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뇌 - 우리의 자유의지를 배반하는 쾌감회로의 진실
데이비드 J. 린든 지음, 김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뇌의 연구 분야는 사람의 마음과 심리의 동력이라, 주제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눈부신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각종 의료장비의 진보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는 무궁무진한 뇌 속에 대한 연구에 보다 가속을 붙여준다. 이 책은 우리가 통제하고자 하지만 마음 대로 통제되지 못하는 부분, 마약, 음식, 도박, 섹스, 운동 등 중독을 불러오는 쾌감을 통재하는 뇌의 작용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다룬다. 


충실하고 친절한(그러나 여전히 어려운) 원리적 설명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전문 서적이 아닌 이상 뇌 기능의 특정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신경생리학적 기초를 일반인이 갖추고 있다는 전제 하에  쓰여진 책도, 그렇다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타협한 책도 아닌, 독자들에게 기어이 이해시키고자 하는 집념으로, 글의 이해에 필수적인 내용을 설명한다.  기술 삽화도 만족스럽다.

 

그래서 휘리릭 빨리 읽어지지 않는 책이다. 그림과 설명 이런 걸 대충 읽고 넘어갔다가는 그 다음장에 펼쳐지는 흥미로운 내용들에 대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뇌의 각 영역을 지칭하는 명사들은 발음조차도 힘든 한자어의 조합과 복잡한 영어의 약어로 되어 있고, 뇌의 각 부분들에서 분비되는 화학적 상호작용들은 집중을 요구한다. 차에서 읽다가 뒤에서 소근대며 수다떠는 여대생들에게 싱경질 낼 뻔했다. 결국 읽으면서 나는 수도 없는 고뇌와 맞부딪친다. 어려운 말로 명칭화된 뇌의 각 부분 부분들을 정확하게 머리속에 발음하며 기억하며 읽을 것인가, 그냥 대충대충 설렁설렁 볼 것인가. 대충대충 봐도 재미있지만,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사실. 그러나 더 재미있기 위해 이해해야 하는 신경과학적인 동작 원리는 결국 쓰지 않던 뇌의 어느 부분을 마구 흔들어 깨워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각 챕터들은 각각, 약물, 섹스, 음식 등 서로 독립된 주제를 다루며, 쾌감회로의 작동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연구 내용 등을 독립적으로 서술하면서도 결국은 모든 중독의 대상, 쾌감의 대상이 되는 주제들이 하나의 일관된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러한 지식의 탐구 과정이 구조적으로 매우 잘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서장에서는 우리가 어떤 경험에 대해 즐겁다고 느낄 때, 이는 시간적 진행이 서로 다른 몇 개의 과정들을 가동시킨다. 1. 즉각적 쾌감을 통해 그 경험을 좋아한다는 2. 광경, 소리, 냄새와 같은 외부의 감각적 단서들과 당시의 생각과 감정과 같은 내적 단서들을 그 경험과 연합한다. 3. 그 즐거운 경험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쾌감은 쾌감회로와 다른 뇌 영역들과의 상호 연결을 통해 기억 연상 감정, 사회적 의미, 장면과 소리와 냄새 등으로 쾌감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때문이며, 쾌감 회로와 맞물려 있는 연합 지각과 감정의 망을 탐구할 것이라고 밝힌다.  이러한 서장의 주장은 개별 행동의 중독을 소개하는 각각의 챕터에서 다시 자연스럽게 만난다. 


우선 이해해야 할 뇌의 부분은 VTA(복측피개영역)로, VTA 뉴런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분비를 자극하고 다른 뇌 영역들에도 보내고, 다른 뇌 부위들에서 전기 화학적 정보를 받는다. 우리는 VTA의 도파민 뉴런들을 활성화시켜 그 표적에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경험을 즐겁다고 느낀다. 


그 첫번째로 중독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향정신적 약물이 다양한 문화에서 사용된 역사적 유래를 재미있게 소개하고, 향정신성 약물의 성분들이 인간에게 주는 쾌감과 그 원리를 흥미롭게 파헤친다.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아편 중독자임을 암시하는 글들을 남겼고, 아편은 기원전 3천년 메소포타미아에서 나타나, 고대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의료 및 종교적 목적으로 쓰여왔다. 고대 이집트의 의학서에서는 아이들의 수면보조제로 권하며 어머니의 젖꼭지에 바르라고 쓰여있다. 알코올의 확산을 막기 위해 금주 운동이 급물결을 탄 1880년대의 아일랜드는 당시 합법적인 판매가 가능했던 에테르의 흡입이 크게 유행했던 적이 있으며, 페루 아마존의 현지 샤먼들은 아야후스카라는 환각성 약초 음료를 제조하는 비법이 전해진다. 약물의 도취는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성향이 아니고, 새, 코끼리 원숭이 모두 땅에 떨어진 뒤 자연 발효를 거쳐 알코올을 만들어낸 과일과 딸기류를 열심히 찾아다닌다.


이러한 향정신성 물질들은 모두 내측전뇌 쾌감회로 특히, 도최감의 핵심인 VTA의 도파민 뉴런들을 활성화시킨다. 이 도취감의 감각적 경험이 뇌 회로에 기억을 적어 넣고, 기억의 흔적은 뇌 속의 엔돌핀-오피오이드 체계가 통증, 지각, 기분, 기억, 식욕, 소화기관의 진경성 조절 같은 다양한 기능에 밀접하게 관여함을 설명한다. 


데이비드 J 린든은 중독 위험도는 사회문화적 요인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는 의견을 모든 장을 통해 한결같이 주장한다.  중독은 학습의 한 형태로, 행동과 쾌감 사이에 강한 연합을 만들어 내며, 중독의 과정은 좋은 느낌에서 시작하여 내성으로 발전하고, 의존성이 높아지면 중독이 심해지고 갈망이 나타나면서 약물이 제공하는 도취감은 점차 미약해진다. 쾌감은 욕구로 바뀌고 좋다는 느낌은 부족하다는 느낌이 된다. 


중독성 약물은 자연의 어떤 보상물보다 더 강하게 쾌감회로를 접수하고 활성화시켜 약물 사용에 관한 기억을 연합망 속에 깊이 새겨 넣는다. 이 기억들은 약물을 연상시키는 외부의 단서들과 내부의 정신 상태들에 의해 강하게 활성화되고 감정 중추들과 연결된다. 


음식 또한 약물과 같이 쾌감회로를 활성화시킬 수 있으며, 비만은 음식 중독에 기인하며, 약물 중독과 생물학적 기초를 공유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체중이 빠지면 식욕을 올리고 에너지 소비를 낮추고, 체중이 증가하면 식욕을 낮추고 에너지 소비를 높임으로써 체중 항상성을 유지한다. 체중 항상성을 유지시켜주는 생물학적 현상의 일부는 지방에 의해 생산되는 렙틴 단백질로 설명하는데, 신체 내 지방조직이 늘어나면 렙틴 수치가 상승되고, 반대의 경우 렙틴 수치가 하락한다. 늘어난 렙틴 수치는 섭식을 억제하고 대사와 활동을 증가시키고 반대의 경우 섭식의 증가와 에너지 사용의 감소를 유발시켜 보상성 체중 증가를 가져온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선택 압력에 맞서 싸워온 우리의 섭식 항상성 조절 회로들은 살을 뺀 상태를 유지하는 일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역시 체중과 관련이 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설치류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유동물의 식욕을 자극, 과식을 촉발할 수 있는 반면, 심한 스트레스는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섹스의 쾌감을 설명하는 장에서 린든은 뜬금없이 자신이 오래전부터 좋아해온 사랑의 시를 소개한다.


육체적인 관계를 원하지 않음.

단지 내 마음과 섹스할 사람을 원함

-구인광고 <L.A 위클리> (1979년경)


낭만적 사랑의 정신적 생리적 양상은 강렬하고 아찔한 쾌감, 식욕 저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왜곡된 판단과 세계에 대한 왜곡된 판단, 집착, 성적 욕구이며,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방 뿐 아니라 나 자신을 더욱 좋아하게 된다는 그의 의견은  사랑에 빠졌을 때 찾아오는 강렬하고 황홀한 쾌감은 도파민계 쾌감회로, VTA와 그 표적 영역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비판 기능이 왜곡되는 이유는 판단 중추의 하나인 전전두피질의 비활성화와 사회인지에 관여하는 두 피질 영역인 측두극과 두정측두 결합부의 비활성화에서 기인한다는 그뇌과학적 설명을 읽으면 더욱 흥미롭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사랑의 매개체인 전전두피질의 비활성화는 망상-충동 장애에서도 확인된다는 것이다. 음하하 사랑은 망상 사랑은 충동 뭐 그것도 말이 된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의 강렬한 초기 단계는 9개월에서 2년까지 지속되고, 그 후에는 대부분 강렬함이 줄어든 사랑의 동반자 형태로 바뀐다는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린든은 오래된 연인들이 낭만적 사랑에 의해 활성화되는 뇌 체계가 성적 흥분에 의해 활성화되는 체계와 분리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쟁한다. 새로운 사랑과 오르가즘 모두 도파민을 사용하는 내측전뇌 쾌감회로를 강하게 활성화시킨 연구결과를 토대로 섹스 중독을 설명한다.  


섹스 중독 역시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의 단계적 과정을 밟으며, 필요한 섹스를 하지 못하면 신체적, 심리적 금단 증상을 느낀다고 한다. 가장 두드러진 양상으로 좋아하는 느낌이 점차 원하는 느낌에 자리를 내준다는 것인데, TV 막장 드라마의 단골 조연으로 등장하는 이상한 여자들도 이런 원리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오르가즘의 여운은 뇌하수체가 시상하부의 명령에 따라 분비하는 옥시토신 호르몬에 의해 강화되는데, 옥시토신이 신뢰에 미치는 영향은 대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을 수용하려는 태도의 상승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니, 몸속에서 분비되는 화학적 성분과 뇌의 작용이 인간이 가진 복잡한 가치와 태도를 결정하는 요인임을 하나씩 확인하는 재미는 특별하다. 


감정적 고통은 비유가 아니라는 사실도 뇌과학이 밝혀냈다. 오르가즘을 비롯한 다른 감각과 마찬가지로 통증을 인지하는 뇌의 부위는 통증의 찌름, 차가움 뜨거움과 같은 구체적인 성질에 반응하는  변별적 경로와 감정적 요소로 자각하는 요소의 두 가지 경로로 되어 있는데, 뇌 활성화의 관점에서 감정적 고통은 신체적 고통과 부분적으로 겹친다. 


그의 쾌감 탐구는 운동, 명상이나 요가와 같은 영적 행위, 기부 등의 선행적인 행위에까지 이어진다.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쾌감과 연합 학습의 상호작용은 쾌감 회로에 장기적 변화를 불러오는 경험을 바탕으로 임의적 보상물과 추상적 관념을 즐거운 것으로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행동과 문화를 탄생시킨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나, 불행하게도 그 과정에서 쾌감은 중독으로 변질되기도 한다는 그의 마지막 통찰에 이르면 아 하는 탄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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