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 - 2020 칼데콧 아너상 수상작 세계숲 그림책 11
리처드 T. 모리스 지음, 르웬 팜 그림, 이상희 옮김 / 소원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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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there was a river that flowed night and day but it didn't know it was a river.


원서는 이리 시작한다.


한국어 번역본은 이리 시작한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이게 같은 책인가?


어떤 문학 작품도 그렇지만, 특히 시나 그림책처럼 문장의 '압축미'가 중요한 장르는

단어 하나 번역할 때 치밀함이 동반되어야 한다.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Once there was a river that flowed night and day but it didn't know it was a river.

어딘가에 강이 하나 있는데, '그것(it)'은 '그것(it)'이 강인지 모른다.


이게 정확한 해석이 되어야 한다.

번역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it ======== river


정리하자면 이 시작의 뉘앙스는 이렇다.


강이란 게 존재하는데, 강은 자신이 강인지(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서두가 감탄스러운 것이다.

밤이고 낮이고 흐르는데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강.


작가는 서두부터 독자(우리/인간)를 '강'이란 세상에 표류시킨다.


여기서, '강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른다는 벌써 등장하면 안된다. 

그 전에,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강 스스로가 모른다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존재를 모르던 강 앞에 어느 날 곰 한 마리가 나타난다.


but it didn't know it was a river UNTIL....


Bear came along.


곰, 또 다른 존재의 등장인 것이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밤낮으로 흐르면서도 자기 존재를 알지 못하는 강 앞에 

나타난 또 다른 존재.


그 곰이, came along


그냥 'came'이 아니다.

'along'이 붙었다. 'came along'이다.


'along'이 붙으면 우리말로는 '같이', '따라서', '붙어서'란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along'에 꼭 그런 뉘앙스에 한정지을 수는 없다.


come along을 영영사전에서 찾아보면,


출현하다(appear)

도착하다(arrive)

가 우선순위로 보인다.


to start to exist:

I gave up climbing when my first child came along.
(https://dictionary.cambridge.org/us/dictionary/english/come-along)

but it didn't know it was a river UNTIL....Bear came along.
그걸 알고 나니, 이 시작이 더 강렬하다.

제 존재를 모르고 흐르기만 하는 강 앞에 나타난 다른 존재인 곰.
존재와 존재의 만남인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Bear was just being curious when he realized what the river could do, but he didn't know he was on an adventure...UNTIL Froggy

곰은 호기심이 일었지. 그리고(여기서 'when'은 'and'로 이해된다) 강이 할 수 있는 게 무언지(강의 존재를) 알았지. 하지만 정작 자신의 모험이 시작된 줄은 몰랐어...(Froggy의 출현까지는)
이런 뉘앙스다.

자기 존재를 모르는 강
역시 자기 존재를 모르는 듯한 곰
두 존재가 드디어 닿는 지점.
자기 존재를 모르는 강의 존재를 알아본 곰.
그리고 또 다른 존재들의 출현.
존재들이 '합치'되고 시작되는 '모험(난관/소동)'

저 스스로를 인지하지 못하는 존재와 존재는 서로의 '닿음'을 필요로 하고
오히려 다른 존재를 통해 '나'를 인지하는 능력을 얻는다는 기막힌 메시지가
아이들 그림책에 이렇게 '쉽고도 예쁘게' 펼쳐진다니...

그런데 이 철학적이라 할 정도로 웅숭깊은 서두를,
한글 번역본에서는 어떻게 풀어냈는지 보자.

Bear came along-->곰이 강을 따라갔어???????

몹시...다르다. 
글과 같이 흐르는 그림에도 곰이 강을 따라가는 모습은 없다.

그저 궁금해서 말이야
그러다 철버덩, 곰은 강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어

이 정도면 아예 다른 그림책 아닌가?

한글 번역본을 되영작해보면 이렇다.
Bear was just being curious and then he realized he had fallen in the river.

원서에서 'realize'의 대상은 'what the river could do'이다.
곰이 강 앞에 나타나고, 강의 존재에 호기심이 일었는데
뒤이어 일어난 일은 강에 빠진 것이다. 

원서에는 'fell into the river'라는 표현이 없다.
대신, 'what the river could do'이다.
'강이 할 수 있는 것'이란 말은 다분히 포괄적이다.
'다른 존재를 빠뜨리는 것'은 그 중 하나에 포함될 것이다.
원저자는 굳이 그걸 집어내지 않고,
다만, 그림으로 '빠진 모습'을 표현했다.
물론, 이걸 '좁게' 해석해 '강이 (지금 곰에게) 할 수 있는 일'=물에 빠뜨리기...
라고 한정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저자가 굳이 'fell into the river(water)'라고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이 그림책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글로 다 짚어주지 않으면서 독자와 협응하려는...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강은 지금 곰에게 할 수 있는 걸 했지.(그게 뭘까?)
(그러고 독자는 눈으로, 곰이 빠지는 모습을 그림으로 본다)

그런데 한글 번역본은 있지도 않은 의성어(철버덩)까지 동원해가며
노골적으로, 곰이 강에 빠졌다고 말로 풀어버리고 말았다. 

원저자도 얼마든지 이리 말할 수 있다.

The bear fell into the river.

저자가 그리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글로 읽는 독자들은 굳이 말하지 않은 이유를 가진 저자의 마음
공유할 기회를 허락받지 못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최선을 다해 쉽게, 이해하기 좋게 표현하려 한 건 이해한다.
그러나 원서 역시 독자가 아이들이다. 

어째서 영어로 읽는 책과 한글로 읽는 책의 사유의 깊이가 달라야 한다는 것인지?

아무튼, 이 책은, 많이 다른 책이다. 내 보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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