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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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살인. 궁금했다. 첫장을 넘기기도 전에  표지의 띠지는 이야기의 패를 다 보여준다. 그렇다면 스릴러는 아닐터. 수능 5등급의  성적과, 외모도 몸매도 딱 5등급인 고3의 여자아이를 통해 바라본 사회의 부조리가 냉소적인 시선으로 구석 구석 현대인의 치부들을 조롱하면서 이야기의 반을 흘려 보냈다. 이 책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반이 되도록 스토리의 진전은 없고, 나는 궁금했다. 참을 성이 없는 나는 뭔가 단서를 잡기 위해 맨 앞으로, 혹은 맨 뒤로 표지로 왔다갔다 해본다. 뒷장 표지 뒷면에 오늘의 작가상 심사평에서 가져온 짧막한 인용문들이 눈에 띈다.

 

   펀치는 비도덕적 사회 속에서의 도덕적 인간에 대한 항변과 변호를 일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소한 도덕적이다. 도덕적 사회 속에서의 부도덕한 인간에 대한 비핀과 단죄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은근히 도덕적이다. 문학평론가인 김이현 교수의 평이다. 평론가 다운 문장이다. 도덕과 비도덕이란 말을 끌어들이기에는 조금 염치없는 것들, 너무나 만연되어 있는 부조리들, 교육제도, 성형시장, 계급적 특권의식 등을 문제삼지만 적어도 도덕의 이름으로 단죄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세 명의 소설가 심사평에 비해 가장 공감간다. 고 3 아이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의 부조리는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리고 도덕적이냐 아니냐를 따질 만큼 음지의 것이 아닌 사회 전체에 만연된, 한 나라의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와 취향을 그대로 반영한다.

 

  우선 교육 문제. 어느 세대 어느 문화 어느 나라에서도 결코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항상 문제라고 혀를 끌끌 차는 것이 교육 제도이다. 내가 태어난 이래로 선거 때마다 교육 개혁이 공약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들의 인권이 보장된 선진 유럽에서는 기초 학력이 부족하여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가 없다고 학교와 선생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들 엄살이다. 나는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여 선거 운동을 할 때 미국에 있었는데, 미국의 참담한 공교육 현장을 지적하며 TV에서 한국의 교육제도와 교육열을 운운하며 일부 본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던 게 생각난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학생 인권이 보장된 몇몇 나라의 학교 교육 내 기초 교육의 부재는 교육의 목적 자체를 부정하는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엄마들의 치마 바람과 무너진 공교육, 왕따 문화, 초라한 교사들의 위상, 대입 위주의 교육관 그 속에서 아이는 부모의 헛된 기대라는 감옥에서 아무 미래도 꿈꿀 수 없다. 특히 자신이 가진 성적과 외모로는 부모가 가진 특권 계급 이하로 내려가고, 그 이하의 계급에 걸맞는 소비와 문화 속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삶의 희망 마저 포기하게 만들었다. 핵심은 그거다. 최고가 아닌 아이들에게서 미래를 빼앗아 버리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

 

 외모지상주의. 우리의 당돌한 여주인공 방인영은 세태에 순응하는, 공부를 못하면 얼굴이라도 예뻐지고 날씬해지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 단순한 사춘기 소녀가 아니다. 걸그룹들의 얼굴 변천사들은 이미 식상할 뿐이고, 말라깽이 단짝 친구의 다이어트도 관심 밖이다.  너무 못생긴게 죄가 되는 건 원숭이들이 우글거리는 대한민국에서' 레알'이다. "공부하기 싫지?" 몇몇 철부지들이 대답한다. "네." "그럼 성형이라도 해." 수업 중 대화 내용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류의 대화가 딱히 우리 사회에서 삐딱한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짧고 강렬하게 작가는 현실을 꼬집는다.

 

    작가는 가족의 단절을 구구 절절 묘사하지 않는다. 방 변호사는 소파 아니면 서재에 갇혀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서재에 갇혀 있을 때, 우리집은 환하다. 짧지만 강렬하게, 가족 내 불통의 단면을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극히 한국적 풍경이자 한국적 정서다. 친구 하나는 휴일에 남편이 하루 종일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뒹굴던 자리에 푹 파인 자국을 보면 소파를 내다 버리고 싶어 진다고 했다. 우리는 남편들 흉을 볼 때, 소파와 리모콘을  핵심 키워드로 한다. 소파와 한몸이 된 남편들이라고 깔깔거리면서 단지 소파와 리모콘과 남편만을 소재로 한 시간 이상 카톡으로 수다를 떨 수 있다.  

 

   고3의 방인영은 스물 일곱살에 자살하는 거 말고는 희망이 없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의 엄마를 이해해본다. 엄마는 이쁜 얼굴로 변호사와 결혼했고 아빠는 좋은 머리로 변호사가 되었지만 하필 외동딸 방인영은 엄마의 머리와 아빠의 외모를 물려받았다. 할 수 없다. 생긴대로 살아야 한다. 주어진 유전자만큼만 누릴 수 밖에 없다. 외모야 성형과 다이어트의 힘으로 사회에서 선호하는 형태로 다소 극복될 수는 있겠지만 반사회적 성향의 사춘기 소녀의 눈에는 남루하기만 관심없는 해결책이다.

 

  펀치는 부모를 청부 살인했을 때 함 번 강하게 때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냉소적인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얼얼하게 사회의 부조리들을 때린다. 아이의 엄마는 죽을만큼 잘못하지 않았다. 빼어난 외모로,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에 성공했을 뿐이고, 어렵사리 진입한 특권 계급 사회에 자신의 유전자가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리드하고 있을 뿐. 다른 어느 엄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찌감치 자식의 능력을 알고 포기해 버린 방 변호사도 비록 법무법인에서 비도덕적인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며 살아갈 지언정 죽어야 할만큼 법의 테두리 밖에서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아이가 부모를 죽이는 계획을 은밀하게 지지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독자인 우리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죽음을 떠올릴 만큼 냉혹한 세계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을.. 한 때 거쳤던 대입의 기억을 ..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는 더욱 더 가차없이 혹독하게 부와 권력의 대물림 속에서 은밀하지도 않게 대 놓고 정의를 조롱하고 어딘가 더욱 더 위함한 곳을 향해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돈다. 성공적인 교육(대학입시)의 세가지 조건은 첫째, 조부모의 경제력 둘째 엄마의 정보력, 셋째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말이다. 아빠의 무관심 항목은 아이와 가족이 대입이라는 항해를 해 본 경험이 있어야만 알 수 있는 아주 본질적인 항목이다. 아빠의 "바른 교육관"은 엄마의 세속적 가치관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보를 흩뜨리고, 아이를 산만하게 해서, 배를 산으로 향하게 한다.  조부모의 경제력은 사교육 시장의 본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아빠의 월급만으로 일류 대학에 진입할 수 있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다. 이 세 가지 충족 여부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집은 엄마의 무능력만 있지 정보력은 빵 점이다. 5등급의 아이도 인서울 할 수 있다. 아이는 기타를 잘친다. 좋아한다. 현명한 엄마였다면, 일찌감치 실용음악 쪽으로 정보를 수집해 수시 전형으로 승부를 봤을 것이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의 성적이 성적만으로 올인할 가치가 있을 만큼 신통치 않은 때, 혹시라도 숨어 있을지도 모를 선택받은 재능이 있을지 샅샅이 뒤진다. 돈을 퍼부어서 쥐어 짜면 없는 재능도 생겨난다는 말도 한다. 예체능이 아무리 빡세다고 하지만 찾아보면 부자들만이 경제적으로 서포트할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 분야가 있다.  책 속에서와는 달리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적어도 어느 정도의 레벨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맞춘다. 아니면 일찌감치 유학파로 변신시키거나. 그러니까 그 점은 아이를 키워 보지 않은, 작가의 상상력의 한계다. 아니다. 작품이 뛰어나니 그냥 방인영 엄마의 멍청함으로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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