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길들이기 - [초특가판] 고전 10종
하워드 혹스 감독, 캐리 그란트 외 출연 / 맥스엔터테인먼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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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양육(Bringing Up Baby)> 또는 <베이비 길들이기>(하워드 호크스, 1938). 영화 내용상 후자가 더 적절한 제목이다. '베이비'가 '아기'로 번역되는 보통 명사가 아니고 누군가의 이름(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아니, 실은 사람 아기도 아니고 '표범'의 이름이다. 그렇다. 이 영화에는 '펫 표범'이 등장한다. '펫 표범'은 표범이 고양이과 동물이란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위 동영상 참조)

 

 

<베이비 길들이기>는 정신 없이 오가는 만담조 대사의 주고 받음과 그만큼 정신 없는 상황 전개가 특징인 '스크루볼 코미디'다. 슬랩스틱이 적절히 가미되어 있어서 말 그대로 쉴새 없이 웃을 수 있다. 개봉 당시 최초로 아카데미 5개 부문 상을 휩쓴 프랭크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이 스크루볼 코미디의 대표격이긴 한데, <베이비 길들이기> 역시 못지 않게 재밌다. 템포가 더 빠르고(더 정신 없고), 설정이나 캐릭터도 더 신선한 맛이 있다. 4년 사이에 이 장르도 진화했고, <베이비 길들이기>에 이르러 정점을 찍은 듯 보인다.

 

 

많은 로맨틱 코미디가 그렇듯, 이 영화도 주인공이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돈과 사랑을 동시에 거머쥐며 끝난다.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과정인데, 주인공의 계산된 이성적 노력은 모두 다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상황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택한 임기응변이나 자포자기적 행동이 '대박 반전'으로 이어진다.

 

 

미래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계획된 행동보다 임기응변이 낫다. 애써 계획을 마련해놓고 혹시라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까 불안에 떠는 것보다는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태도를 바꿔가며 대처하는 게 나은 것이다. 멋모르고 '나만의 원칙/신념/생활방식' 같은 걸 고수하다가는 큰코 다치기 십상.

 

 

임기응변이라고 했는데, 스크루볼 코미디의 경우는 스릴러,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이 선보이는 임기응변과는 사뭇 다르다. 스릴러,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른바 '능력자'들이다. 지금은 일반인이지만 한때 '특수요원'이었다든가 하는 식. 그들에겐 나름의 행동 원칙과 신념이 있다. 대개 '불의를 참을 수 없다'라든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든지 '가족(주로 딸)을 보호해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요즘은 이 장르도 진화해서 '나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의 원칙 아래 주인공들이 활약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나 '가족'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 오직 '나 자신의 생존'이 최우선 과제가 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스크루볼 코미디의 임기응변은 '내려놓기=자포자기'로 요약할 수 있다. 스릴러,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이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태도를 보이는 것과는 정반대라 하겠다. 영화의 주인공 캐리 그랜트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계획을 하나씩 포기(당)한다. 박물관 기부금 백만 달러를 얻으려는 계획을 포기(당)하고, 약혼녀와의 결혼을 포기(당)하고, 급기야 자기의 정체성마저 포기(당)한다. 미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전문 사기꾼으로 오인받아 유치장에 갇히기도 한다. 꽤 익숙한 상황이라고 느끼는 것도 당연한데, 이러한 상황은 스릴러, 액션 영화에서도 자주 제시하는 일종의 단골 설정이기도 하다.

 

 

<베이비 길들이기>의 캐리 그랜트 캐릭터는 히치콕의 스릴러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캐리 그랜트를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 모두에서 캐리 그랜트는 자기가 전체를 파악하고 있지 않은 어떤 상황에 휘말리게 된다. 다른 사람으로 오인된다는 것도 공통적이다.

 

 

스릴러, 액션 영화도 스크루볼 코미디도 '전모를 파악할 수 없는 어떤 음모'에 휘말린다는 설정에 기반을 두고 전개된다. 계획은 쉽게 어그러지고 상황은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영화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베이비 길들이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여주인공 캐서린 헵번의 캐릭터이다. (여담인데, 또 다른 헵번인 오드리 헵번은 오랫동안 팬이었지만, 캐서린 헵번의 영화는 이번에 처음 봤다.) 이 영화에서 캐서린 헵번은 정신 없는 '좌충우돌' 캐릭터를 선보인다. 영화에서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멋대로' 행동한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캐리 그랜트와 결혼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들이댄다. 그러면서 캐리 그랜트의 계획을 깡그리 망쳐 놓는 것은 물론 공공 질서와 사적 소유권을 어지럽히며, 급기야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정체성마저 포기하게(내려놓게) 만든다. '민폐 캐릭터' 중에서도 가히 최강이라 할만하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거의 '제정신'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스크루볼 코미디답게도 그녀의 이런 '극악무도한' 민폐질은 나중에 그녀가 다름 아닌 '물주'의 조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리고 캐리 그랜트가 원하던 '기부금 백만 달러'를 확보해줌으로써 정당화된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1930년대 초(대공황 직후)에 등장하여 2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까지 기간 동안 큰 인기를 끌었다. 돈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주식과 채권이 휴지 조각이 되고, 잘 다니던 직장에서 잘려 한 순간에 실업자로 전락하는 등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떤 '붕 뜬' 시대적 상황을 이 장르는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에 '한없이 가벼운 즉흥성'과 '자포자기적 유머'로 맞서는 것이다. 자포자기적 태도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시대와 맞선다'라는 표현이 과연 적절한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 어쩌면 그들에겐 '한없이 가벼운 즉흥성'과 '자포자기적 유머'말고는 다른 대안적 삶이 방식이 허락되지도 않았고,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엉망진창 코미디'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 스크루볼 코미디가 제시하는 세계는 엉망진창 세계다. 오래 공들인 계획도, 사회 질서도, 나 자신의 직업도 정체성도 일순간에 무너지거나 부정당할 수 있다. 말하자면 스크루볼 코미디의 세계는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세계, 가까운 미래조차도 계획할 수 없는 세계다. 이러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계획이나 신념이 무너졌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고, (캐서린 헵번의 캐릭터가 보여주듯) 애초에 모든 것을, '제정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진다는 명분 아래) 다른 건 돌아보지 않고 일직선으로 맹렬히, 유쾌, 상쾌, 통쾌하게 질주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많은 '멘토'들의 다양한 조언은 결국 이러한 삶의 방식의 권유로 수렴하는 게 아닌가 싶다.

 

 

1930-40년대에는 스크루볼 코미디가 인기를 끌었지만, 40년대 중반 즈음부터 50년대 후반까지는 스릴러와 (한층 어두운) 필름 느와르가 유행한다. 설정은 동일하지만 유행한 장르는 달랐던 것이다. 오늘날 스크루볼 코미디는 텔레비전 시트콤의 형태로 아직 존재하지만, 아무래도 지배적인 장르는 스릴러, 액션이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현실이 아무리 '엉망진창'이라 하더라도 낙관적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고, '자포자기적 정서'를 '유머'로 승화시키며, 그것이 선보이는 '난리법석'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활력'을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게 먹히지 않는 시기도 분명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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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두 마리의 표범이 나온다. 하나는 길들여진, 그래서 위험하지 않은 '펫 표범'이고 다른 하나는 서커스단에서 사람을 해친, 길들여지는 데 실패한 난폭한 표범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 안의) 표범을 길들일 수 있을까. 이미 정글과 같은 생존 경쟁의 장으로 변해버린 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난폭하게 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정글의 법칙'을 거부하며, 혹은 적절히 컨트롤하며(길들여가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영화의 결말에서 두 마리의 표범은 모두 포획된다. 길들여진 '펫 표범'은 원 주인에게 돌아가고, 난폭한 표범은 목표 달성을 위해 제정신을 이미 오래 전에 내려놓은, 그 결과 '표범보다 난폭해진' 캐서린 헵번에게 잡혀 질질 끌려온다. 그녀처럼 우리 역시 제정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 사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표범과 더불어 살아왔으며, 각자 자신의 안에 표범 한 마리쯤은 키워왔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길들이고 제압하는 데 성공했느냐의 문제는 다른 문제일 것이다. 설령 어느 정도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표범을 길들이려는 가운데 우리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범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난폭하게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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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란>(1985). 99년에 영화세미나를 하면서 구로사와 감독 작품을 몇 편 봤는데, <란>은 왠지 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라쇼몽> <카게무샤> <요짐보> <7인의 사무라이>에 이어 <란>을, 그 존재를 처음 알게 된 때로부터 무려 14년이 흐른 후에야 보게 됐다.

 

 

 

 

 

 

 

 

 

 

 

 

 

 

 

 

 

 일단 영화를 보면서 '놀라울 정도로 선이 굵고 에너지가 넘치는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전투 장면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스피디하다. 주요 전투 장면이 두 개가 있는데, 첫 번째 장면은 음향 효과 없이 BGM만 깔았다. 그런 채로 5분 정도 지속된다. 청각을 배제한 채 시각적 스펙터클만을 강조한 것이다. 성의 내부와 외부를 오가는, 그리고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풀 숏, 미디엄 숏, 클로즈업 숏 및 (바깥의 전투 상황을 보여주는) 롱 숏을 오가는 편집이 일품이다. 이런 공간적 대비 및 쇼트 수준의 대비에 색채까지 대비를 이루며 쉽게 잊기 힘든 강렬함을 전달한다. 전투 장면에서 음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감안할 때 정말이지 놀라운 성취라 하겠다. 두 번째 장면은 음향 효과를 넣었는데, 총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정신 없이 귀를 파고 든다. 이때도 롱 숏과 풀 숏, 미디엄 숏, 클로즈업 숏들이 서로 대비를 이루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란>은 셰익스피어 비극 <리어 왕>을 느슨하게 각색loose adaptation한 영화다. 과거 일본이 배경이고 세 딸들 대신 아들들이 등장한다. 거기에 <맥베스>의 악녀 맥베스 부인 캐릭터까지 등장하는데, 두 이야기를 한 영화 속에 담아냈는데도 전혀 무리수로 여겨지지 않는다. 대개 문학 작품을 영화화하면 원작에 못 미친다고들, 원작의 풍부한 의미를 손상시킨다고들 하는데, <란>은 무려 셰익스피어의 비극 두 편을 동시에 참조하면서도 그 나름의 개성과 풍부한 의미를 창출해냈다. 구로사와를 왜 거장이라 하는지, 조지 루카스와 스필버그, 마틴 스콜세지 등이 어째서 틈날 때마다 구로사와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는지 새삼 이해가 됐다.


 

조만간 기회가 된다면, 구로사와의 <란>과 더불어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 <맥베스>를 읽는 모임을 꾸리고 싶다. 구색을 맞추려면 <햄릿> <오셀로>도 커리에 포함 시키면 좋겠지. <오셀로>는 오손 웰즈가 감독, 주연을 맡은 영화가 있다. <햄릿>은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가 있고. 다만 이들 작품이 (나름 훌륭한 영화들이긴 해도) 구로사와의 영화에 비해 개성 내지 창조성이 떨어진다는 건 사실이다. 아무래도 셰익스피어란 이름에, 서양의 빛나는 고전에 먹칠을 해선 안 된다는 부담감 내지 강박이 이들 영화에서는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화면 옮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욕 먹지 않을 수 있을까가 웰즈와 올리비에의 고민이었다면, 일본인인 구로사와에게 그런 건 고민거리가 아니다. 전자들이 동질화의 욕망, 원본을 향한 지향에 어쩔 수 없이 붙들려 있다면, 구로사와는 그런 것에 붙들려 있지 않다. 하여 무수한 차이들이 발생한다. 그 결과 '차이의 향연'이라 부를만한 게 가능해진다. 관객은 2시간 40분 남짓한 러닝 타임 동안 그 향연에 흠뻑 빠진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 것이다.

이러한 영화적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이점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다루는 주제인 운명, 역사, 신, 정치, 인간 욕망, 인간 심리 등 이른바 '큰 주제'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고민을, 그것도 이전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그저 책으로만 읽었을 때와는 달리, 훨씬 피부에 와닿는 방식으로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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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작품은 아무래도 판본이 무척 많은데, 어떤 번역본으로 읽어야할지 고르는 것만 해도 큰 일이다....... 일단은 을유문화사에서 출간한 <리어 왕, 맥베스>가 좋지 않을까 싶다. 두 편이 한 권에 수록되어 있다는 장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그때문만이 아니라,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을유문화사의 책들은 번역이 항상 일정 퀼리티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한 결과다.

 

개인적으로는 시인 김정환의 셰익스피어 번역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다. 아침이슬 출판사에서 계속 출간되고 있는 모양이다. 김정환 번역은 (나름의 단점은 있지만)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 작품이 지니는 '희곡적 특성'을 잘 살려놓았다는 장점이 있다. 번역자가 (번역의 한계를 딛고) 대사의 운율을 살리기 위해 번역어 선택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게 느껴진다.

 

한편, 펭귄출판사 번역본은 앞에 수록된 전문 학자의 해설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열린책들과 시공사 번역은 아직 확인하진 않았지만, 최근 번역본들이라 나중에라도 확인을 해봐야겠다 싶어 리스트에 올려두었다........

 

이른바 메이저 출판사에서 기존 번역이 있음에도 새로운 번역본을 내놓는 경우(중복 출판)가 많은데, 이게 좀 낭비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런 새로운 번역본에 의해 기존 번역본의 단점이 보완되는 측면--오역을 바로 잡는 등--도 없진 않다. 또한 기존 판본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느라 새로운 번역 원칙을 두기도 하고, 각주나 해설에 각별히 신경을 쓰기도 한다. 결국 하나의 판본만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전공자도 아니면서 여러 판본을 비교하며 읽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기도 하다. 번역 비평이 지금보다 좀더 활성화되길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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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할머니를 능가하는 초특급 할머니'

 

이런 말을 듣는 할머니가 이 세상에 있다니?!

 

팬분들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 말은 다름 아닌 추리소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미스 마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게 크리스티의 팬들이 붙인 별명이 아니라 소설 속에 정말로 등장하는 표현이라는 게 함정.

 

이 대목은 황금가지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권 <살인을 예고합니다(A Murder Is Announced)>(1950) 116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경찰 서장 라이즈데일은 미스 마플로부터 편지를 받고 그 내용을 전직 경찰청장 헨리 클리서링 경에게 말해줍니다. 라이즈데일은 미스 마플을 잘 모르므로 그저 '나이 많은 숙녀'로부터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자네한테 보여 줄 게 있네, 헨리."

서장이 말했다.

"뭔가?"

"어느 나이 많은 숙녀가 자필로 쓴 편지. 로열 온천 호텔에 묵고 있다는데 이번 치핑 클레그혼 사건과 관련해서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는군.(Authentic letter from an old pussy. Staying at the Royal Spa Hotel. Something she thinks we might like to know in connection with the Chipping Cleghorn business.)"

"나이 많은 숙녀라고?"

헨리 경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것 봐, 내가 뭐라던가? 나이 많은 숙녀들은 모르는게 없다니까? 게다가 유명한 속담하고는 다르게 좋은 게 좋은 거다,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그 숙녀는 어떤 정보를 알고 있다던가?(The old pussies," said Sir Henry triumphantly. "What did I tell you? They hear everything. They see everything. And, unlike the famous adage, they speak all evil. What's this particular one got hold of?)"

라이즈데일은 편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우리 할머니하고 글씨가 비슷하군. 잉크 적신 거미가 기어간 것처럼 비뚤비뚤한 건 둘째 치고 사방에 밑줄을 그어 놨어.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뺏을 생각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어쩌고저쩌고 이런 말들이 대부분이야. 이름이 뭐지? 제인, 뭔데...... 머플인가? 아니, 마플이로군 제인 마플."

 

편지를 보낸 이가 다름 아닌 미스 마플임을 알게 된 헨리 경의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로 여기에 예의 '초특급 할머니'란 표현이 나오죠.

"오, 주여! 이게 꿈인가 생신가?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이자 별 네 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은 바로 그 숙녀! 모든 할머니를 능가하는 초특급 할머니! 세인트 메리 미드에서 평화롭게 지내시는 줄 알았더니 마침 살인사건이 벌어진 때에 맞춰줘서 메던헴 웰스에 나타나 주셨군. 마플 양을 위해서 다시 한번 살인이 예고된 셈이야."

 

아무래도 역자가 심한 의역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품고, '초특급 할머니'의 영어 원문을 찾아봤습니다.

"Ye gods and little fishes," said Sir Henry, "can it be? George, it's my own particular, one and only four-starred pussy. The super-pussy of all old pussies. And she has managed somehow to be at Medenham Wells, instead of peacefully at home in St. Mary Mead, just at the right time to be mixed up in a murder. Once more a murder is announced--for the benefit and enjoyment of Miss Marple."

 

찾아보니 '초특급 할머니'는 'super-pussy'를 번역한 것이었네요. '푸시(pussy)' 또는 '올드 푸시(old pussy)라는 말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저속한 표현으로 자주 사용된다고 합니다.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암)고양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쓰인다고 하네요. '고양이=여성(나이가 많고 세상 물정(+ 남자)을 알 만큼 아는, 순진하지 않은 여성)'인 셈입니다. 한국어에서나 영어에서나 짐승(한국에선 특히나 개)에 빗대 사람을 지칭하면 성적 뉘앙스와 비하하는 의도가 담긴 저속한 표현이 되는 듯합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서는 남성들이나 젊은 여성들이 '나이가 많은 여성들'을 부를 때 이 pussy/old pussy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때는 외설적이거나 성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올드 푸시'라고 하면 "시간이 많아 남 얘기하길 좋아하고 자신의 잣대로 남들을 평가하길 좋아하는 나이 많은 여성"을 의미합니다. 아니면 그냥 단순히 사고방식이 구식인 나이 많은 여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 식대로 하자면 '꼰대'?) 동의어는 '올드 캣(Old Cat)'. 여기서도 pussy는 그닥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위의 인용에서 헨리 클리서링 경이 미스 마플을 두고 '올드 푸시/수퍼 푸시'라 부를 때, 이 단어에는 범죄 해결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나이 많은 숙녀(old pussy)'들에 대한 흐뭇한 마음과 열광적인 칭찬(팬심?)이 담겨 있습니다.


미스 제인 마플은 크리스티의 1930년 작 <목사관 살인사건>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초기 작품들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1940년대에는 단 두 편의 작품에만 등장합니다. 하지만 1950-60년대에 7편의 작품에 등장하면서, 크리스티의 탐정 캐릭터 중에서 (에르퀼 포와로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됩니다. (* 지금까지의 내용은 James Zemboy, The Detective Novels of Agatha Christie : A Reader's Guide, p. 422를 참조하면서 썼습니다.)

 

이 pussy라는 단어는 국내번역본에서는 '나이 많은 숙녀' 또는 '할머니'로 번역되었습니다. 당연히 성적인 의미도 비하하려는 의도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더불어 pussy란 표현에 담긴 어떤 (팬심이라 부를 만한) '애정', (경외심과는 다른 의미의) '찬사' 역시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글쎄요, 요즘 식으로 하자면 "캐쩌는 할머니" 정도의 표현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유행어/속어를 쓸 수는 없겠죠. 헨리 경 정도의 나이와 사회적 입장이 있는 사람이 '캐쩔어'라는 표현을 쓴다고 상상하기도 함듭니다.

한편 pussy란 표현에는 (경멸까진 아니더라도) 얕보는 태도가 담긴 건 맞습니다. lady대신 pussy라는 단어를 쓴 건 미스 마플이 일단 여성이고, 또 아마추어 탐정에 불과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지 않은 데다 남편도 없는 시골 마을 할머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경찰/마을 사람들은 미스 마플을 '참견쟁이'라고 부르며 귀찮아하기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아까 살펴본 '올드 푸시'의 정의, "시간이 많아 남 얘기하길 좋아하고 자신의 잣대로 남들을 평가하길 좋아하는 나이 많은 여성"라는 정의에 딱 들어맞는 셈입니다.

 

어쨌든 '초특급 할머니'란 별명에 끌려 (도대체 몇 권이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들 중에서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것들만 골라 놓았습니다. 앞으로 천천히 읽어보려 합니다. 총 14편에 불과(?)해서 도전해볼만 합니다...

 

특히 소리소문 없이 지난 5월 황금가지에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9권을 추가로 펴내면서 전집 출간이 무려 5년만에(!) 재개됐는데요. 이중 무려 4권(<마술 살인> <버트럼 호텔에서> <복수의 여신> <잠자는 살인>)이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작품이라는, 마플 팬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소식 전합니다...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 제목과 전집 번호는 황금가지판 기준)

 

1. <목사관의 살인> (The Murder at the Vicarage / 1930) - 전집 24
2. <열세 가지 수수께끼> (The Thirteen Problems / 1932) - 전집 6
3. <서재의 시체> (The Body in the Library / 1942) - 전집 27
4. <움직이는 손가락> (The Moving Finger / 1942) - 전집 10
5. <살인을 예고합니다>(예고 살인, A Murder Is Announced / 1950) - 전집 7
6. <마술 살인> (They do it with Mirrors / 1952) - 전집 65
7. <주머니 속의 죽음> (A Pocket Full of Rye / 1953) - 황금가지판 미출간 (해문출판사판은 있음)
8. <패딩턴발 4시 50분> (4:50 from Paddington / 1957) - 전집 49
9. <깨어진 거울> (The Mirror Crack'd from Side to Side) / 1962) - 전집 53
10. <카리브 해의 미스터리> (A Caribbean Mystery / 1964) - 전집 58
11. <버트램 호텔에서> (At Bertram's Hotel / 1965) - 전집 68
12. <복수의 여신> (Nemesis / 1971) - 전집 70
13. <잠자는 살인> (Sleeping Murder / 1976) - 전집 73
14. <마플 양의 마지막 사건> (Miss Marple's Final Cases and Two Other Stories / 1979) - 국내미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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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크리스티를 읽는다면 <살인을 예고합니다> <열세 가지 수수께끼> <움직이는 손가락>을 추천합니다. 재미있어요.

특히 <살인을 예고합니다>는 현재(다 읽질 못했으니) 저의 훼이보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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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3개월 반 동안 [혁명]을 주제로 독서 모임을 했었습니다.

그때 리스트업된 책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빽빽하네요. 권 수로 놓고 보면 11권이나 되지만, 작품 편 수로 보면 7편. 역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혁명'들을 고루 맛 볼 수 있게 작품 선택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맛 보기'에만 그친 감이 있습니다. 왜 이게 '혁명'이냐라는 질문도 심심찮게 받았죠. 특히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안나 카레니나>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혁명'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입니다. 관련 문화 상품, 예술 작품도 많죠. 하지만 기존에 널리 알려지고 고착된 혁명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깊이'를 포기하고 '폭'과 '다양함'을 택했습니다. 당시 제가 썼던 소개글(작품 선정의 변)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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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북 막독 프로젝트 7기 :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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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과 한 단어의 진정한 만남에 기회가 필요할 때도 있다.
-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서


여러분 각자에게 ‘혁명’이란 무엇인가요? 어떤 의미인가요?

혁명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삶의 경험과 감정의 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혁명하면 덮어놓고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입만 열었다 하면 혁명을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을, 체 게바라나 레닌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폭력 사태나 쿠데타를 혁명이라 우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혀 다른 관점에서 스마트폰의 등장을 혁명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쇄술의 등장, 증기기관의 발명에도 역시 혁명이란 이름이 따라 붙곤 합니다.

다르게 풀자면 ‘혁명’이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급격한 변화’ 또는 ‘밀어닥치는 흐름(물결)’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혁명은 우리들 각자에게 혁명에 동참할 거냐고 의사를 묻지 않습니다. 혁명은 폭력적이며 무차별적이며 비가역적입니다. 그것은 규모와 속도, 영향력의 측면에서 개인을 압도하며, 정치•경제 제도는 물론 일상의 관습을, 생각과 행동의 방식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바꿔놓습니다. 그 결과 개인의 정신과 신체에 무한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렬한 충격과 상처를 남겨놓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화와 충격 앞에서 우리들 각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걸까요. 적극적으로 물타기를 하는 것, 속절없이 휩쓸리는 것,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 혹은 좋았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요.

혁명의 시대를 살아간 개인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려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역사의 소용돌이에 속절없이 휩쓸리고 갈팡질팡했는지, 그런 가운데서도 어떻게 저항의 거점을 구성했으며 희망의 실마리를 찾았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막독 7기 ‘혁명’>이 저 크고 무거워 보이는 단어인 ‘혁명’과 진정한 만남을 가질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 프랑스 혁명

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청미래
- 프랑스 혁명

에밀 졸라,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시공사
- 19세기 파리 소비 혁명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문학동네; 펭귄클래식; 민음사
- 러시아 농촌운동

미야베 미유키, <가모우 저택 사건> 북스피어
- 일본 2.26 사건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문학동네; <인생> 푸른숲
- 중국 문화대혁명 등

 

작품 선정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혁명'이라는 단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소개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개인의 힘으로는 맞설 수 없는 '거대한 물결' 내지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바로 '혁명'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렸습니다. 혁명이라고 하면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정치적 차원만을 떠올리는데 여기서 벗어나게 된 게 고민의 결실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물결',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란 정의가 모호하고 포괄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보자면 오늘날도 얼마든지 '혁명기'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 혁명, 스마트 혁명, 신자유주의 혁명(?), 노동(유연화) 혁명(?), 자기계발 혁명 등.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같다 붙일 수가 있는데, 이게 또 나름 대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들 자신이 매일 매일의 삶에서 '돌이킬 수 없는 흐름'에 휩쓸려 있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기고 있기도 합니다.

 

당시 [혁명] 최종 리스트에서 결국 빠지게 됐지만 아쉬움이 남는 책

코바야시 타끼지 <게 가공선>

 

 

 

 

 

 

 

 

 

 

 

리스트가 한없이 늘어나는 건 막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일곱 편의 작품만을 선정했습니다만, 아쉬움도 많이 남았습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은 개인적으로 관련 책을 좀 더 읽고 싶었는데 일단은 '프랑스 혁명' 관련 책을 두 권을 선정했다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노명식,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책과함께, 2011). 따로 프랑스 혁명에 대해 공부를 좀 해보고 싶어서 구입해둔 책인데, 거의 못 읽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예전(1997)에 나온 책을 개정판으로 낸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서술 방식이나 문장이 좀 전형적이고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서술이 '객관적' 역사 서술일 터인데, 로버트 단턴 류의 재기발랄한 착상과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요소들을 연결시키는 흥미진진한 서술 방식이 더 익숙해져서인지 잘 읽히질 않았습니다.  

 

최근(2013년 6월)에 출간된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도 눈여겨보고 있는데, 노명식 교수의 책과 더불어 읽어보려 합니다. 이번에는 느린 호흡으로 재도전!

 

 

그런데 바로 어제 (정말이지) '신기한' 책을 하나 발견, 프랑스 혁명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났습니다. 바로 아래의 책입니다.

 

 

 

 

 

 

 

 

 

 

 

 

 

 

(로베스피에르를 다뤘다는 점에서) 제목부터 끌리는데, 역사가도 아닌, 프랑스 작가도 아닌 한국 소설가가 '로베스피에르'를 소재로 글을 썼다는 게 무척 흥미롭습니다. 혹시 알레고리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정말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라고 합니다. 덧붙여 출판사 책소개에 따르면, 한국에서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쓴 소설을 최초라고 합니다. (뭐 이상하진 않네요.)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읽어볼만한 다른 책들은 다음의 것들이 있습니다.

 

 

 

 

 

 

 

 

 

 

 

 

 

 

 

로베스피에르는 <두 도시 이야기>나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책을 읽을 땐 그 존재감을 잘 느낄 수 없었던 인물입니다만, 어쨌든 프랑스 혁명의 '주역' 중의 '주역'이라고 하겠습니다. (<두 도시 이야기>는 픽션이라 역사적 실존 인물이 거의 등장을 하지 않고,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는 미라보 백작이 가장 존재감이 있는 편입니다.)

 

한편, 아무리 로베스피에르가 프랑스 혁명의 '주역'이라고는 하나 이건 교과서에서 주입받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적극적 관심을 갖게 되려면 아무래도 다른 계기가 필요한데, 저에게는 그 다른 계기가 일본 TV 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였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만화가 원작인데, 만화가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을 많이 참조했다고 합니다. 물론 오스칼, 앙드레는 가상인물이지요.

 

TV 애니메이션에서는 오스칼이 로베스피에르와 조우하는 장면이 짤막하게(하지만 인상 깊게) 나옵니다. 그리고 생쥐스트가 무분별한 폭력의 화신으로 역시 짤막하게 등장하죠. 츠바이크의 원작에서는 로베스피에리나 생쥐스트는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츠바이크의 원작에서 꽤 비중 있게 다뤄지는 미라보 백작이 TV 애니메이션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혁명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중요 인물은 당통입니다. 거기에 서준환 소설 제목이 <로베스 피에르의 죽음>이어서 곧바로 떠오르는 소설은 게오르크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입니다.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중 한 권으로 올 초에 출간이 됐습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독일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 상'이 있어서 익숙한 이름인데, 생각해보면 신기하게도 이런 경우 대체로 수상자가 더 유명하고 정작 상이 이름을 따온 당사자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듯...... 프랑스의 '공쿠르 상'이 또 다른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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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에 이어 <위대한 개츠비>가 열풍입니다만, 이러한 '대대적인' 열풍은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뭔가 객쩍기도 한 게 사실입니다. 남들 다 읽는 걸 마치 휩쓸리듯 읽는 건 싫다며 상기 작품들의 인기에 대해 (저처럼) 묘한 반감을 가진 독자들도 꽤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해서 최근의 대대적인 열풍과는 다소 무관한, 그렇지만 나름 대로 '핫'한,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주목할 만한' 세계문학들을 꼽아봤습니다.

 

'우왓, 드디어 이 책이 나왔구나!' 내지 '어머, 이건 사야해!'라는 반응을 반자동적으로 이끌어내는, 출간 사실 자체가 반가운, 욕심 같아서는 앞뒤 잴 것 없이 바로 지르고 싶은 책들이지만, 주머니 사정이나 개인적으로 정리해둔 '읽어야 할 책' 리스트의 빽빽함을 고려해서 구매를 미뤄둔 것들이 많습니다... (뭐 몇 권은 어쩔 수 없이 질러버렸습니다만...) 말하자면 저 나름 안간힘을 써 가며 '지름신 강림'을 막고 있는 책들입니다.

 

 

 

 

 

 

 

 

 

 

 

 

 

 

 

 

지난 4월, 독일 작가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2>가 북인더갭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이 작품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더불어 '20세기 모더니즘 3대 걸작'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이런 작품이 아직까지 국내에서 완간이 안 됐다는 사실--뭐 알고 보면 그런 경우가 꽤 많기도 합니다만--이 우선 놀랍습니다. 덧붙여, 누군지는 몰라도 이 세 작품을 '3대 걸작'이라는 이름으로 묶은 이는 참 심한 악취미의 소유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묶어 두면, 독자는 알게 모르게 한 작품을 읽으면 다른 두 작품도 읽어야 한다--적어도 구매는 같이 해두어야 한다--는 심적 압박을 받게 되니 말입니다... 좋은 마케팅 수단이라 하겠습니다.

 

<특성 없는 남자>는 카프카의 <소송>,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엮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역시 마케팅의 한 수단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출판사 책 소개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지난 1999년 독일의 『차이트』(Die Zeit)지에는 놀라운 발표가 실렸다. 독일의 대표적 지성 99명에게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독일어 소설을 설문한 결과, 카프카의 『소송』(2위), 토마스 만의 『마의 산』(3위)을 제치고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가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렇게 엮더라도 막막하기는 매한가지긴 합니다... 그렇지만 분량이나 난이도 면에서 따진다면 [프루스트-조이스-무질] 조합 보다는 [만-카프카-무질] 조합이 훨씬 덜 막막합니다. 시기나 장소적으로도 "'20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독일 작가' 3인방의 대표작이"라는 식으로 한정이 되니 좀더 집중해서 읽을 수도 있겠고, 집중해서 읽고 나면 뭔가 남는 것도 많을 것이라는 기대도 가져볼 수 있겠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마침 토마스 만의 <마의 산 1.2>(을유문화사)과 카프카의 <소송>(펭귄클래식)을 소장하고 있으니 올 여름은 독일 작가 3인과 함께 보내볼까... 생각을 해봅니다만, <특성 없는 남자>가 출간된 두 권으로 완간이 아니라는 게 함정.

 

뭐 작품 자체가 미완이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완간을 기대해봅니다.

 

이번에 출간된 『특성 없는 남자』 1, 2권은 1932년 베를린 로볼트사에서 출간된 소설 1권의 83장까지를 번역한 1차분이다. 옮긴이는 1천여페이지에 이르는 생전의 출간분을 앞으로 순차적으로 출간할 계획이라며 “유럽의 짧은 자유주의 이후에 발생한 파시즘을 예견한 이 소설이 신자유주의 이후의 암울한 시대를 헤쳐나가는 우리 독자들에게 뜻깊은 작품으로 다가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4월에는 제가 좋아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초조한 마음>(문학과지성사)도 나왔습니다. 몇 번 언급했었습니다만 한국에서 츠바이크의 작품은 (생각해보면 이상하게도) 이른바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출간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문학동네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체스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는 유일한 예외라 하겠습니다.) 메이저급 출판사의 노하우가 책 만듦새에 반영이 안 돼서 그런지 딱 보기에 구매욕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번역의 질이나 가독성을 고려한 깔끔한 편집 등의 측면에서 안심을 할 수 없다는 점 등이 한국에서 츠바이크의 상대적으로 '낮은 인기'의 원인이라 생각됩니다. 

 

<초조한 마음>은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내고 있는 [대산세계문학 총서] 중 한 권으로 나왔습니다. 대산세계문학 총서는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 알려지긴 했으나 아직 번역되고 있지 않은 작품 위주로 그 목록이 꾸려지고 있습니다(국내 초역의 비중이 70퍼센트 정도라고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작품성이나 문학사적 의의는 충분하되 대중성은 좀 떨어지는 작품들인 거죠. <초조한 마음>도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지 못했더라면 이런 좋은 만듦새, 디자인으로는 나오지 못했겠죠... (번역은 아직 확인을 못했습니다.)

 

 

한편, 만듦새와 디자인 면에서는 좀 '구린' 느낌이 들지만, 제가 아주 재밌게 읽었던, 그래서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번역도 나름 괜찮습니다) 츠바이크의 작품은 다음의 두 작품입니다.

 

 

 

 

 

 

 

 

 

 

 

 

 

 

 

 

2013년 상반기에는 왠지 파란색 표지의 세계문학 작품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초조한 마음>이 그렇고, 다음에 소개하는 작품이 그렇습니다. 가장 최근에 세계문학 전집 시장에 뛰어든 창비에서 가장 최근에 펴낸 (최근 이래 봤자 벌써 2월의 일입니다만...) <미하엘 콜하스>입니다.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카프카가 좋아한 작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창비에서 <미하엘 콜하스>라는 제목으로 펴낸 이 작품집은 이미 책세상에서 2005년에 <버려진 아이>라는 다른 단편을 표제작으로 해서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즉 표제작이 다를 뿐 두 책은 같은 책의 번역본입니다. 다만 번역을 비교해보니 창비에서 새 번역본을 내면서 번역에 무척 신경을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책세상 판이 평이한 산문체인데 반해, 창비 판은 작가 특유의 문체를 살리기 위해 '민담체'라 부를 만한 독특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고 번역어 선택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두 번역본을 비교해서 읽어본다면 소설에서 '문체'가 갖는 중요성을 자연히 알게 되리란 생각입니다.

  

 

 

 

 

 

오늘날 독일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독일이 낳은 가장 위대하고 대담하고 야심 찬 문학가 (…) 둘도 없는 희곡작가였으며―둘도 없는 산문작가이자 소설가”(토마스 만)로 손꼽히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 1777~1811)의 중단편소설집 『미하엘 콜하스』가 창비세계문학 14번으로 출간됐다. 이 작품집은 표제작 「미하엘 콜하스」 외에 「O. 후작 부인」 「칠레의 지진」 「싼또도밍고 섬의 약혼」 「로까르노의 거지 노파」 「주워온 자식」 「성 체칠리아 또는 음악의 힘」 「결투」 등 클라이스트 중단편 여덟편 전체를 완역하여 묶어 냈다.


클라이스트 특유의 문체를 그대로 살리고자 문단 구분, 간접화법과 직접화법 등을 충실히 따라 옮기되, 잘 읽힐 수 있도록 세심하고 적확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한 것이 이번 번역본의 특징이다. 방대한 분량의 중편소설 「미하엘 콜하스」의 경우, 등장인물 및 사건전개를 설명해주는 부록을 실어 작품의 이해를 도왔으며, 본문 뒤에는 50여 페이지에 이르는 작가의 생애 및 수록작 각각에 대한 깊이있는 해설을 덧붙였다.

 

 

 

5월에는 톨스토이의 <부활 1.2>이 문학동네에서 나왔습니다. <부활>의 판본은 (<안나 카레니나> 만큼은 아니지만) 다양합니다. 열린책들에서 2010년에 나온 게 있고, 민음사에서는 일찍이 2003년에 출간된 바 있네요.

 

참고로, 민음사 판의 역자인 박형규 교수는 '톨스토이 전문 번역가'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톨스토이 작품들을 번역해내고 있습니다.

 

 

 

 

 

 

 

 

 

 

 

 

 

 

 

 

 

 

 

 

 

 

 

 

 

 

 

 

 

 

 

 

 

박형규 교수는 현재 뿌쉬낀하우스라는 출판사에서 '똘스또이 전집'을 펴내고 있기도 합니다... 만, 현재 출간된 것은 <안나 카레니나> 한 권 뿐... 이 책이 출간된 게 올 4월의 일인데, 현재(6월)까지 아직 다른 작품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네요. 기대하고 있는 것은 역시 <전쟁과 평화>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뿌쉬낀하우스 판은 단 권이라 책 부피와 무게가 들고 다니며 읽기엔 곤란할 정도라는 점에 유의하시길...

 

 

 

 

 

 

 

 

 

 

 

 

 

 

 

러시아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역자 '박형규'로 검색해서 책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안나 카레니나> 번역으로 미루어 보건대) 박형규 교수의 번역은 문장이 다소 긴 편이고 단어 선택이나 대화 번역이 옛스럽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믿고 읽을 만한 번역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전쟁과 평화>가 새로 번역돼서 나오는 게 늦어지고 있는데 (소문에 따르면 펭귄클래식에서 조만간 출간 예정이라고 합니다...) 박형규 교수가 번역한 범우사 판은 구해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책 만듦새, 디자인, 편집 등 외형적 측면에서 요즘의 '세련된' 독자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

 

 

 

 

 

 

 

 

 

 

 

 

 

 

 

하지만 뿌쉬낀하우스에서 <전쟁과 평화>가 출간된다 하더라도 박형규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될 것이 거의 100퍼센트 확실하니 당장에 읽어보고 싶은 분은 범우사 판으로 읽어도 무방하겠습니다. (펭귄클래식에서 '조만간' 번역본이 출간된다고는 하나, 이 '조만간'이 과연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니 말이지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신간은 항상 유의해서 보게 됩니다. 모르긴 몰라도 현재 세계문학전집을 펴내고 있는 출판사들 중에서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가장 '공격적인' 출판사가 문학동네가 아닌가 싶습니다. 작품 출간 페이스가 빠르다는 점이 그렇고, 전집 구성의 측면에서도 기존 '세계문학'의 리스트 안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세계문학'들을 발굴해서 펴내고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테오도어 폰타네의 <에피 브리스트>, 라파예트 부인의 <클레브 공작 부인>, 닥터로우의 <래그 타임>, 존 더스패소스의 <맨하탄 트랜스퍼> 등이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작품들이었죠.

 

그러던 문학동네가 100권을 찍고 난 후에는 톨스토이, 헤세, 나보코프, 포크너 등 기존 '세계문학' 카테고리로 돌아가는 듯해서 좀 아쉬웠는데(그 와중에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 출간은 반가웠습니다만), 최근에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 <모래그릇 1.2>을 세계문학전집의 108번째 권으로 펴냄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라고 하면, 아직까지는 국내 독자들에게 낯선 이름이겠지만 일본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사카모토 료마 등과 더불어 '국민 작가'의 반열에 올라선 작가입니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으로 불리기도 하죠. 미스터리(추리소설)란 본래 기발한 범죄의 트릭과 탐정의 개성에 의존하는 등 오락물의 성격이 강한 편인데, 마쓰모토 세이초는 뭣보다 '동기'의 묘사에 중점을 두면서 추리소설에 '사회성'을 추가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미스터리'의 새로운 경향으로서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주도한 작가인 것이죠.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들은 이전에도 간헐적으로 번역 출간이 됐었는데, 주로 추리 소설을 펴내는 동서문화사에서 몇 편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세이초 월드]라는 이름 아래, 체계를 갖춰 시리즈로 출간되기 시작한 게 불과 작년(2012년)의 일입니다. 미야베 미유키, S.S. 반 다인 등의 추리 소설을 전문적으로 펴내고 있던 북스피어 출판사와 역사비평사의 임프린트(?)인 모비딕 출판사가 의기투합, 번갈아가며 세이초 작품을 펴내고 있고, 현재까지 <짐승의 길>, <일본의 밤과 안개> 등 총 6편의 작품(권 수로는 8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세이초 작품 세계를 체계적으로 소개한다는 나름 야심찬 기획입니다만, 아직까지 판매량은 그리 높지 않은 듯.

 

 

 

 

 

 

 

 

 

 

 

 

 

 

 

 

 

 

 

 

 

 

 

 

 

 

 

 

 

 

 

 

 

한데, 같은 작가의 같은 작품이라도 어떤 맥락에서 읽게 되느냐의 문제는 나름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이초의 작품을 [동서문화사 미스터리 걸작선] 중 한 권으로 읽는 것은 [세이초 월드]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읽는 것과 다르고,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 중 한 권으로 읽는 것과 또 다른 느낌일 수가 있는 거죠.

 

추리소설은 SF와 더불어 장르 소설의 양대 산맥이랄 수 있겠는데, 세계문학전집 리스트에는 거의 오른 적이 없었죠. (출판사 이름처럼 '세계문학'이란 범주에 대해 가장 '열린' 태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열린책들에서 셜록 홈스 시리즈 중 한 권이라든지, S.S. 반 다인의 <비숍 살인 사건>이라든지,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 등을 세계문학 시리즈로 출간한 적은 있었습니다만.

 

마쓰모토 세이초의 <모래그릇> 출간을 신선한 사건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세이초가 '고전 작가'라 부르기엔 가까운 시기에 활동한--2차 대전 이후 시기에 활동한--'현대' 작가라는 점, 그리고 노벨상 내지는 (순문학에 주어지는 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지 않은 '일본 작가'라는 점. (물론 세이초는 초기작 <어느 고쿠라 일기 전>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순문학 작가로 여겨지는 작가는 아닙니다.) 

 

이런 작품이 세계문학전집 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신선한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각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리스트를 잘 살펴보면 일본 작가의 작품이 있는 경우는 (2차 대전 이전의) 근대 작가이거나 노벨상을 수상했거나 한 작가들(나쓰메 소세키,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다자이 오사무 등)로 한정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학동네만이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 이즈미 교카나 이노우에 야스시, 메도루마 슌 등 다수의 일본 작가들을 전집 목록에 넣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순문학 작가'로 간주되는 이들에 비해 '대체로 대중 작가로 간주되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리스트에 넣은 건 여전히 흥미롭습니다.

 

일본 소설을 전집 리스트에 많이 넣고 있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행보와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2009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어 히트했다는 사실입니다. <1Q84>는 '1억엔'이라는 기록적인 선인세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는데요, 어쨌든 <1Q84>는 결과적으로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2009년 12월부터 문학동네가 세계문학전집을 펴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출판사 내에서는 "하루키 팔아 세계문학전집 낸다"는 말이 나돌았다고도 합니다...

 

뭐 확실한 증거는 없고 소문과 정황 증거뿐입니다만, 실제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구성에서 일본 소설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고려하면--그리고 최근의 <모래그릇> 출간을 고려하더라도--이러한 뒷얘기는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합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세이초의 작품이 '세계문학 전집' 리스트에 올라감으로써 '세계문학' 범주의 외연이 크게 확장된 셈입니다. 어쩌면 조만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작이나 대표작을 전집 리스트에서 보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이초 이야기를 했으니 세이초의 '장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팬들은 '미미 여사'라고도 부르죠)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마침 신작이 두 권이나 나왔습니다. 앞서 (모비딕과 함께) [세이초월드]를 발간하고 있다고 소개한 북스피어에서 <진상 1.2>이란 작품이 출간되었고, <솔로몬의 위증>(문학동네) 역시 곧 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 역시 '사회파 추리소설가'로 알려져 있지요. 이런 점에서 세이초의 후계자란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영화화되어 꽤 인기를 끈 <화차>(문학동네, 2012), 9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 문제를 다룬 나오키 문학상 수상작 <이유>(청어람미디어, 2005)가 제가 읽어본 이른바 '사회파 추리소설'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그 외에 <모방범>(문학동네, 2012) 등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분량이 많아 좀 부담이 됩니다. 뭐... 미미 여사든 세이초든 워낙에 다작을 한 작가들인지라 주요 작품만 찾아 읽는다고 해도 ㅎㄷㄷ...

 

ㅎㄷㄷ 하는 와중에 재밌게 읽은 미미 여사의 소설로는 1930년대 중반 2.26 사건을 다룬 역사 SF 소설 <가모우 저택 사건 1.2>(북스피어, 2008)이 있습니다.

 

 

 

 

 

 

 

 

 

 

 

 

 

 

 

 

 

 

 

 

 

 

 

 

 

 

 

 

 

 

 

미미 여사는 한국에서도 나름 탄탄한 팬층을 거느리고 있고 <모방범> <화차> 등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스승' 격인 마쓰모토 세이초는 그닥 알려지지 않은, 뭐랄까 좀 불균형한 모양새입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와 미미 여사의 연결 고리가 확연히 드러난 책으로는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북스피어, 2009)가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가 책임 편집을 맡아 수록 작품을 골랐고, 작품들을 주제별로 묶었으며, 친절하고 간단한 해설/감상까지 곁들였습니다. 만듦새도 괜찮고 수록된 작품들이 하나 같이 재미 있어서, 상중하 세 권을 갖추고 있으면, 뭐랄까, 한 달 치 식량을 쌓아놓은 듯, 꽤 든든한 느낌을 주는 컬렉션입니다.

 

 

 

 

 

 

 

 

 

 

 

 

 

 

 

 

처음에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와 함께 '3대 모더니즘 걸작'으로 꼽힌다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언급했었는데요, 작년에 민음사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2 : 스완네 집 쪽으로>가 나온 이후, 올해 5월 펭귄클래식에서도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 스완 댁 쪽으로>란 제목으로 출간이 됐습니다. 덕분에 '골라 볼 수 있는' 재미/사치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완간은 아닌지라 마음 먹고 통독을 하려면 조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펭귄에서 나온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는 페이퍼백이 아닌 하드 커버로 나왔고, 북커버도 블랙 펭귄 디자인이 아닌 새로운 디자인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가격이 다소 '쎈' 편이지만 <스완네 집 쪽으로>(펭귄 판에서는 <스완 댁 쪽으로>로 번역)를 1, 2로 분권하지 않고 한 권 합본으로 냈다는 점에서 그렇게 '쎈' 편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뭐 이렇게 생각해야 치미는 소장 욕구/강림하는 지름신을 영접할 수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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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3-06-0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몰랐던 작품 알고 갑니다. 찜해둬야겠어요^^

시로군 2013-06-07 19:55   좋아요 0 | URL
지름신 강림에 유의하시길.. ^^;;

천사 2016-09-1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식으로 서평을 쓴다면 한 편 쓸 때마다 보양식을 드셔야 할 거 같은데... 거저 먹는 거 같아 가책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시로군 2016-12-12 16:41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뒤늦게 댓글을 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