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3개월 반 동안 [혁명]을 주제로 독서 모임을 했었습니다.
그때 리스트업된 책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빽빽하네요. 권 수로 놓고 보면 11권이나 되지만, 작품 편 수로 보면 7편. 역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혁명'들을 고루 맛 볼 수 있게 작품 선택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맛 보기'에만 그친 감이 있습니다. 왜 이게 '혁명'이냐라는 질문도 심심찮게 받았죠. 특히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안나 카레니나>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혁명'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입니다. 관련 문화 상품, 예술 작품도 많죠. 하지만 기존에 널리 알려지고 고착된 혁명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깊이'를 포기하고 '폭'과 '다양함'을 택했습니다. 당시 제가 썼던 소개글(작품 선정의 변)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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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북 막독 프로젝트 7기 :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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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과 한 단어의 진정한 만남에 기회가 필요할 때도 있다.
-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서
여러분 각자에게 ‘혁명’이란 무엇인가요? 어떤 의미인가요?
혁명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삶의 경험과 감정의 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혁명하면 덮어놓고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입만
열었다 하면 혁명을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을, 체 게바라나 레닌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폭력 사태나
쿠데타를 혁명이라 우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혀 다른 관점에서 스마트폰의 등장을 혁명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쇄술의 등장, 증기기관의
발명에도 역시 혁명이란 이름이 따라 붙곤 합니다.
다르게 풀자면 ‘혁명’이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급격한 변화’ 또는
‘밀어닥치는 흐름(물결)’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혁명은 우리들 각자에게 혁명에 동참할 거냐고 의사를 묻지 않습니다. 혁명은
폭력적이며 무차별적이며 비가역적입니다. 그것은 규모와 속도, 영향력의 측면에서 개인을 압도하며, 정치•경제 제도는 물론 일상의 관습을, 생각과
행동의 방식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바꿔놓습니다. 그 결과 개인의 정신과 신체에 무한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렬한 충격과
상처를 남겨놓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화와 충격 앞에서 우리들 각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걸까요. 적극적으로 물타기를 하는 것, 속절없이
휩쓸리는 것,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 혹은 좋았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요.
혁명의 시대를 살아간
개인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려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역사의 소용돌이에 속절없이 휩쓸리고 갈팡질팡했는지, 그런 가운데서도 어떻게 저항의 거점을
구성했으며 희망의 실마리를 찾았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막독 7기 ‘혁명’>이 저 크고 무거워 보이는 단어인 ‘혁명’과 진정한
만남을 가질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 프랑스 혁명
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청미래
- 프랑스 혁명
에밀 졸라,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시공사
- 19세기
파리 소비 혁명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문학동네; 펭귄클래식;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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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농촌운동
미야베 미유키, <가모우 저택 사건> 북스피어
- 일본 2.26 사건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문학동네; <인생> 푸른숲
- 중국 문화대혁명 등
작품 선정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혁명'이라는 단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소개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개인의 힘으로는 맞설 수 없는 '거대한 물결' 내지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바로 '혁명'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렸습니다. 혁명이라고 하면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정치적 차원만을 떠올리는데 여기서 벗어나게 된 게 고민의 결실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물결',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란 정의가 모호하고 포괄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보자면 오늘날도 얼마든지 '혁명기'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 혁명, 스마트 혁명, 신자유주의 혁명(?), 노동(유연화) 혁명(?), 자기계발 혁명 등.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같다 붙일 수가 있는데, 이게 또 나름 대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들 자신이 매일 매일의 삶에서 '돌이킬 수 없는 흐름'에 휩쓸려 있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기고 있기도 합니다.
당시 [혁명] 최종 리스트에서 결국 빠지게 됐지만 아쉬움이 남는 책
코바야시 타끼지 <게 가공선>
리스트가 한없이 늘어나는 건 막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일곱 편의 작품만을 선정했습니다만, 아쉬움도 많이 남았습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은 개인적으로 관련 책을 좀 더 읽고 싶었는데 일단은 '프랑스 혁명' 관련 책을 두 권을 선정했다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노명식,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책과함께, 2011). 따로 프랑스 혁명에 대해 공부를 좀 해보고 싶어서 구입해둔 책인데, 거의 못 읽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예전(1997)에 나온 책을 개정판으로 낸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서술 방식이나 문장이 좀 전형적이고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서술이 '객관적' 역사 서술일 터인데, 로버트 단턴 류의 재기발랄한 착상과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요소들을 연결시키는 흥미진진한 서술 방식이 더 익숙해져서인지 잘 읽히질 않았습니다.
최근(2013년 6월)에 출간된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도 눈여겨보고 있는데, 노명식 교수의 책과 더불어 읽어보려 합니다. 이번에는 느린 호흡으로 재도전!
그런데 바로 어제 (정말이지) '신기한' 책을 하나 발견, 프랑스 혁명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났습니다. 바로 아래의 책입니다.
(로베스피에르를 다뤘다는 점에서) 제목부터 끌리는데, 역사가도 아닌, 프랑스 작가도 아닌 한국 소설가가 '로베스피에르'를 소재로 글을 썼다는 게 무척 흥미롭습니다. 혹시 알레고리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정말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라고 합니다. 덧붙여 출판사 책소개에 따르면, 한국에서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쓴 소설을 최초라고 합니다. (뭐 이상하진 않네요.)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읽어볼만한 다른 책들은 다음의 것들이 있습니다.
로베스피에르는 <두 도시 이야기>나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책을 읽을 땐 그 존재감을 잘 느낄 수 없었던 인물입니다만, 어쨌든 프랑스 혁명의 '주역' 중의 '주역'이라고 하겠습니다. (<두 도시 이야기>는 픽션이라 역사적 실존 인물이 거의 등장을 하지 않고,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는 미라보 백작이 가장 존재감이 있는 편입니다.)
한편, 아무리 로베스피에르가 프랑스 혁명의 '주역'이라고는 하나 이건 교과서에서 주입받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적극적 관심을 갖게 되려면 아무래도 다른 계기가 필요한데, 저에게는 그 다른 계기가 일본 TV 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였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만화가 원작인데, 만화가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을 많이 참조했다고 합니다. 물론 오스칼, 앙드레는 가상인물이지요.
TV 애니메이션에서는 오스칼이 로베스피에르와 조우하는 장면이 짤막하게(하지만 인상 깊게) 나옵니다. 그리고 생쥐스트가 무분별한 폭력의 화신으로 역시 짤막하게 등장하죠. 츠바이크의 원작에서는 로베스피에리나 생쥐스트는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츠바이크의 원작에서 꽤 비중 있게 다뤄지는 미라보 백작이 TV 애니메이션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혁명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중요 인물은 당통입니다. 거기에 서준환 소설 제목이 <로베스 피에르의 죽음>이어서 곧바로 떠오르는 소설은 게오르크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입니다.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중 한 권으로 올 초에 출간이 됐습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독일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 상'이 있어서 익숙한 이름인데, 생각해보면 신기하게도 이런 경우 대체로 수상자가 더 유명하고 정작 상이 이름을 따온 당사자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듯...... 프랑스의 '공쿠르 상'이 또 다른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