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래리로 불리는 백인 소년이
있다.
흑인을 노예로 삼고 차별하던 백인들이 수적 열세에 처했을 때, 아이들이 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때로 상황은
반전된다. 약한 마음과 소심한 성격까지 보태어 지면 소수 내에서조차 따돌려진다. 그 땐 그랬다. 남자는 강해야 했다.
2백만제곱미터에 달하는 많은 땅을 토착 인디안에게서 무침히 빼앗아 대대손손 부를 누리는 오트가의 후손이라면, 옹맹하고 기개있고 남성다왔어야
했다. 책을 좋아하는 소년은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 래리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났고, 그의 시련의 원천은 가족인 아버지에게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흑백 평등의 정책으로 인한 백인 소년의 흑인 다수 학교로의 학군 변경은 시련의 도화선이었다.
그는 소수 중에서도
소수였다. 나도 그들 속에 있고 싶어. 외톨이의 마음이 들린다. 따돌림을 만회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노력이 그들 그룹의
재미, 심심풀이라는 이용가치와 만나 번번히 실패하고, 점점 더 고립되어가다가 결국 사회로부터 완전한 매장을 당한 건, 강간 살인범이라는 부당한
누명을 벗길 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래리가 강간협박했다고 의심받는 백인 소녀 신디와는 애초에 사회적으로 교제가 허락되지 않은 흑인 사일러스였기
때문이었다. 소년의 마음을 날아 오르게 했던 소녀 신디의 데이트 신청. 그게 사실은 흑인 소년 사일러스를 만나기 위한 도구였음을 알았을 때조차,
그는 날아오르던 마음 어디 둘 곳이 없었다. 하지만 흑인 소년 사일러스는 백인 소녀가 행방불명되고 한 때는 친한 친구였던 래리가 살인범으로
지목되었을 때, 자신이 그녀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사람이라고 나서지 못했다. 그는 잊고 지냈다. 25년간. 여린 소년이 살인범으로 지목된 채
작은 마을에서 25년간 날아오는 돌덩이들을 그대로 맞으며 피를 철철 흘리는 동안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 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간 그 긴 25년 동안. 래리의 혐의를 벗겨줄 단 한 명, 따돌림 래리의 비밀친구였던 단 한 명은 그곳을 벗어났다. 피하면
잊어질까. 잊어졌다. 잊기 위해 떠났으니까. 가난과, 차별을 잊고 딛고. 홀로 서기 위해. 그리고 잊기 위해.
사람을 '포획'하여 사고 팔고
부리고 죽이던 것으로부터 시작된 미국의 인종문제의 역사는 흑인들을 '짐승'처럼 길들여 노동력으로 쓰다 버리면 되리라 생각했던 것처럼
간단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에게 집단 피해의식과 복수심을 심어 놓았단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고, 가해와 피해는 상호간 꼬리를
문다. 그러나 이 책의 주제는 그게 아니다. 흑인과 백인, 가해와 피해, 핍박과 학대 그것이 낳은 고리들이 사회
구석구석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잔인한 인간성의 확인, 대를 잇기를 반복하는 동안 스며들어간 소름끼치는 갈등과 결핍의 역사이다.
인간이 인간을 배척하는 것. 폭력 못지 않게 잔인했다.
깊은 심연, 아무것도 들리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 깊은 어둠 같은 것일까. 사회적 고립이란 것은..
어른도 견디기 어려운 그 소외의 시작은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부터였고,
그렇게 25년을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혼자만의 세계에서 바깥 세상을 동경해야만 했다. 때때로 그를 향한 비난의
손가라질과 훼손과 폭력만이 그를 세계로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경계였으니, 주인공 래리에게 이제 사회는, 우리에겐
그저 지랄맞고 개떡같은 사회란 것은, 자신과 무관한 것, 자신이 인내하고, 참고, 꿈을 꾸듯 부러워하며 그냥 바라 보아야 하는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소외되었을 때의 고통을 이 책은 나긋나긋하게 전달한다. 주말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고립된 자신만의 섬에서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못한 채로 25년간, 자신에게 씌어진 누명을 그대로 숙명처럼 두껍게 덮어쓰고 비난의 화살을 온
영혼으로 묵묵히 받으며 살아간 소년 래리 속으로 깊게 함몰되어 갔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항변하거나 저항할 만큼의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쏜 자가 '죽어' 라고 말했을 때, 자신이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래리는 그를 용서하고 싶어졌다. 괴물은 모두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중략. "죽어" 남자가 다시 말했다. 래리는 그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22
꼬질꼬질한 백인 남자 월리스가 꼬마였을
때, 자신의 집에서 물건을 훔쳐내거나 뒤적거리던 아이가 자라, 맥주를 들고 자기를 찾아 오는 이유를 래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까. 월리스가
자신을 연쇄살인범이라 믿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몇십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와 대화를 나눈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작은 항변조차도 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사회를 알고 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진실을 떠드는 일이 가치없다는 것과, 가치없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그럼으로써, 그냥 그대로 연쇄살인범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말고는 달리 살아갈 방도가 없다는
것을.
래리는 외로움도 일종의 단식이라는 것을, 그토록 오랫동안
영양분을 섭취 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초라하고 맛이 없는 음식이라도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자기 몸이 얼마나 먹을 것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굶주리고 있으면서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P.323
나는 래리가 왜 그 곳 미시시피를 떠나지
않았을까 초반부터 그게 답답했다. 70년대라면, 그가 진짜로 설사 연쇄살인범이라고 하더라도 새출발을 하고 싶다면 그곳을 뜨고 완전히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살다보면 과거는 잊혀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는 왜 그 미시시피 남부 어두운 숲을 떠나지 않았을가. 배척당하며
소외당하며 살다보니, 자신의 존재는 어디엘 가든 환영받지 못하고 떠돌 것이란 걸 알았을까. 그는 기다렸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데이트를 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던, 자신의 누명을 벗겨줄, 신디를 기다렸고, 흑과 백의 명암 속에 다른 운명을 살아간 그의 형제를
기다렸다.
바깥 하늘에서는 번개가 쳤다. 베란다에서, 거실에서,
장작이 파닥거리는 벽난로 앞에 앉아 방송 채널이 세 개 밖에 없는 tv를 보면서 그토록 기다렸는데, 정비소에서, 아버지가 쓰던 낡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똑같은 책을 읽고 또 읽으며 기다렸는데, 아버지 트럭을 타고 집과 정비소 만을 오가며 평생을 기다렸는데, 사이러스와 신디가 돌아
오기를 기다렸는데, 그동안 사이러스는 스파이크화를 신고 세상을 방랑하고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신디는 세실만 아는 곳에 묻혀 있다는 것이다.
P408
거짓말이 반복되면 거짓말이 진실이 된다.
취조실에서 형사의 상상력으로 조작되는 사건의 내막은 계속되는 회유와 압박 속에서 어쩌면 내가 그랬을 지도... 얼른 이 지겨운 취조실을 빠져
나가기 위해.. 거짓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서명을 하게 만든다. 오랫동안 괴물의 가면 속에서 바깥 세상을 보아왔던 래리는 자신을
괴물로 믿었는지도 모른다. 괴물의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사는 것이 편했을런지 모른다.
너무나 오랜 세월을 모두에게서 배척당하며
살아온 터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이게 된 건지도 몰랐다. 그러면서 남들이 생각하는 자기를 믿기 시작한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P414
그리고 월리스의 방문은 자기 자신, 신디를 살해하지도, 러더포드가의 딸을 살해하지도 않은 그저 선량한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 자신을
덮어쓰고 있는 괴물이라는 가면을 쓴, 아니 괴물을 향한 방문이었다는 것을, 사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알게
된다. 독자들의 의문은 미스테리는 이제서야 풀린다. 가면의 의미와 월리스와 래리와의 관계의 실마리. 월리스를 용서하고 싶다고 했던 래리의
마음을 이제서야 읽는다.
우린
둘다 외로운 처지였어요. 래리가 말했다. 애초에 그래서 나를 찾아 왔던 거겠죠 그 친구는 존경할만한 사람이, 아버지나 삼촌 같은 존재가 주변에
한명도 없었어요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그래서 나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438
줄리안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30년? 40여년전의 자신의 악의적인 편지 한통이 낳은
친구와 가족들의 비극적 인생을 마치 맹인과도 같이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아무도 아무의 기억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줄리언반스의
토미는 에이더리언에게 해댄 온갖 악의적 저주의 편지를 수십년동안 전혀 기억해내지 못했지만. 그 편지가 일으킨 파급은 두 사람의 집안을 송두리째
파멸시켰다. <미시시피 미시시피>에서 사일러스는 자신이 래리에게 한 행동을 25년간 기억 저편 속으로 가두어 버렸다. 기억에서 그냥
지워버리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기억은 그렇게나 속편하다. 기억은 언제나 자기 편이고, 기억은 언제나 자기를 위해 편리하게
조작된다. 나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말끔히 씻어 없어지는 것이 망각이다.
지나간
날들 위로 한 해 한 해가 새로이 쌓여 가지만, 그 옛날은 아직도 그 안에 있다. 나무의 가장 처음에 생겨난 가장 단단한 나이테처럼 험한
날씨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가장 깊은 곳 어둠속에 숨어 있다. 그러나 톱이 비명을 지르며 파고 들어 오면 나무는 쓰러지고 나이테는 태양에 그대로
드러나며 수액이 반짝이고 그루터기는 온 세상이 다 볼 수 있게 모습을 드러낸다.440
사일러스는 그동안 부정하고 회피해온
진실과 온전히 마주하고 나서 한층 성장해 있었다. 래리도 자신만의 성에서 나오자 사일러스에게 감정을 표출하고, 최소한 감정을 밖으로 나타낼 줄 알게 되었다. 그 역시 성장했다.
출생의 비밀 코드. 이것은 흑과 백의
운명과도 같다. 애초에 책벌레 래리가 아버지를 기뻐하게 만들만큼 힘세고 강한 아들이었거나, 근육질의 운동선수 사일러스가 백인이었거나 그렇게
원하는 유전인자만 가졌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게다. 이백만평이라는 어마어마한 대지를 물려받고도 25년간 혼자만의 감옥 속을 살아왔던
래리에게도, 추운 겨울 외투도 없이 등교를 위해 남의 차를 얻어타기 위해 길바닥에서 떨어야 했던 사일러스에게도 아버지라는 존재는 결핍의
근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