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 - 그들은 왜 나를 수집하는가?
김주완.이승우.임원기 지음 / 거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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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인의 방은 슈타지(Stasi)라고 알려진 동독의 국가보안부 비밀경찰의 감시를 소재로한 2006년도  독일 영화였다. 슈타지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수십만명의 직원을 고용해, 거의 40년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염탐했다. 내친 김에 영화 얘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비밀경찰 비즐러는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이자 인기 여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중대 임무를 맡고,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 영화 트루만쇼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획된 쇼 안에 자기의 모든 것을 노출해야 했다면, 두 정보 기관에 의해 두 사람만의 은밀한 대화까지 모두 노출된다. 국가만을 위해 존재하는 냉혈 인간 비즐리는 차츰 그들의 삶에 동화되어 가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그 해 내가 보았던 영화 중 최고의 영화였다. 

 

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 책의 제목과는 달리 이 책에는 비밀이 없다.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킬 뿐이다. 예를 들어 추석 날, 으례이 관행처럼 뉴스 헤드라인에, 교통 정체와 고향 소식을 전해주는 것처럼, 우리가 생활 속에서 대하는 수없이 많은 개인정보 침해(?) 사례들을 보고서처럼 정리하여 나열한 것 뿐이다. 

 

옥션이 털렸을 때에도, 네이트가 털렸을 때에도, 현대카드에서부터 여러 은행권의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들이 해킹에 마구 털려나가고 있을 때조차도, 우리는 태연했다. 주민등록번호는 동네 만화 대여점 회원 카드를 만들 때조차 으례이 제공하는 개인식별번호이다. 누구나 다 안다. 그리고 주민번호와 이름의 조합이 있으면 신분 조작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는 거라는 걸. 피해와 침해를 동시에 경험한다. 아이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부모의 주민번호를 이용해 각종 게임 아이템들을 사들이고, 어렵게 모은 게임 머니를 어처구니 없이 털리는 아픈 기억들을 경험하면서 커간다. 엄마들은 신규회원 쿠폰을 적용하기 위해 가족의 주민번호를 이용해 인터넷에 새 아이디를 만들고 쇼핑을 한다. 그것이 일상이다.

 

우리는 안다.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개인식별번호인 주민등록번호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그것에 의해 어느 곳에서나 개인이 식별되고 있는 전세계적으로 전래가 없는 제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단지 무디어지고 무감각해져 있는 것 뿐.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번호는 은행, 세무소 등의 몇몇 기관을 제외하고 그 번호를 개인 식별을 위해 요구하는  것 자체가 범죄이다. 지금은 오랜 캠페인 덕에 인터넷 가입시, 주민번호를 묻는 일이 줄어가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이미 무수히 많은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하여 주민번호와 이름과 주소와 전화번호와 패스워드의 조합을 선택의 여지 없이 제공해주어야 했고, 그것들을 저장해왔던 서버들을 해킹으로 모조리 털렸다. 알려진 것은 일부일 뿐.  둔감한 보안관리 담당자들은 해커가 남기고간 시그내처를 확인도 안한다. 그분이 다녀가셨어도, 보안 담당자의 인사에 득이될 게 없으니 팀 내, 회사 내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일상일 것이라는 것도 훤히 짐작된다. 이미 내 개인정보는 한국의 각종  "선진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전동남아인이 사이좋게 나누어 쓰고 있다. 어느덧 한국의 네티즌들은 이런 나의 개인정보 남용에 대한 안전 불감증을 초월된 자세로 받앋들일 줄 알게 되었다. 

 

그런 마당에, 공공 장소에서의 CCTV,  본인 스스로 더 많은 남들에게 노출하기 위해 공개하는 SNS 콘텐츠들, 구글이나 애플이 수집하는 자신의 행적들, 이런 저런 데이터 잔해들을 모아 온라인 표적광고에 이용되는 빅데이터에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을 가질 여유가 없다. 공공 장소에서는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말면 될 것이고, 내 행적을 표적 마케팅에 이용하는 것이 두렵다면 휴대폰의 GPS는 항상 꺼두면 될 것이고, SNS에서는 개인을 드러내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된다. 어렵지만 나름 개인이 주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주민번호를 만능의 개인식별에 이용하는 제도적 헛점은 이미 만연되어 불감증을 불감증으로 느끼지도 못할 만큼 생활의 부분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개인식별번호는 전아시아인과 사이좋게 공유하고 있다. 그게 대한민국 사생활의 현주소이고, 책을 읽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더 이상 비밀이 아니고,  그 언제도 비밀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은 비밀이어야 할 것들을 합법적으로 노출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에 대한 불감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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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뇌 - 우리의 자유의지를 배반하는 쾌감회로의 진실
데이비드 J. 린든 지음, 김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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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뇌의 연구 분야는 사람의 마음과 심리의 동력이라, 주제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눈부신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각종 의료장비의 진보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는 무궁무진한 뇌 속에 대한 연구에 보다 가속을 붙여준다. 이 책은 우리가 통제하고자 하지만 마음 대로 통제되지 못하는 부분, 마약, 음식, 도박, 섹스, 운동 등 중독을 불러오는 쾌감을 통재하는 뇌의 작용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다룬다. 


충실하고 친절한(그러나 여전히 어려운) 원리적 설명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전문 서적이 아닌 이상 뇌 기능의 특정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신경생리학적 기초를 일반인이 갖추고 있다는 전제 하에  쓰여진 책도, 그렇다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타협한 책도 아닌, 독자들에게 기어이 이해시키고자 하는 집념으로, 글의 이해에 필수적인 내용을 설명한다.  기술 삽화도 만족스럽다.

 

그래서 휘리릭 빨리 읽어지지 않는 책이다. 그림과 설명 이런 걸 대충 읽고 넘어갔다가는 그 다음장에 펼쳐지는 흥미로운 내용들에 대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뇌의 각 영역을 지칭하는 명사들은 발음조차도 힘든 한자어의 조합과 복잡한 영어의 약어로 되어 있고, 뇌의 각 부분들에서 분비되는 화학적 상호작용들은 집중을 요구한다. 차에서 읽다가 뒤에서 소근대며 수다떠는 여대생들에게 싱경질 낼 뻔했다. 결국 읽으면서 나는 수도 없는 고뇌와 맞부딪친다. 어려운 말로 명칭화된 뇌의 각 부분 부분들을 정확하게 머리속에 발음하며 기억하며 읽을 것인가, 그냥 대충대충 설렁설렁 볼 것인가. 대충대충 봐도 재미있지만,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사실. 그러나 더 재미있기 위해 이해해야 하는 신경과학적인 동작 원리는 결국 쓰지 않던 뇌의 어느 부분을 마구 흔들어 깨워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각 챕터들은 각각, 약물, 섹스, 음식 등 서로 독립된 주제를 다루며, 쾌감회로의 작동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연구 내용 등을 독립적으로 서술하면서도 결국은 모든 중독의 대상, 쾌감의 대상이 되는 주제들이 하나의 일관된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러한 지식의 탐구 과정이 구조적으로 매우 잘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서장에서는 우리가 어떤 경험에 대해 즐겁다고 느낄 때, 이는 시간적 진행이 서로 다른 몇 개의 과정들을 가동시킨다. 1. 즉각적 쾌감을 통해 그 경험을 좋아한다는 2. 광경, 소리, 냄새와 같은 외부의 감각적 단서들과 당시의 생각과 감정과 같은 내적 단서들을 그 경험과 연합한다. 3. 그 즐거운 경험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쾌감은 쾌감회로와 다른 뇌 영역들과의 상호 연결을 통해 기억 연상 감정, 사회적 의미, 장면과 소리와 냄새 등으로 쾌감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때문이며, 쾌감 회로와 맞물려 있는 연합 지각과 감정의 망을 탐구할 것이라고 밝힌다.  이러한 서장의 주장은 개별 행동의 중독을 소개하는 각각의 챕터에서 다시 자연스럽게 만난다. 


우선 이해해야 할 뇌의 부분은 VTA(복측피개영역)로, VTA 뉴런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분비를 자극하고 다른 뇌 영역들에도 보내고, 다른 뇌 부위들에서 전기 화학적 정보를 받는다. 우리는 VTA의 도파민 뉴런들을 활성화시켜 그 표적에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경험을 즐겁다고 느낀다. 


그 첫번째로 중독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향정신적 약물이 다양한 문화에서 사용된 역사적 유래를 재미있게 소개하고, 향정신성 약물의 성분들이 인간에게 주는 쾌감과 그 원리를 흥미롭게 파헤친다.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아편 중독자임을 암시하는 글들을 남겼고, 아편은 기원전 3천년 메소포타미아에서 나타나, 고대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의료 및 종교적 목적으로 쓰여왔다. 고대 이집트의 의학서에서는 아이들의 수면보조제로 권하며 어머니의 젖꼭지에 바르라고 쓰여있다. 알코올의 확산을 막기 위해 금주 운동이 급물결을 탄 1880년대의 아일랜드는 당시 합법적인 판매가 가능했던 에테르의 흡입이 크게 유행했던 적이 있으며, 페루 아마존의 현지 샤먼들은 아야후스카라는 환각성 약초 음료를 제조하는 비법이 전해진다. 약물의 도취는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성향이 아니고, 새, 코끼리 원숭이 모두 땅에 떨어진 뒤 자연 발효를 거쳐 알코올을 만들어낸 과일과 딸기류를 열심히 찾아다닌다.


이러한 향정신성 물질들은 모두 내측전뇌 쾌감회로 특히, 도최감의 핵심인 VTA의 도파민 뉴런들을 활성화시킨다. 이 도취감의 감각적 경험이 뇌 회로에 기억을 적어 넣고, 기억의 흔적은 뇌 속의 엔돌핀-오피오이드 체계가 통증, 지각, 기분, 기억, 식욕, 소화기관의 진경성 조절 같은 다양한 기능에 밀접하게 관여함을 설명한다. 


데이비드 J 린든은 중독 위험도는 사회문화적 요인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는 의견을 모든 장을 통해 한결같이 주장한다.  중독은 학습의 한 형태로, 행동과 쾌감 사이에 강한 연합을 만들어 내며, 중독의 과정은 좋은 느낌에서 시작하여 내성으로 발전하고, 의존성이 높아지면 중독이 심해지고 갈망이 나타나면서 약물이 제공하는 도취감은 점차 미약해진다. 쾌감은 욕구로 바뀌고 좋다는 느낌은 부족하다는 느낌이 된다. 


중독성 약물은 자연의 어떤 보상물보다 더 강하게 쾌감회로를 접수하고 활성화시켜 약물 사용에 관한 기억을 연합망 속에 깊이 새겨 넣는다. 이 기억들은 약물을 연상시키는 외부의 단서들과 내부의 정신 상태들에 의해 강하게 활성화되고 감정 중추들과 연결된다. 


음식 또한 약물과 같이 쾌감회로를 활성화시킬 수 있으며, 비만은 음식 중독에 기인하며, 약물 중독과 생물학적 기초를 공유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체중이 빠지면 식욕을 올리고 에너지 소비를 낮추고, 체중이 증가하면 식욕을 낮추고 에너지 소비를 높임으로써 체중 항상성을 유지한다. 체중 항상성을 유지시켜주는 생물학적 현상의 일부는 지방에 의해 생산되는 렙틴 단백질로 설명하는데, 신체 내 지방조직이 늘어나면 렙틴 수치가 상승되고, 반대의 경우 렙틴 수치가 하락한다. 늘어난 렙틴 수치는 섭식을 억제하고 대사와 활동을 증가시키고 반대의 경우 섭식의 증가와 에너지 사용의 감소를 유발시켜 보상성 체중 증가를 가져온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선택 압력에 맞서 싸워온 우리의 섭식 항상성 조절 회로들은 살을 뺀 상태를 유지하는 일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역시 체중과 관련이 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설치류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유동물의 식욕을 자극, 과식을 촉발할 수 있는 반면, 심한 스트레스는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섹스의 쾌감을 설명하는 장에서 린든은 뜬금없이 자신이 오래전부터 좋아해온 사랑의 시를 소개한다.


육체적인 관계를 원하지 않음.

단지 내 마음과 섹스할 사람을 원함

-구인광고 <L.A 위클리> (1979년경)


낭만적 사랑의 정신적 생리적 양상은 강렬하고 아찔한 쾌감, 식욕 저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왜곡된 판단과 세계에 대한 왜곡된 판단, 집착, 성적 욕구이며,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방 뿐 아니라 나 자신을 더욱 좋아하게 된다는 그의 의견은  사랑에 빠졌을 때 찾아오는 강렬하고 황홀한 쾌감은 도파민계 쾌감회로, VTA와 그 표적 영역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비판 기능이 왜곡되는 이유는 판단 중추의 하나인 전전두피질의 비활성화와 사회인지에 관여하는 두 피질 영역인 측두극과 두정측두 결합부의 비활성화에서 기인한다는 그뇌과학적 설명을 읽으면 더욱 흥미롭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사랑의 매개체인 전전두피질의 비활성화는 망상-충동 장애에서도 확인된다는 것이다. 음하하 사랑은 망상 사랑은 충동 뭐 그것도 말이 된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의 강렬한 초기 단계는 9개월에서 2년까지 지속되고, 그 후에는 대부분 강렬함이 줄어든 사랑의 동반자 형태로 바뀐다는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린든은 오래된 연인들이 낭만적 사랑에 의해 활성화되는 뇌 체계가 성적 흥분에 의해 활성화되는 체계와 분리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쟁한다. 새로운 사랑과 오르가즘 모두 도파민을 사용하는 내측전뇌 쾌감회로를 강하게 활성화시킨 연구결과를 토대로 섹스 중독을 설명한다.  


섹스 중독 역시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의 단계적 과정을 밟으며, 필요한 섹스를 하지 못하면 신체적, 심리적 금단 증상을 느낀다고 한다. 가장 두드러진 양상으로 좋아하는 느낌이 점차 원하는 느낌에 자리를 내준다는 것인데, TV 막장 드라마의 단골 조연으로 등장하는 이상한 여자들도 이런 원리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오르가즘의 여운은 뇌하수체가 시상하부의 명령에 따라 분비하는 옥시토신 호르몬에 의해 강화되는데, 옥시토신이 신뢰에 미치는 영향은 대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을 수용하려는 태도의 상승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니, 몸속에서 분비되는 화학적 성분과 뇌의 작용이 인간이 가진 복잡한 가치와 태도를 결정하는 요인임을 하나씩 확인하는 재미는 특별하다. 


감정적 고통은 비유가 아니라는 사실도 뇌과학이 밝혀냈다. 오르가즘을 비롯한 다른 감각과 마찬가지로 통증을 인지하는 뇌의 부위는 통증의 찌름, 차가움 뜨거움과 같은 구체적인 성질에 반응하는  변별적 경로와 감정적 요소로 자각하는 요소의 두 가지 경로로 되어 있는데, 뇌 활성화의 관점에서 감정적 고통은 신체적 고통과 부분적으로 겹친다. 


그의 쾌감 탐구는 운동, 명상이나 요가와 같은 영적 행위, 기부 등의 선행적인 행위에까지 이어진다.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쾌감과 연합 학습의 상호작용은 쾌감 회로에 장기적 변화를 불러오는 경험을 바탕으로 임의적 보상물과 추상적 관념을 즐거운 것으로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행동과 문화를 탄생시킨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나, 불행하게도 그 과정에서 쾌감은 중독으로 변질되기도 한다는 그의 마지막 통찰에 이르면 아 하는 탄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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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보는 눈 - 손철주의 그림 자랑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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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손철주에 대한 언급을 얼마 전에 읽은 김훈의 수필집 <바다의 기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김훈과 같은 신문사에 근무할때 화가 오치균을 취재하러 갔는데, 거기에서 김훈은 미술비평가 손철주와 화가 오치균 두사람의 대화를 잘 포장해 글로 옮겨 적는 일을 했던 모양이다. 김훈은 역시 오치균과 오치균의 그림을 보며 본인이 느낀 것들을 그림 못지 않게 더 감각적이고 사변적인 언어로 묘사한다. 내가 느끼기에, 현재 시점엔 그의 그림은 미술 시장에서 대재벌 투기꾼들에게 점령당한 듯 상상도 할 수 없는 고가이다. 다행히 바다의 기별 뒷면에 몇 점의 그림이 첨부되어 있어 스크린이 아닌 인쇄된 형태의 그림을 만나볼 수 있었다. 김훈이 글에서 표현했던 그만의 느낌을 하나의 그림으로 공유하니 비록 작게 인쇄된 그림이지만 감상의 폭이 풍부해짐을 느꼈다.

 

작년 미국 여행때 많은 미술관을 여행하면서 느낀건데, 미술 책에서만 보았던 유명한 세계적인 화가들의 유명한 컬렉션 앞에서  무엇을 어찌 감상 해야 할 지 모르는 무지랭이가 그저 멀뚱멀뚱 서서 영어로 된 설명과 씨름하는 것은 조금 아쉬운 일이었다. 가이드를 따라 다녀 보기도 했지만 작품 자체 보다는 작품 자체의 상품성과 소장과 구입 배경, 잘해야 작가의 생애나 그림에 따른 일화 정도이고,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려니 제대로된 감상이 힘들었다.


집에도 그림 감상책들은 많이 있지만, 손철주의 신간 소식은 반가왔다. 얼마 전, 해남 윤씨 박물관에서 고산 윤산도와 윤씨 가문의 그림 작품들을 감상할 때 무척이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윤두서의 자화상이 실려있고, 저자 손철주 이름을 바다의 기별에서  접한 터였다. 

 


 

 

그림을 설명하는 손철주에 입담은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재치있는 문체와 풍부한 어휘의 사용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한 조각 꽃잎이 날려도 봄은 깎이는데 / 바람에 만 점 흩날리니 진정 시름겹구나' 시구로이 뭐 더할 나위없이 절창인데 되내어요 보면 어떤가 낫살 든 자의 엄살기가 슬며시 묻어난다. 송나라 무진 왕인섭의 토로는 더 안쓰럽다. 땅을 쓸고 '꽃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건 /그 꽃잎 먼지 묻을까 애처로워서라네 아끼는 마음도 유만부동 이 정도면 속이 간지러워진다.

 

멀쩡한 사내들이 왜 봄날의 꽃 앞에서 앓는 소리를 해댈까. 아무려나 다 봄이 짧은 탓인데 어쩌겠는가 봄은 짧아서 황홀하고 황홀해서 혹 간다. 꽃인들 다르랴 열흘 붉기가 어려울 때 꽃은 서글프게 아름답다. 꽃구경에는 남녀 안 따진다. 그린이는 조선 후기를 살다가 쓰나 남은 인적이 드문 이유 신이다 그는 촉촉한부터래 맑은 색감을 잘 우려낸 화가다 몸은 곧 가고 꽃은 시진다 우짜라고 꽃 향기 나는 친구가 그립다명 서둘러 불러야 한다.

포동춘지 라는 그림과 함께 어울어진 글. 그림과 글이 이렇게 멋들어지게 어울린다면 책도 하나의 예술인 거다.

 

군데군데 약간의 교양(?) 코너도 있다.  동양은 산수화의 세력이 강하고 서양은 인물화의 역사가 길다고 한다. 손철주는 서양의 그림에서 인물은 크고 자연은 작은 반면 동양화는 반대로 자연이 크고 인물이 작은 경향을 '동양은 자연을 받들어 모셨고, 서양은 자연을 데리다 썼다'고 해석하고 있다.  또한 수묵에 존재하는 먹색 또는 먹빛이라는 용어를 수묵의 색깔을 예를 들며, 수묵에 있는 여섯 가지의 기본 색 즉,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흑백, 진한 것과 옅은 것을 구분하는 농담,  촉촉한 것과 마른 것의 차이인 윤갈로 구분했다. 빨주노초파남보만이 색깔이 아니며, 흑백과 농담과 윤갈의 마티에르를 정서적 색채로 치환하고 우려낼 줄 아는 민족만이 수묵의 묘미를 알아챈다며 수묵화를 사랑해온 우리 선조들과 수묵화를 동시에 예찬한다. 수묵은 회화에서 채색의 상대적 개념이고, 사물의 거죽보다는 사물의 뜻을 그리는 방법이며, 그 지향성 중 몇 번의 붓질로 대상의 본질을 잡아내는 감필화와 같은 단순과 담백의 경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회화 예술을 민족성의 철학과 연결시킨다.

 

<귀어도>에서는 사이좋은 관계를 넘어 스스로 자연이 된 존재가 보인다. 여기서 정작 놀라운 것은 화푹에 감도는 저 습윤한 기운이다. 물기가 느껴져 축축하고도 미끄러운 감촉 말이다. 어쩌면 저토록 흥건한 먹색이 우러났을까.

 

빗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축축한 귀어도와 갓을 쓰고 낛시대를 어깨에 걸고 비를 맞으며 돌아가는 나그네. 노래 가사 같은 풍경,  손철주의 언어적 변주와 작은 그림이한 장이 주는 감성적 터치에 탄성 나온다.

 

책에 실린 그림은 약 80여개 안팎이고, 대개 18세기에서 19세기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1부와 2부는 인물화, 3부는 풍속화, 4부는 산수화로 대략적인 분류가 되어 있지만, 그림의 종류에 따른 분류라기 보다는 작가의 주제에 따른 분류라고 보여진다. 풍속화 속에 인물이 있고, 산수화 속에 인물이 있고, 인물화 속에 풍경이 있고 서로 서로 딱히 분류할 수 없게 조화를 이룬다. 

 

선조들의 그림에는 그린 이가 전하고자 하는 뜻이 있고, 그 뜻을 알알이 글자로 새겨넣었다.  한자 까막눈인 나에게 그림 속의 한자는 글자가 아니라 그림이다. 문맹에서 벗어날 생각은 않고, 그저 피할 궁리만 했던 학생시절의 나태함을 평생토록 이고 지고 사는 그림 속의 한자 풀이는 구세주다(아이들에겐 빡치게 공부를 시켜야 한다. 평생 고생할 줄 지들은 아직 모르니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행복하다. 복잡한 현실을 잊고, 선조들의 정신 세계속을 유영하듯 그림에 한참동안 빠져있다 나오면, 다시 또 손철주의 입담이 재즈 음악같은 변주로 색다른 풍부한 감상적 세계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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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위의 신 - 종교는 어떻게 인간의 성을 왜곡하는가
대럴 W. 레이 지음, 김승욱 옮김 / 어마마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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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는 은밀하고, 사적이며, 개인적인 행위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종교 안에서든 종교 밖에서든, 미숙하든 성숙하든 매우 개인적이인 일이며, 어느 문화에서건 마구 드러내 놓고 하거나 떠벌이지 않는다. 섹스의 속성이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것처럼 육체에 대한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욕망임과 동시에,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자연을 느끼는 것만큼 정신적인 충족감을 주는 행위이다.

 

   그러나, 섹스를 논하려면 욕망의 해소라든가 충동의 해결을 위한 관점 이전에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두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애정, 사랑, 친밀감, friend with benefit, 다 좋다. 그러나 유전자 전달이 목적이 아닌 이상 섹스의 목적은 사랑의 완성에 있고, 성적 욕망 역시 대상에 대한 정서적 유대감을 토대로 하여, 성행위를 통해 이를 더 강화시킨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성을 필요 이상으로 충동의 해소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 역시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내가 너무 고루한가. 역사 인류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종교가 섹스를 억압해 온 건 사실이지만, 현대 사회, 특히 최근 10여년 간, 성이란 자연스러운 것이며, 누구나 자유롭게 성충동을 해소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몽을 넘어 과도하게 주입되어, 지켜져야 더 가치있을지도 모를 내밀함마저 무방비하게 준비 없이 노출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섹스란 게 두 남녀 혹은 동성 커플의 친밀감과 애정의 완성과 확인을 위해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묶는 의미있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인스턴트적으로 만나서 쉽게 섹스하는 일이 합법적인 것은 물론이고, 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 시대에, 종교가 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조금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당장 컴퓨터를 켜고 바깥 세계로 연결된 인터넷에 접속해보자. 온국민의 시작화면인 네이버 홈의 뉴스 기사 하나만 클릭해도, 상품화된 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최고의 부스를 자랑한다던 스스로 지성인임을 자처하던, 보수를 대변하는 조선일보 인터넷 판에서는 주요 부분을 클로즈업 하고 유혹하는 반나의 성인들이 사이즈 확대며 성만족을 위한 각종 상품들과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한 광고를 백두대낮 어린 아기들도 클릭할 수 있는 환한 컴퓨터 모니터상에 아무렇지도 않게 광고하는 시대에, 종교가 성을 억압한다니. 조금 시대 착오적인 주장이 아닌가.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들은 개인의 은밀한 성생활에 대한 자료를 심리치료사로서의 임상 데이터에 기반으로 한다.즉, 결혼생활 혹은 다른 정신적 문제를 가진 환자와의 심리적 임상치료 과정에서 나온 데이터와 무신론적 종교 인류학을 결합해서 지나치게 해석한다. 

 

  물론, 종교를 지난 몇천년간 인류 문화를 지배해온 역사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청소년기의 자위나 혼인 전 성교, 구강섹스, 동성연애 등에 대한 죄책감이 성적 무지로부터  비롯된 종교적 억압 때문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종교 내에서는 신이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에, 만일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삶을 지배하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성교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은밀한 행동을 할 때, 설령 그게 나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더라도 예를 들어 똥이나 오줌을 누거나  밥을 버리거나 몹시도 게을러지거나 할 때,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신에게 수치심 혹은 난감함을 느낄 수는 있지 않을까. 설령 종교가 그런 행위들을 억압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굳이 성적 억압을 종교적 억압이라는 틀에 맞추어 무신론을 주장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성충동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남녀의 시각이 다르고 나이에 따라  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기 때문에 학계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게 맞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사랑의 확신을 얻었을 때 서로의 몸을 허락하는 종교적 원칙이 그리 잘못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나도 교회를 한두 해 다녀 봤지만, 어느 교회에서건 목사가  강조하는 것 중 우리의 세속적 생활을 통제하는 범위 내의 것은 십일조를 내야 한다, 건축 헌금을 내야 된다는 종류의 것 뿐이지, 성적인 행위까지 통제의 범위 내에 두는 것은 별로 보지를 못했다. 아마도 미국의 청교도적인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아직까지도 종교편향의 사람들에게는 섹스에 대한 무의식적 죄책감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저자의 주장이 조금은 시대 착오적인 것이라는 나의 견해를 제외하고는 이 책은 전체적으로 종교에 대한 납득할 만한 사실을 근거로 실랄하고 날카로운 비판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그 예로, 성직자의 성추문이 교회 조직 내에서 어떻게 보호되고 성 학대 사건을 은폐하는 지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의사,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교사 등 남을 돕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고객과 성관계를 맺으면, 즉시 해고되고 심지어 형사법으로 고소, 처벌될 수도 있지만 수백년간 철통같은 성직자 보호 조직 속의 카톨릭 성직자들이나 조직 내 자금 조달 능력과 리더쉽으로 영향력이 큰 목사의 경우, 오히려 종교 조직 내에서 보호 받으며 더 나아가,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이 교회의 잇권을 가진 이사회에 의해 다른 명목으로 불명예스럽게 쫓겨난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섹스와 자위 행위에 대해 종교에서 전하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섹스를 막지는 못하기 때문에 죄책감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역겨움을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은 있지만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섹스를 하는 도중 느끼는 죄책감보다는 비 종교적 이유, 즉 이성 친구가 없다거나 하는 이유로 맘대로 섹스를 하지 못해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더 크지 않을까.

 

   이 책은 무신론적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하기 위해 종교 자체의 부정적 측면들을 실날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다. 종교는 신자들을 통제하고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  교회를 떠남으로써 생기는 사회적 고립을  복종의 메시지와 함께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막는다. 실제로 사이비 종교나 이단으로 불리는 종교들 내의 유대 관계는 가족 이상의, 아니 가족을 파괴할 만큼의 결속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단이 아니어도 기독교는 특히 여러가지 방식으로 교회 내에서 돈독한 인간관계를 맺도록 장려한다. 그들은 그곳을 빠져 나올 수 없다. 종교 속에 감금되어서가 아니라, 고립이 두려워서이다. 종교라는 이름의 끈끈한 유대관계와 결집이 달콤해서 중독되는 것이다. 종교가 주는 아늑한 사회성, 그들이 이미 정을 붙인 그만의 세상에서 소외되는 고립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228
보편적인 종교는 혁명적인 생각을 내놨다. 종교가 문화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 보편적인 종교는 마치 침략자처럼 행세하며 부족 종교를 마구 없애버리고 부족 문화를 감염 시켰다.

 

231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종교와 질병은 항상 협조관계였다. 종교는 기도를 통해 질병의 치유를 약속하고 혹시 질병에게 패하는 경우에도 대신 천국을 약속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문화인류학 관점에서나 혹은 생물적 존재로서의 관점에서나 일부일처제가 반드시 궁극적 합의에 도달한 인류 최후의  문화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유인원과 모든 동물에게서 동성애, 난교, 자위 등의 성적 다양성이 발견되었고,  수렵 채집 문화의 부족에게서는 결혼이나 나이의 제한이라는 제도에 구속되지 않는 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성문화가 관찰되었다. 남녀가 비교적 평등했던 수렵 채집 문화를 깨고 나타난 농경문화의 종교는 양적 팽창을 통해 인류 전체의 성문화와 이성 간의 관계를 지배하였다. 농경 사회에서 시작된 보편적 종교는 지배력을 확장하기 위해 성적 억압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였고, 불교, 기독교, 카톨릭, 이슬람을 막론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남성의 지배 체제 밑으로 종속시켰다는 점을 저자는 새삼 주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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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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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살인. 궁금했다. 첫장을 넘기기도 전에  표지의 띠지는 이야기의 패를 다 보여준다. 그렇다면 스릴러는 아닐터. 수능 5등급의  성적과, 외모도 몸매도 딱 5등급인 고3의 여자아이를 통해 바라본 사회의 부조리가 냉소적인 시선으로 구석 구석 현대인의 치부들을 조롱하면서 이야기의 반을 흘려 보냈다. 이 책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반이 되도록 스토리의 진전은 없고, 나는 궁금했다. 참을 성이 없는 나는 뭔가 단서를 잡기 위해 맨 앞으로, 혹은 맨 뒤로 표지로 왔다갔다 해본다. 뒷장 표지 뒷면에 오늘의 작가상 심사평에서 가져온 짧막한 인용문들이 눈에 띈다.

 

   펀치는 비도덕적 사회 속에서의 도덕적 인간에 대한 항변과 변호를 일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소한 도덕적이다. 도덕적 사회 속에서의 부도덕한 인간에 대한 비핀과 단죄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은근히 도덕적이다. 문학평론가인 김이현 교수의 평이다. 평론가 다운 문장이다. 도덕과 비도덕이란 말을 끌어들이기에는 조금 염치없는 것들, 너무나 만연되어 있는 부조리들, 교육제도, 성형시장, 계급적 특권의식 등을 문제삼지만 적어도 도덕의 이름으로 단죄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세 명의 소설가 심사평에 비해 가장 공감간다. 고 3 아이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의 부조리는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리고 도덕적이냐 아니냐를 따질 만큼 음지의 것이 아닌 사회 전체에 만연된, 한 나라의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와 취향을 그대로 반영한다.

 

  우선 교육 문제. 어느 세대 어느 문화 어느 나라에서도 결코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항상 문제라고 혀를 끌끌 차는 것이 교육 제도이다. 내가 태어난 이래로 선거 때마다 교육 개혁이 공약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들의 인권이 보장된 선진 유럽에서는 기초 학력이 부족하여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가 없다고 학교와 선생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들 엄살이다. 나는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여 선거 운동을 할 때 미국에 있었는데, 미국의 참담한 공교육 현장을 지적하며 TV에서 한국의 교육제도와 교육열을 운운하며 일부 본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던 게 생각난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학생 인권이 보장된 몇몇 나라의 학교 교육 내 기초 교육의 부재는 교육의 목적 자체를 부정하는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엄마들의 치마 바람과 무너진 공교육, 왕따 문화, 초라한 교사들의 위상, 대입 위주의 교육관 그 속에서 아이는 부모의 헛된 기대라는 감옥에서 아무 미래도 꿈꿀 수 없다. 특히 자신이 가진 성적과 외모로는 부모가 가진 특권 계급 이하로 내려가고, 그 이하의 계급에 걸맞는 소비와 문화 속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삶의 희망 마저 포기하게 만들었다. 핵심은 그거다. 최고가 아닌 아이들에게서 미래를 빼앗아 버리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

 

 외모지상주의. 우리의 당돌한 여주인공 방인영은 세태에 순응하는, 공부를 못하면 얼굴이라도 예뻐지고 날씬해지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 단순한 사춘기 소녀가 아니다. 걸그룹들의 얼굴 변천사들은 이미 식상할 뿐이고, 말라깽이 단짝 친구의 다이어트도 관심 밖이다.  너무 못생긴게 죄가 되는 건 원숭이들이 우글거리는 대한민국에서' 레알'이다. "공부하기 싫지?" 몇몇 철부지들이 대답한다. "네." "그럼 성형이라도 해." 수업 중 대화 내용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류의 대화가 딱히 우리 사회에서 삐딱한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짧고 강렬하게 작가는 현실을 꼬집는다.

 

    작가는 가족의 단절을 구구 절절 묘사하지 않는다. 방 변호사는 소파 아니면 서재에 갇혀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서재에 갇혀 있을 때, 우리집은 환하다. 짧지만 강렬하게, 가족 내 불통의 단면을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극히 한국적 풍경이자 한국적 정서다. 친구 하나는 휴일에 남편이 하루 종일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뒹굴던 자리에 푹 파인 자국을 보면 소파를 내다 버리고 싶어 진다고 했다. 우리는 남편들 흉을 볼 때, 소파와 리모콘을  핵심 키워드로 한다. 소파와 한몸이 된 남편들이라고 깔깔거리면서 단지 소파와 리모콘과 남편만을 소재로 한 시간 이상 카톡으로 수다를 떨 수 있다.  

 

   고3의 방인영은 스물 일곱살에 자살하는 거 말고는 희망이 없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의 엄마를 이해해본다. 엄마는 이쁜 얼굴로 변호사와 결혼했고 아빠는 좋은 머리로 변호사가 되었지만 하필 외동딸 방인영은 엄마의 머리와 아빠의 외모를 물려받았다. 할 수 없다. 생긴대로 살아야 한다. 주어진 유전자만큼만 누릴 수 밖에 없다. 외모야 성형과 다이어트의 힘으로 사회에서 선호하는 형태로 다소 극복될 수는 있겠지만 반사회적 성향의 사춘기 소녀의 눈에는 남루하기만 관심없는 해결책이다.

 

  펀치는 부모를 청부 살인했을 때 함 번 강하게 때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냉소적인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얼얼하게 사회의 부조리들을 때린다. 아이의 엄마는 죽을만큼 잘못하지 않았다. 빼어난 외모로,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에 성공했을 뿐이고, 어렵사리 진입한 특권 계급 사회에 자신의 유전자가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리드하고 있을 뿐. 다른 어느 엄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찌감치 자식의 능력을 알고 포기해 버린 방 변호사도 비록 법무법인에서 비도덕적인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며 살아갈 지언정 죽어야 할만큼 법의 테두리 밖에서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아이가 부모를 죽이는 계획을 은밀하게 지지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독자인 우리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죽음을 떠올릴 만큼 냉혹한 세계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을.. 한 때 거쳤던 대입의 기억을 ..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는 더욱 더 가차없이 혹독하게 부와 권력의 대물림 속에서 은밀하지도 않게 대 놓고 정의를 조롱하고 어딘가 더욱 더 위함한 곳을 향해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돈다. 성공적인 교육(대학입시)의 세가지 조건은 첫째, 조부모의 경제력 둘째 엄마의 정보력, 셋째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말이다. 아빠의 무관심 항목은 아이와 가족이 대입이라는 항해를 해 본 경험이 있어야만 알 수 있는 아주 본질적인 항목이다. 아빠의 "바른 교육관"은 엄마의 세속적 가치관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보를 흩뜨리고, 아이를 산만하게 해서, 배를 산으로 향하게 한다.  조부모의 경제력은 사교육 시장의 본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아빠의 월급만으로 일류 대학에 진입할 수 있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다. 이 세 가지 충족 여부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집은 엄마의 무능력만 있지 정보력은 빵 점이다. 5등급의 아이도 인서울 할 수 있다. 아이는 기타를 잘친다. 좋아한다. 현명한 엄마였다면, 일찌감치 실용음악 쪽으로 정보를 수집해 수시 전형으로 승부를 봤을 것이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의 성적이 성적만으로 올인할 가치가 있을 만큼 신통치 않은 때, 혹시라도 숨어 있을지도 모를 선택받은 재능이 있을지 샅샅이 뒤진다. 돈을 퍼부어서 쥐어 짜면 없는 재능도 생겨난다는 말도 한다. 예체능이 아무리 빡세다고 하지만 찾아보면 부자들만이 경제적으로 서포트할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 분야가 있다.  책 속에서와는 달리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적어도 어느 정도의 레벨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맞춘다. 아니면 일찌감치 유학파로 변신시키거나. 그러니까 그 점은 아이를 키워 보지 않은, 작가의 상상력의 한계다. 아니다. 작품이 뛰어나니 그냥 방인영 엄마의 멍청함으로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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