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스토리 컨설턴트의 글쓰기 특강 - 흥미진진한 영화 대본, 소설, 드라마, 웹툰을 쓰는 비법
리사 크론 지음, 서자영 옮김 / 처음북스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은 책이다.

그것도 글쓰기 책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쓴 책이리라.


그런데 왜 이렇게 글을 못 썼을까?

못 쓰다 못해 '비문' 투성이다.


번역자가 원저의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 못하고 옮긴 부분도 부지기수.

(아직 1/10 밖에 안 읽었는데 이 정도다)


예를 들면, 이런 식.


[이미 알고 있겠지만, 소설을 쓰는 것은 꽤 어려운 작업이다.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것만큼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사람들은 시작하자마자 포기하는 작가가 엄청나게 많은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여 이것에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도대체 여기서 '이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이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


1. 소설을 쓰는 것?

2. 시작하자마자 포기하는 것?

3. 소설쓰기가 어렵지 않은 것?


영어의 대명사는 가능한 한 우리말로는 구체적인 명사로 풀어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꼬이기 십상이다. 


[잘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의 문제점은, 스토리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미 버스가 떠났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위해 추론의 도식을 세워보기까지 해야 한다.


잘 쓰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문제점이 있다----->무슨 문제점?

스토리의 측면에서 봤을 때, 버스가 떠났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지??


스토리의 측면에서 본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스토리의 기능적 측면

스토리의 구조적 측면

스토리의 생리적 측면


등이라면 몰라도 이 책 자체가 '스토리컨설턴트'의 '스토리'에 관한 내용인데

'스토리의 측면'이란 게 당췌.....


[스토리란 어려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이 그의 내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필시 원래는 더 좋을 이 문장이 전형적인 '번역투/직역투' 때문에 지난하게 읽힌다.

무책임한 '것'이 너무 많다. '것'을 좀 더 책임감 있는 단어로 바꾸면 훨씬 더 잘 읽힐 텐데.


---> 스토리란, 어려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물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이 인물 내면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또는, 형식)이다. (물론, 원서를 아직 보지 않고, 번역만 보고 고쳐 본 것)


원서의 '정확한' 내용이 너무나도 궁금하여 원서를 사 보기로 했다. 확인하고, 리뷰를 업데잇할 생각이다.


참고로, 참담한 수준의 번역 때문에 이해 안 가거나 읽기 불편한 부분을 죄 빼고

그나마 읽히는 부분만 건져서 보더라도


책 내용은 좋다.


소설을 '스토리'에만 국한시켜 너무 좁게 단정시켜 버린 앵글이 아쉽긴 하지만,

'소설=스토리'라고, 부분의 겹을 전체라 여기고 읽어도 

건질 게 많다. 어쨌든 단순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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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 원서의 앞 부분이 공개되어 있어 원문을 보고 왔다.

하...이건 뭐, 다른 책이라 해도 될만한 수준 아닌가...


첫단락부터 제동이 걸린다.


[What's the biggest mistake writers make? This is the question I've been asked most frequently over the years. The answer is easy. They don't know what a story is. So even though they have a great idea, their prose is gorgeous and there is a lot of action, there is no real story and so no driving sense of urgency; which translates to: no readers.]


엄청나게 쉬운 문장이다. 한국의 초등학생 정도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는.

그런데 쉬워서 자칫 삐걱할 수 있는 게 영어다. 


[작가가 저지르는 가장 실수는 무엇일까? 지난 몇 년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스토리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근사한 문체로 다양한 사건을 다뤄도 진정한 스토리를 말하고 있지 않으니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 독자가 없다.]


얼핏 보기엔 별 문제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번역문은 이 단락의 '핵'을 놓치고 있다.


바로, 'driving sense of urgency' 때문이다.


뒤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저자는 '스토리의 작용'에 관해 꽤 힘주어 설파한다. 

스토리를 유기체처럼 다루며 스토리와 우리 인체의 생물학적 반응에 관해서도 짚어낸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말이 바로 '읽고 싶게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그냥' 읽고 싶게 하는 마음이 아니다. 

'간절히' 읽고 싶게 하는 마음이다. 


이 책 전체에 깔린, 저자의 소신이 바로 머리말의 이 첫단락,

그것도 바로 이 'urgency'에서 예고하듯, 터져나온다.


'urgency'의 핵심은 'quickly'이다.


뭔가 안달나고, 조급해서 '빨리' 덤벼드는 이미지다.


즉, "진정한 스토리가 없으니 'urgency' 감각을 주지 못한다(there is no real story and so no driving sense of urgency; which translates to: no readers.)'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하지 않아도 '대충' 스토리같아 보이는 소설(영화, 드라마)도 읽히긴 한다.

그러나 'sense of urgency'를 주지 못한다............


이게 이 단락의 핵심이다.


안 그런가?


그런데 번역문에 'sense of urgency'가 어디로 가 버렸나?

없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덜렁, 이리 되었다.


첫단락부터 독자는 손해 보았다.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을 '정수(essence)'의 조각을 놓쳤다. 


sense of urgency


이 단어만 갖고도, 독자는 배울 게 있다.

아...좋은 아이디어, 좋은 문체, 좋은 사건을 확보해도 

'sense of urgency(=빨리 달려들어 읽고 싶게 만드는 흥분감, 조급함, 안달감)'를 줄 수 있어야 하는구나, 하고.


단순히, 그냥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이 아닌 것이다.


그 둘의 차이는 '천지'만큼이다. 천지차이


그리고 더 큰 오류가 있다.

바로, 'writer'의 대치어로 선택한 '작가'란 단어다.


이 책은 '작가 지망생 혹은 작가지만 잘 안 팔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그래서 뭉뚱그려 '작가'라고 한듯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작가 지망생'이 과연 작가인가?

영어로 'writer'라 하면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도 있지만

그냥 '글쓴이'도 'writer'다. 즉, 초등학생이 숙제로 글짓기 숙제를 냈어도 교사가 그 숙제 페이퍼를 들어 보이며 "who is the writer?"하고 물을 수 있다. 그냥 '쓴 사람'이다.


그 다음 단락을 보자.


[아무리 열심히 작업하고('work'는 여기서 '작업'이라기보다 '습작'이 적절하다. 글쓰기 말이다) 글쓰기 워크샵에 참가하고 학위를 취득해도 여전히 내 책을 출판하겠다는 기획자(원서의 'agent'는 '기획자'가 아니다. '출판 대리인'이다. 말 그대로, 중개인)도 없고 출판 계약도 못하며, (중략) 자비 출판을 한다 하더라도 친구나 가족이 겨우 몇 권 사는 것이 전부...(후략)]


읽어서 알겠지만, 이게 '작가'를 말하는 게 맞나?


무슨 작가가 글쓰기 워크샵에 참가하고(강사로 참여한다면 모를까)

아직 책을 출판도 못했고

출판 대리인도 안 붙고

출판 계약도 못했고


이건......쉽게 말해 '작가'를 꿈꾸고 습작중인 '취준생'의 모습, 아닌가?


다 접고, 책 출간을 안 했는데, 어떻게 우리말로 '작가'가 성립할 수 있나?


여기서 말하는 'writer'는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이지 '작가'가 아니지 않나?

적어도 우리말로 '작가'는 '프로페셔널'하게,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긴, SNS에 글쓰면서 자칭 '작가'라 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 문제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의 한글 번역본은


누구를 상대로 쓴 글인지,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어쩌면 모든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쳤는 지도 모른다.


첫단락에서부터.


원서가 참, 좋은 책인 것 같아 길게 떠들었다.

원서를 사서 읽어보면, 떠들 게 더 많아질 것 같아 걱정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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