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않는 의사, 믿지 않는 환자
제롬 그루프먼 & 패멀라 하츠밴드 지음, 박상곤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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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사를 잘 믿지 않는다. 의사의 지식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학이라는 분야의 불확실성과 투약, 주사, 수술과 같은 의료 행위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한 의사의 신중하지 않은 선택을 의심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은 잘 주워먹는 편이다. 진통제나 지사제, 수면유도제 같이 직접 삶의 질에 즉각적으로 개선을 주는 의약품,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복용해야 하는 관리용 의약품을 먹는 기준은 결국 나의 의료행위에 대한 가치관과 편향을 반영한다. 이 책은 그러한 의료 행위에 대한 의사와 환자와 보호자의 가치관을 사례를 통해 적고 있다.


같은 질병이라도 전문가 사이에서 치료 방법은 다르다. 예를 들어 고혈압 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미국과 유럽의 전문가 위원회에서 각각 치료 기준이 다르다. 치료의 효과보다 부작용을 더 걱정하는 것을 손실피경향이라고 하고, 인위적인 치료보다 자연치유법이 훨씬 더 현명하고 안전하다고 강하게 있는 신념은 자연주의적 편향이고, 우리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개개인의 경험을 가용성 편향이라 한다. 이런 저마다의 가치 기준에 의해 의사건 환자건 치료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치료에는 측정하기 어려운 순효과라는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 순효과란 치료로 얻는 효과에서 부작용을 뺀 것이다. 어째꺼나 주변 사람의 말을 듣고 치료를 선택하는 것은 가용성 편향이며 일화는 단지 n분의1인  여러가지 경험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 일화에 강한 인상을 받아 생각을 왜곡하게 되므로 이성 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가용성 편향은 이미 일찌감치 극복했고 치료효과가 거의 없는 자연주의 편향은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내게 잘 안맞을 뿐더러 거기에 개입된 상업주의와 미신적 요소들은 불신을 부축인다. 손실회피경향이 두드러지지 않는 이유는 두통이 지속되는 상태라든가 배가 아파 화장실을 가야하는 상태가 알약 한알이면 말끔히 없어진다는 경험적 지식이 다른 선택의 여지를 말끔히 없애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다른 유전자 조합과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 고유한 존재다. 치료 방법은 통계와 확률이지 진리가 아니다. 내게는 좋은 효과를 내는 펜잘이 비슷한 유전적 조합을 가진, 같은 환경에서 자란 동생에게는 안듣는 것처럼 치료란 개인의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사전의료지시서에 대해 바람직한 문서이고 삶이 무의미해지는 광범위한 상황에서 인간이  법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전의료지시서 living will은 본인이 직접 지시할 수 없을 정도로 위독하게 되었을 때 존엄사할 수 있게 뜻을 밝힌 문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전의료전향서로 도입된지 몇년 안된 걸로 안다. 기도삽관, 혈액투석,영양제 공급 등으로 이미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지의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이다. 내 할머니는 내가 어릴때부터 이와 비슷한 뜻을 분명히 밝혀 오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까지만 해도 당사자가 의식불명인 경우 보호자는 의료행위에 대한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없었고, 생명 존중의 원칙에만 충실해야 하는 의사들은 환자의 뜻과 무관하게 존엄하지 않을 지라도 생명을 연장시키지 않으면 살인에 해당될 수 있었기 때문에 원칙에 맞는 그러나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의료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도 할머니는 오랜 당뇨병을 지니고도 장수하셨고 비교적 짧은 병상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셨다. 때문에 나는 이 사전의료전향서가 시행된다고 했을 때 관심을 가졌으나 실제로 이것이 생의 마지막을 직면한 환자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미국 의료 드라마에서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고, 어쨌거나 생사의 갈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바람직한 권리로서 치매나 파킨슨과 같은 정신적으로 무의미한 삶에도 죽음을 합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책에서는 이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한 사람들의 상반된 마지막 사례가 그려져 있다. 건강할 때 작성한 문서는 실제로 죽음과 가까우리 만큼 병이 깊어질 미래의 상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장애인 채로 침대에서만 누워지낸다면 삶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예측은 실제로 침상에서 겨우 숨만 쉬며 지내게 되는 일에 적응했을 때 아주 작은 일에조차 행복을 느끼고 삶의 의지를 준다. 그래서 막상 자신이 상상했던 무의미한 병상에서 오히려 사전의료지시서의 내용과 모순되는 행동을 보인다. 인간의 생명은  스스로 존엄사 따위보다 훨씬 존엄한 것이다. 어쩌면. 그냥 숨 쉬는 것만으로도.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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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파일 서해전쟁 - 장성 35명의 증언으로 재구성하다 메디치 WEA 총서 2
김종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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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예상했던 좌익 성향의 책이 아니다. 햇빛 정책을 통해, 민족을 화해시키고자 했던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일어난 연평도 해전으로부터, 천안함을 거쳐 마지막 전투까지, NLL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의 시작과 심화 과정, 전문성을 가진 해군과 육군 중심의 합참 사이의 비합리적 명령 체계와 정당하지 않은(병사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합찹의)  작전의 하달, 시대와 정권에 따라 말과 NLL에 대한 태도와 북한의 의도를 편한대로 뒤집고 주무르는 언론과 당시 책임자들을 날카로운 시선과 당시의 기록, 관련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틈새 없이 분석한다.

 

"원하건대 한 집에 한 명 밖에 없는 귀한 자식들을 한 명도 상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 손을 들어 주면 남은 삶을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영토 분쟁은 대외 관계를 의도적으로 긴장시켜 국민을 흥분하게 하는, 극우세력의 정치적 수단이다. 영토 분쟁을 유발해 민족을 선동한 독재자는 반드시 망했다.

 

힘들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나가기가 힘들었다. 대개 다른 책들은 받자 마자 후다닥 읽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럴 수 없었다. 소홀히 읽을 수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도, 편한 마음의 지적 탐구로서의 책읽기가 불가능한, 나의 이야기, 우리 땅, 나를 구성하는 사회 구성 시스템 안에서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떨쳐버릴 수 없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휘몰아쳤다. 다섯 번의 서해 전쟁을 통해 우리는 어리디 어린 아직 내 눈엔 아이에 불과한 내 아들 또래의 병사들을 잃었다.  막, 엄마 품을 떠나, 정직하게 군대 가서 해맑게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명령을 따르다가, 거기에서 개죽음 당했다.

 

서북 해역을 우리나라 영해로 표기 하려면 세가지 절차가 필요하다.1. 영해법에 명시해야 하고, 2. 국제사 회에 이를 공포해야 하며 3. 유엔 사무총장에게 그 사실을 기탁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이 절차를 추진할 수 없고 앞으로 추진할 계획도 없다. 한중 어업 협정에도 저촉되고, nll을 영해선으로 인정한 적이 없는 미국과도 충돌한다. 중국인과 미국의 대해서는 공해이고 북한에 대해서는 영해인, 의도적으로 영토분쟁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실체 없는 산물이다.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 구역이며 1953년 군자 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이자, 이제까지 상호 존중해 온 불가침 경계선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북방한계선 nll은 미국에게는 공해이고 북한에게는 자신들의 영해이다. 우리에게는 정치적 이용해 쯤 된다. 한국정부가 미국과 중국의 서분해안을 사실상 공해로 인정해 줌으로써 중국 어선이나 미국 군함은 한국정부와 아무런 협의 역시 활개를 치고 있다. 오직 북한에 대해서만 출입을 통제하고 우리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아주 이상한 경계선으로 nll 개념이 설정된 것이다.

제1 연평도 포격은 북한 내륙에서 각종 화력이 우리를 공격하려는 징후를 알고도 무방비 상태에서 해상 사격 훈련을 강행하다가 벌어진 사건이다. 지형적으로 우리가 필요한 가장 위험한 공간에서 사격훈련을 하면서도 아무 대책없이 감행한 것이다.

군사 작전에 정치적 의지가 개입되는 수단으로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육군 출신의 합참이 연평도 해군을 직접 지휘, 비상식적이고도 월권적인 전술을 명령했다. 선제공격을 금지시킨 채로 대형함정을 출동시켜 육군처럼 일렬 정렬시켜 현장상황을 악화시킴으로서 우리의 병사들을 총맞을 때만 기다리는 위험으로 몰았다.

이순신 장군이 23 전 23 승이라는 신화적 전승무패 비결은 간단하다. 지는 전투는 절대 하지 않았다.
이 책을 모든 사회 시스템을 구성하는 군고위층,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 및 고위 공무원들, 언론인들이 보았으면 하는 아주 아주 아주 간절한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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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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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1을 읽은 지 몇달 지났다. 대기 명단이 가장 긴 책이다. 문제는 끝까지 스토리의 진전이 없이 전개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1편은 재미있었다. 이 많은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엮여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까 기대했다. 사회, 문화, 정치 전반에 걸쳐, 새로운 경제 대국으로 떠오른 거대 중국에 대한 사실감 높은 문체로 주재원과 교포들이 이국 땅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했던 1편은 신선했다.  같은 톤의 2편. 똑같다. 그게 문제다.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1편과 딱히 달라진 게 없다. 결국 3편에서도 이러다가 말겠군 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중국의 실상과 중국 내 한국 비지니스맨으로서의 사고와 행동을 전달해주는 종합상사 부장 전대광은 여전히 꽌시를 사이에 두고 국내 수출기업들과 중국 내 바이어들과 바이어들의 가족들을 분주하게 상대하며, 등장인물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역을 한다. 의료 사고로 곤경에 처해 있던 서하원은 전대광의 주선으로 중국 관료 샹신원이 추진하는 성형외과 프로젝트에 차출되어 중국에서 인정받고 바쁜 생활을 한다. 철강회사 직원인 김현곤은 일본인과의 경쟁에서 밀려 시안으로 좌천되지만, 야심 많은 꽌시의 힘으로 역전의 기회를 잡고, 이 소식을 전달하러 온 전대광에게 고대 도시 시안과 진시황의 왕릉 등 시안의 관광정보 뿐만 아니라,  오래된 유적들이 함부로 파헤치고 급속한 산업 발달로 인한 매연이 가득한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부모의 반대를 이기고 중국 유학생이 된 송재형은 별 사건도 없이  정착해서 잘 사는 것으로 그려지고, 여자친구 리엔링과의 대화를 통해, 중국의 첩문화인 얼라이 문화를 전달하는 역과, 부모를 초대해 중국 짝퉁 시장을 가이드해주며, 중국의 짝퉁 문화를 전달하는 역을 맡았다. 철강 수입의 바이어인 거대 재벌의 젊은 회장 왕링링과 그녀의 최측근 앤디 박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중국의 대부호들의 비지니스 세계를 그린다.

 

모든 등장인물과 그 속의 사건들은 소설을 끌고가는 이야기의 구심력이 아니라,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중국의 모습을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전달하는 전달자들이다. 그들의 대화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일반화한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누가 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어 어떤 결과를 이끌었는지, 그런 종류의 소설적 요소는 여기서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배경 위에 사건이 얹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배경을 조목조목 디테일하게 그리기 위해서 듬성 듬성 별 의미도 없는 사건과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다리처럼 연결시켰다. 캐릭터도 마찬가지이다.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없다. 무언가를 고뇌하고, 무언가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짓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깊게 그 속으로 끌어들이는 인물이 없다. 그들의 대화는 우연히 동승한  비행기 옆좌석의 모르는 사람과도 할 수 있는 종류의 대화들이다.  

 

2편에서 전하는 중국은 대략 이렇다. 송재형의 현지 여자친구이자 산아제한의 결과로 외동딸 리옌링의 아버지는 개혁개방과 거센 산업화 물결 속에서 축재한 재산으로 얼라이들을 거느렸다. 리엔링의 아버지는 뿌리 깊은 아들 선호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아들들까지 낳아 호적에 올리고, 이를 알게 된 리엔링의 가어머니는 이혼 위기에 몰린다. 얼나이는 첩을 말한다. 이 소설을 보면 중국의 부자들과 관료들은 얼나이를 한둘 뿐이 아니라 수십명까지 거느린다. 꽌시 같은 부정 부패와 급속도로 진행된 자본주의 수혜자들의 부산물이다. 사실상의 일부다처제다. 산아제한 정책으로 얼라이들한테서 태어나는 상당수의 여자아이가 숨겨진다. 호적없는 유령 인간이 통계상으로는 1300여만명. 소문에는 1억에서 최대 4억까지도 본다. 또한 여기 저기에서 툭툭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수많은 등장인물들 또한 작가의 시선으로 중국을 단순화 일반화한 전달자의 역할을 한다. 거대 짝퉁시장, 소수민족을 하나로 묶는 중국인들의 정체성. 중국인에 대한 자부심과 한족 우월의식, 제도만 바뀌었을 뿐 황제-신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부패한 정권, 거대하고 파렴치한 짝퉁 시장과 그 시장을 공략하는 한국 사업가, 문란한 성관계. 가정 내에서 드세고 우월한 여성의 위치, 불나방처럼 돈을 쫓아 화류계를 이루는 대학생을 포함한 숱한 여성들... 작가는 그런 작은 디테일들을 적기 위해 필요에 따라 아무렇게나 1회성 조연들을 수도 없이 등장시켰다가 거두어갔다.

 

먼 내륙의 서부도시 시안은 역대 17개 왕조 1200년 동안의 수도였다. 진시황의 무덤인 병마용에는 황토와 옥가루를 빚어 만든 실물크기의 6천여명의 병사와 400여 마리의 말과 100여대의 전차가 있다.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이곳의 발굴지역은 진시황 무덤의 10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다. 전대광이 사업차 방문하는 곳은 시안 말고도 칭따오가 있다. 칭따오는 독일 점령의 흔적이 남아 독일풍이 짙게 배어 있는 중국의 동부 연안 도시로 상하이와 함께 장차 동북아와 태평양 시대를 열기 위한 중국의 2대 거점도시이다. 이 책은 칭따오와 시안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북 역할도 한다. 대화 형식이라 읽기 편하고 시중의 형식적인 가이드북보다 생동감있고 유용할 듯하다.

 

치파오는 무릎위까지 치마가 터진 타이트한 중국 의상이다.  하양연화에서 장만옥이 조용하고 뇌쇄적 분위기를 발산하던 그 옷이다. 그 옷의 기원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와있다. 시안 같은 도시에 가서 잠옷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놀라지 말아야 한다. 중국 사람들이 웃통벗고 다니는 건 많이 알려져 있겠지만 잠옷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중국 사람들이 비싼 잠옷을 신분과시용으로 외출복으로 입고 나선 엉뚱한 유행 바람이 몇년전부터 일어났다고 한다. 웃통벗지말기처럼 정부의 문명 10대 개조 중 하나였다.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은 조정래 작가의 역사적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받았던 기대치가 장기 베스트셀러라는 드문 현상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한 방법으로서, 태백산맥은 대를 읽고 읽힐 불후의 명작이었다. 태백산맥을 워낙 어릴 때 읽어 지금과는 다른 느낌으로 읽었을 수도 있겠으나, 그 때 받았던 한 작가가 인간으로서 전하는 진정성 같은 것을 느낌으로 기억한다. 같은 사람이 쓴 소설이라고 잘 믿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 전반에 걸친 비지니스 가이드 북 정도라고 한다면 더 큰 가치가 될 듯하다.

 

때로, 소설이 이야기를 많이 담지 않고도 소설이 되기도 한다. 소설이 독자가 기대하는 이야기를 담지 않고, 소설의 테두리에서 실헐적이라든가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기존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어떤 신선함이 독특함이 동반해야 될 것이다. 정글만리는 제목처럼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 중국에서 사업하며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 디테일은 깨알같고, 전지적 작가시점의 다양한 사람들의 눈으로 본 중국이란 나라의 모습은 제목처럼 정글같다. 그러나 이야기는 구심이 없고, 인물들은 개성이 없고, 책읽는 재미는 소설적 재미를 비껴가 있고, 인물이 만들어내는 대화와 말투는 생동감이 빠져있다. '엄마는 베이징에 왜 왔수?'. 송재형의 여자친구 리엔링이 엄마에게 하는 대화다. 노인정에서 드나드는 정겹고 오래된 모녀의 모습이지 싱그러운 여대생이 엄마에게 하는 말로는 읽히지 않는다. 책의 시간 배경은 바로 지금 현재인데, 말투는 대하소설 속 인물이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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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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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페이지에 달하는 1편을 다 읽었지만 이야기는 계속 전개에 머무르는 듯한 느낌이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경제 대국 중국에 대한 사실감 높은 르뽀라고 느껴진다. 8이라는 숫자와 빨간색에 담긴 부에 담긴 강한 열망과 황금만능주의, 뼛속까지 형성된 중국인들만의 대국적 정체성과 자만심. 빈부 격차, 찬란한 문화 유산,  죽였지만 죽지 않은 공자 정신과, 태연자약 은유정신, 1억명의 인구로 추정되는 유흥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세계, 일본, 한국, 중국을 둘러싼 삼국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와 역사와 서로가 서로를 향해 품은 비수들.  이야기 속에는 정글같은 만리 대국의 경제,사회,문화,관습,사고 등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이 대화와 등장인물의 생각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제목을 실용 중국학 개론 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을 것 같은 소설이다.

 

종합상사의 중국 지사 영업 부장 전대광은 무한 권력을 가진 중국 통관원 주임 샹신원의 사적인 부탁을 해결하는 기회를 갖고 꽌시를 엮는 데 성공한다. 꽌시란 연줄, 연배, 학연, 지연 등을 총괄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꽌시는 이야기를 엮어가는 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중국 내 영업을 위해서는 중국 공산당인 공안의 신분으로 관공서의 주요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의 꽌시가 사업의 성패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열쇠이다. 덕분에 그의 통관 업무는 순조롭게 풀리고 전대광의 꽌시 샹신원에게 여러모로 사업상의 도움을 받는다. 샹신원이 중국의 성형 사업의 미래를 발견하고, 한국에서 유능한 성형외과를 데려오기를 희망하자, 전대광은 다시 또 이 기회를 포착하여 의료사고로 폐인이 된 성형외과 서하원을 주선하고 꽌시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잘나가던 성형외과 원장 서하원은 양약수술의 부작용으로 사망하게 되는 의료 사고를 내고 유가족 보상금으로 모든 것을 잃고, 힘겨운 생활을 하던 중 전대광의 선배를 통해 중국 내 성형사업이라는 동업 제안을 받아들여 도피하듯 비참한 마음으로 중국 상해에 도착한다.

 

김현곤은 포스코 영업 직원으로 중국 지사에서 철강 수출 업무를 위해 전대광을 만나, 10만톤이라는 대규머 발주 건을 성사시킨다. 상해에 골드 88 빌딩이라는 88층짜리 초고층 건물 신축으로 인한 수요였다. 전대광의 꽌시를 통해 성사된 사상 최대의 단일 거래라,  500톤의 엄청난 샘플과 꽌시에게 돌아가야 톤당 3불씩의 뒷돈 제안도 그 자리에서 수락하고, 좋아한다.

 

한편  이토 히데오와 토요토미 아라키는 각각 일본의 철강회사 직원과 종합상사 직원이다.  그들의 대화는 결국 전대광과 김현곤의 포스코의 10만톤 수주 건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전해준다. 이들은 갑자기 끼어들어 10만톤의 철강 수출을 새치기할 뻔했던 한국 회사들의 이야기를 하며, 한 때 자신의 식민지였던 미개국 한국이 갑자기 일본의 비지니스 무대에 끼어들어 사사건건 방해하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소니가 삼성에게 패배하고, 연예계의 한류 현상이 일본에까지 확산되고 모든 면에서의 한국의 부상에 대해 뿌리깊은 비하와 멸시를 드러내는 그들의 대화는 우익 일본인들의 정신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듯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본인 단체관광 300여명이 불법 윤락업소에서 체포되고, 중일간의 영유권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중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악감정, 관동대학살에 대한 일본 우익의 뻔뻔한 태도와 신사 참재 또한 중국 내 일본의 비지니서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실감한다. 

 

철강 10만톤을 수주하여 선적까지 마친 상태에서 일이 틀어지게 되자 김현곤은 직장을 잃을 난처한 상태에 놓이게 되고, 전대광도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김형곤은 이미 선적된 물량을 중국의 각 지사에서 나누어 처리하기까지의 한 달 동안 10만톤의 물량을 항구에 보관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부탁하고, 전대광은 샹신원의 꽌시를 이용하여 이를 성사시킴으로써 김현곤을 해직의 위기에서 구해내지만, 김현곤은 중국의 동부권역개발 사업이라는 청사진 아래 개발이 막 시작된 옛도시 시안으로 좌천된다. 시안은 찬란한 당나라의 유적과 유물, 문화 관습이 남아있는 간직해야 할 도시지만, 공해로 가득찬, 가난에 찌든 도시에서는 1500년된 유적들이 개발의 미명 아래 마구 파헤쳐지고 무너져가고 있다.

 

이토히데오와 토오토미 아라키는 자칫 한국에게 뺏길 뻔한 철강 수출에 성공하나, 한달 동안 통관 처리가 진행되지 않아 업무에 차질을 겪는다. 이들 역시 어떤 꽌시가 일을 틀어지도록 쥐고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중국인 세관원을 만나 뒷거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골드 88 빌딩의 기공식에 참석한다.  그들은 골드 88빌딩을 소유한 골드 그룹의 회장 왕링링의 매혹적인 자태와 30대라는 젊은 나이, 서구적 유전자가 섞인 듯한 모습, 막대한 자본을 소유한 뒷배경 등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한편 누이와 사이가 각별한 전대광은 조카 송재형의 전화를 받고 그의 전공인 경영학을 포기하고 중국역사로 바꾸겠다며 엄마를 설득시켜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경영학 전공의 송재형은  동아리를 통해 중국 역사에 접하고 중국사로 전공을 바꾸고 리엔링이라는 중국인 여자친구를 사귄다. 전공을 바꾼다는 연락을 듣고 중국을 찾아온 엄마를 따돌리는 데 성공한 송재형은 미국의 유명한 시사주간지에서 베이징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 인터뷰장에서 짝퉁 산업, 마오쩌뚱 숭배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뻔뻔하고 자신감 있는 중국 학생들의 태도에 놀란다.

 

전대광의 집에 출퇴근하는 파출부 쑹칭은 농공상인 남편이 작업장에서 떨어져서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데 회사에서는 부상의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며 치료비를 대주지 않게 되자, 힘겨워한다. 소황제(아이)의 교육을 위해 시골 부모집에 아이를 맡기고 쑹칭은 하루 두 집의 파출부 일을 하고, 남편은 막일을 해서 생활하고 있지만, 좁은 아무 실내 장식도 없이 콘크리트 내부의 공용주택의 집세와 식료품비, 아들의 교육비 송금을 빼고 나면 남는 것도 없기에 쑹칭의 남편은 제대로 치료도 못받고 결국 장애가 남게 되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회사에서 치료비와 보상금을 받을 목적으로 찾아가서 위협한 대가로 그는 용역깡패들에게 죽을 뻔한 고비를 갖게 되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몇장의 유인물을 뿌리고 분신 자살한다.  그러나 중국의 어떤 매체의 주목도 이 사건을 지면에 싣지 못하고 그는 그렇게 분신과 끝으로 잊혀져가고, 전대광의 집에서는 쑹칭이 출근하지 않은 이유도 모른채, 다른 바출부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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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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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말로 그것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 역사상 최초로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어린이 합창단의 멤버로 압단한,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보이 소프라노가 어느 날 잦은 결석을 하고 흥미를 보이지 않을 때엔, 지도 교사가 아이의 목소리 변화를 눈치채고 상처주지 않게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주어야 했다. 어느날 부쩍 키가 커버렸다면, 아이의 목소리에 쇳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면, 목소리로 이미 스타가 되어 버린 아이가 그 고운 소프라노 음성을 잃게 되는 대신 갖게 될 다른 종류의 남성성과 음악성에 대해 잘 이해되도록 설명을 했어야 했다. 그게 어른이 재능있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명목으로 지불받는 많은 것들 대한 최소한 의무다.  25년 전 성탄절 특별 공연에서 솔로를 맡은 보이 소프라노가 1부 동안 사라져 있었다면, 아이의 귀를 잡아 끌어 2부 공연의 솔로를 위해 억지로 세우기 보다는, 그 아이의 내면을 관찰했어야 했다. 그 남자에게 그 사건, 목소리의 고음에서 변성기의 쇳소리를 내며 주저 앉아버린 망쳐진 공연은 자신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악가가 되었다. 아마도 그 때에는 그 사건에 따르는 후유증을 이겨내고 극복하였다고 여겼을 것이었다.

 

예술가로서의 길은 무엇을 하든, 최고가 되어야만 밥을 벌어 먹고 살 수가 있다. 매2년 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남자는, 공연 기획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의 아내에 비해 초라하다. 추리닝 바람으로 담배를 사러 나왔다가 최첨단 아파트의 카드 키를 안가지고 나온 것을 꺠달은 그의 하루는 한마디로 일진이 사납다. 지갑에 카드 키가 들었고, 지갑을 빼놓았고 동전 한 닢 없는 거지꼴이 되는 건 한 순간이다. 구걸구걸 했지만 자신의 아파트 보안팀은 자신이 자신이란 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집에 들여보내 주지 않고, 키를 가진 아내를 찾으러 가는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에게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을 깨닫는다. 만나는 사람들은 코를 막고, 들어가는 장소마다 창을 활짝 열고, 대화하는 사람마다 코를 만지고 그를 피한다. 그는 적어도 2일에 한 번은 샤워를 하는 사람이고, 일주일에 한번은 대중탕에서 때를 미는 한국적 깨끗함의 관습을 지키는 사람이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그는 오늘 냄새가 그리 심하게 나는 걸까. 가까스로 만난 그녀의 아내에게 냄새가 나는 지를 물어보지만 미친놈 취급을 받는다. 냄새가 진짜로 났을까? 고약한 냄새와 고약한 일진과의 관계는 무엇일가. 이 소설에서 고약한 냄새는 어떤 은유를 지니고 있는 걸까. 하루 종일 쫓아다니던 냄새, 천재적인 감성과 천상의 목소리로 미래가 보장된 듯 했던 보이 소프라노에서 언제 짤릴 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위치의 시민합창단이 되어 살고 있는 한 남자의 하루. 단편을 읽으면 암시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일들이 어렵게 느껴질 떄까 많다. 이 작품도 그렇다.

 

정이현 단편집 오늘의 거짓말 중 <그 남자의 리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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