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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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목을 매 죽은 이후로 내겐 두려울 게 없었다.

그때 나는 열아홉 살이었고,

말린 단풍잎을 책갈피로 쓰던 여고생이었고,

오 남매 중 막내였지만,

침착하게 부엌칼을 가지고 와서 아버지의 목을 죄고 있는 끈을 잘랐다.

시체가 된 아버지의 머리가 마룻바닥에 부딪치는 순간

이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겁나는 일이 없었다.

그보다 더한 일은 없을 테니까.


버스 정류장 근처 꽃집에서 나를 위해 꽃다발을 샀다. 


축의금이나 조의금도 섭섭지 않게 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오빠들은 집을 떠났고,

나는 어머니와 둘이 남았다. (10p, 여름방학 중에서)


아버지가 목을 냈고 그 끈을 잘랐는데

퇴직을 했고

그 때문에 꽃집에서 나를 위해 꽃다발을 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오빠들은 집을 떠났다...


완전히 상관없는 사건들의 혼재가 덩어리로 이어진다.


의식의 흐름.

과거의 경험에 뿌리를 둔 의식이 자발적으로 튀어 오르는.


그 돌연함에 신기하게도 어긋남이 없다.


잘 섞인다.


윤성희,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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