마저 오늘,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다른 날로 미룬다. 

그 결과 혜숙의 ‘오늘’에는 역시 별 사건이 추가되지 않는다. 

과메기는 가능성으로만 남고, 실현되지 않는다. 


치밀한 배제가 다시 일어난다.


'겨울정원'은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들을 이렇게 의도적으로 유예한다.

이 유예가 반복될수록 독자는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사건이 아니라, 

사건이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란 것을.


난 단순하게 산다. 오피스텔에 가서 청소하고 집에 와서 씻고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잠을 잔다.

(15p)


(아...진짜 소설을 얼마나 힘들게 써나가려고 이러시나...)


'겨울정원'에서 이룬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은 현재에 대한 집착이다.

정말 많은 소설이 오늘을 설명하려 과거를 호출하길 즐긴다.

'겨울정원'은 과거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 한 번 등장하는 과거—오인환과 함께 용궁사에 갔던 기억—마저도 회상의 확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기억은 설명되지 않고, 의미화되지 않으며, 현재를 변형시키지도 않는다. 


이주란은 '겨울정원'에서 소설 속 과거의 기능을 새롭게 발견했다.

과거는 지금과 그저 조금 다를 뿐이라는-.


혜숙에게 오인환은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데 

그 부재 역시 극적인 상실로 처리되지 않는다.

또 다시 철저한 배제-.


과거를 최소화한 자리에 남는 것은 당연히 현재다.

현재의 미세한 흔들림이다. 


그 미세한 흔들림의 종류는 이러하다.


겨울 정원에 까치가 날아든다.

초등학교 동창회 단톡방에 보낼 연말 인사말을 ‘교양 있게’ 쓰고 싶어 한다.


이런 식이다.

이 소설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우연히 걸려드는 작은 변화를 

붙잡는 방식을 즐겨 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떨림은

딸 미래에게 찾아온 설렘이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혜숙의 감정이다. 


지금 미래에게 생겨난 저 마음이, 

언젠가는 내게도 다시 찾아올 날이 있을까 생각하면 

이미 겪은 일도 지금 겪고 있는 일도 아닌데 조금 슬프다.


44p


혜숙은 그 설렘이 자신의 미래에도 올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그러다 조금 슬퍼진다. 이 슬픔은 설명되지 않는다. 원인도, 결론도 없다. 다만 그날의 일상에 아주 작은 금이 간다. 이 균열은 소설의 클라이맥스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반복되는 일상 속으로 흡수된다. 


하지만 독자는 느낀다.

이 소설에서 허용된 최대치의 사건이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을.


'겨울정원'의 미학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묘사하는 데 있지 않다. 

그건 너무 지루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굉장히 분주하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도록 소설 속 모든 것을 장악한 

소설가의 성실한 자제력 떄문이다.


소설가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미리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을 하나씩 차단한다. 

감정이 커질 수 있는 지점에서는 문장을 낮추고, 

서사가 확장될 수 있는 순간에는 시간을 멈춘다. 


그 결과 독자는 누군가의 지루한 삶이 아니라, 

완벽하게 통제된 평온 같은 걸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은 묻는다. 


우리 삶이 반드시 극적으로 변화해야만 의미가 있는가. 

감정이 꼭 폭발해야만 진짜인가. 


그리고 소설은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한다. 

그렇지 않다고. 


어떤 삶은 반복되기 때문에 성립하고, 

어떤 감정은 이름 붙이지 않기 때문에 유지된다고.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남는 것은 감동이라고 할 수 없다.

감동 '꺼리'는 없는데, 이상하게 감동적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소설의 형식이 되는 경험. 


'겨울정원'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소설이다.


소설가에게 묻고 싶다.

대체, 어떻게 참았느냐고.


엄마는 단순한 게 아니라 성실한 거였어.


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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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5 2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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