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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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는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강요된 선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

(114p)


굳이 따져보자면 '선'보다는 '악'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솔직히. 악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니까 나는 악한 사람일까. 악한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악한 사람일까. 나는 왜 악에 관해 생각하는가.


무엇보다, 나는 악에 관해 생각할 자격이 있는가.


이리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악인은 악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악'에 관해 생각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착한 사람 축에 든다(고 믿고 싶다). 


설마, 싶겠지만 그런 것 같다.


자신이 하는 일이 악인지 알면서 하는 사이코패스는 빼놓고 일단 생각하자.


악인은 자기가 하는 일이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쁜 일이란 생각은 할 지도 모른다. 악인도 세상에 돌아다니는 법쪼가리 정도는 줏어 들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나쁜 일이 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좀, 다르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내가 악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말의 어미를 확정하긴 어렵다)


나쁜 일과 악은 다를 수도 있다.

법이 그러지 말라고 정한 일은 나쁜 일이지만 법이 금한 일이 다 악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사실은 명작일 뿐 아니라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어떤 책이나 영화를 별 시덥잖은 이유를 들어 묶어버리는 일 따위.


여기, 절도, 폭행, 강간이란 끔찍한 일은 다 저지르고 다니면서 그 일이 악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열 다섯 살, 알렉스가 있다. 그 동무들이 있다. 알렉스는 늘 이런 말을 읊조리고 소설의 챕터를 시작한다.


이제 어떻게 될까, 응?(What's it going to be then, eh)

얘도, 자신이 어찌될 지 모른다. 

그냥 하고 싶으니까 한다면서 사실은 얘도, 두려운 것이다.

법으로 금한 나쁜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알렉스는 악인일까.

법으로 금하지는 않았는데 나쁜 일도 얼마든지 많다.

그런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사람은 악인이 아닐까.

다 가진 사람이 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SNS에 다 가졌다고 자랑하는 일 따위.

혼밥할 사람이 더 많은 사무실에서 두 사람만 팔짱 끼고 오늘은 뭐 먹을까 하는 따위.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윤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제거당하겠다는 선택을 내릴 때, 넌 진짜로 선을 선택한 것이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구나. 신이 우리 모두를 돌보시겠지(114p) 


내가 악에 관해서 더 많이 생각하는 이유는 혹시, 윤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일까. 윤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한 불면의 밤을 신에게 맡긴다면 나는 진짜로 선을 선택하는 것이 되는 걸까.


나쁜 짓을 다 하고 돌아다닌 알렉스는 '착해지는 요법'을 시술받고 나쁜 짓을 목격하거나 생각하면 토한다. 나는 세상 온갖 나쁜 짓을 봐도 더 이상 토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 매순간 토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세상에 산다는 걸, 또 매순간 깨닫게 되어서.


세상 온갖 나쁜 짓에 토하지 않는 나는 악인인가.


오늘 내가 실행한 어떤 자유의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이었을까.

스스로 선하다고, 선하고자 하는 자유의지를 안전하게 행사하고 있다고 믿는 우리.


시계태엽 오렌지나 읽...먹으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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