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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평점 :
아이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말로 그것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 역사상 최초로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어린이 합창단의 멤버로 압단한,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보이 소프라노가 어느 날 잦은 결석을 하고 흥미를 보이지 않을 때엔, 지도 교사가 아이의 목소리 변화를 눈치채고 상처주지 않게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주어야 했다. 어느날 부쩍 키가 커버렸다면, 아이의 목소리에 쇳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면, 목소리로 이미 스타가 되어 버린 아이가 그 고운 소프라노 음성을 잃게 되는 대신 갖게 될 다른 종류의 남성성과 음악성에 대해 잘 이해되도록 설명을 했어야 했다. 그게 어른이 재능있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명목으로 지불받는 많은 것들 대한 최소한 의무다. 25년 전 성탄절 특별 공연에서 솔로를 맡은 보이 소프라노가 1부 동안 사라져 있었다면, 아이의 귀를 잡아 끌어 2부 공연의 솔로를 위해 억지로 세우기 보다는, 그 아이의 내면을 관찰했어야 했다. 그 남자에게 그 사건, 목소리의 고음에서 변성기의 쇳소리를 내며 주저 앉아버린 망쳐진 공연은 자신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악가가 되었다. 아마도 그 때에는 그 사건에 따르는 후유증을 이겨내고 극복하였다고 여겼을 것이었다.
예술가로서의 길은 무엇을 하든, 최고가 되어야만 밥을 벌어 먹고 살 수가 있다. 매2년 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남자는, 공연 기획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의 아내에 비해 초라하다. 추리닝 바람으로 담배를 사러 나왔다가 최첨단 아파트의 카드 키를 안가지고 나온 것을 꺠달은 그의 하루는 한마디로 일진이 사납다. 지갑에 카드 키가 들었고, 지갑을 빼놓았고 동전 한 닢 없는 거지꼴이 되는 건 한 순간이다. 구걸구걸 했지만 자신의 아파트 보안팀은 자신이 자신이란 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집에 들여보내 주지 않고, 키를 가진 아내를 찾으러 가는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에게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을 깨닫는다. 만나는 사람들은 코를 막고, 들어가는 장소마다 창을 활짝 열고, 대화하는 사람마다 코를 만지고 그를 피한다. 그는 적어도 2일에 한 번은 샤워를 하는 사람이고, 일주일에 한번은 대중탕에서 때를 미는 한국적 깨끗함의 관습을 지키는 사람이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그는 오늘 냄새가 그리 심하게 나는 걸까. 가까스로 만난 그녀의 아내에게 냄새가 나는 지를 물어보지만 미친놈 취급을 받는다. 냄새가 진짜로 났을까? 고약한 냄새와 고약한 일진과의 관계는 무엇일가. 이 소설에서 고약한 냄새는 어떤 은유를 지니고 있는 걸까. 하루 종일 쫓아다니던 냄새, 천재적인 감성과 천상의 목소리로 미래가 보장된 듯 했던 보이 소프라노에서 언제 짤릴 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위치의 시민합창단이 되어 살고 있는 한 남자의 하루. 단편을 읽으면 암시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일들이 어렵게 느껴질 떄까 많다. 이 작품도 그렇다.
정이현 단편집 오늘의 거짓말 중 <그 남자의 리허설>